나의 주장/정치

우리는 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가

박찬운 교수 2017. 10. 31. 10:18

우리는 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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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촛불집회 이후 정권이 교체되자, 많은 사람들은 우리 대의민주주의(이하 대의제)의 문제(주인의 의사와 대리인의 의사가 불일치하는 것)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일각에선 직접민주주의는 결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대의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촛불집회로 만들어진 현 정권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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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를 대표하는 이가 최장집 교수이며 그로부터 영향 받은 이들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최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현 시점에선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촛불집회를 제대로 계승한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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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촛불집회야말로 역사상 우리가 경험한 가장 소중한 직접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일부 수구세력을 제외하곤 누구도(몰론 최장집교수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대의제가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무능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촛불집회였다. 이것이 준 교훈은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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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촛불집회의 결과로서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촛불시민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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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최선의 정치제도이기 때문이 아니다. 최교수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를 비교하면서 후자의 우월성을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로 선출한 대표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귀족주의의 장점과 평등한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체제이기에 더 우월하다”(중앙일보 2017. 10. 11.자 칼럼)는 것이다. 이 말은 촛불집회가 있었다고 해서 우리의 대의제를 직접민주주의로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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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주장이 우리가 요구하는(제도화하고자 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어느 누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보다 우월한 제도이기 때문에 아예 대의제를 포기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는 사람이 있을까. 이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가 그리스식의 직접민주주의를 하자고 누가 말하는가. 그런 사람도 없고,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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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대의제를 보충하자는 것뿐이다. 대의제가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 상황에서 주인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에 비해 우월하니 그것으로 전면 대체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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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는 당연하다. 현재 우리의 대의제는 상당부분 왜곡되었고 그것을 고치기도 쉽지 않다. 선거제도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선거구를 조정하고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려고 해도 정당마다 국회의원마다 생각을 달리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주인ㅡ대리인의 의사가 왜곡되는 일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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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국회가 공론을 모으지 못하는 경우는 국민이 참여해 그것을 만드는 기회를 가져야 하고, 대통령을 포함 국회의원이 국민을 배신하면 소환제도를 통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위기에 있는 대의제를 교정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