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늙어가는 것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25. 11. 30. 05:38

늙어가는 것에 대하여

 
 



늙는다는 게 우울한 일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그렇게   말한다. 젊음이 떠나면 남는 것은 쇠락과 상실뿐이라고, 밤이 길어질수록 인생도 어둡게 기운다고 말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젊은 시절에는 결코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늙음 속에 분명히 있다.

이 생각은 오래전 키케로가 쓴 책에서 이미 발견된다. 그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네 가지 이유로 통념을 비판하며 오히려 노년을 예찬했다. 노년은 활동을 빼앗고, 육체를 약하게 만들며, 쾌락을 줄이고, 죽음에 가깝게 만든다? 그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활동은 달라질 뿐 사라지지 않고, 육체는 약해져도 정신은 더 깊어지며, 쾌락이 줄어드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욕망에서 벗어나는 해방이고, 죽음에 다가간다는 사실은 오히려 삶을 더 맑게 만든다고 했다. 키케로의 말은 지금의 내 삶에도 놀라울 만큼 그대로 스며든다.

노년의 가장 큰 선물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자유일 것이다. 젊었을 때 우리는 수많은 눈길 속에 살았다. 배우자의 눈, 자식의 기대, 조직의 평가, 친구들의 시선…. 무엇을 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늙어가면서 그런 계산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 나이에 누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접어두지 않고, 마음이 닿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생긴다. 키케로의 표현대로, 노년은 욕망의 소음이 잠잠해진 자리에서 찾은 평온한 자유가 있다.

경험 또한 젊음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헛 되이 살지 않았다면, 나의 과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실패와 좌절, 이것들을 견뎌낸 시간들, 천천히 축적된 판단의 감각... 이 모든 것은 수백 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내가 살아온 그 시간만큼은 결코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사회에 여전히 필요한 존재다.

특히 나 자신을 생각할 때 뚜렷이 느끼는 장점은 통합의 능력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사태를 보는 눈은 자연스레 깊어지고 넓어진다. 한 가지 관점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살피게 된다. 바둑으로 치면 단수의 묘수를 찾기보다 수십 수를 내다보며 판 전체를 읽는 것에 가깝다. 요즘 내가 두 개의 정부 자문위원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이것을 실감한다. 실무진의 자료를 검토하고, 의견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방향으로 잇는 역할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만약 10년 전, 20년 전에 이런 일을 맡았다면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직 권위도, 통찰도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다.

늙음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본능의 자연스러운 침잠이다. 인간의 많은 불행은 통제되지 않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과열된 육체가 서서히 고요해질수록, 마음도 과도한 파동에서 벗어난다.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여백이 생긴다. 그 여백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평온을 배운다. 젊음의 격정이 주지 못한 안정, 그것 또한 노년의 축복이다.

늙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시기가 아니다. 다만 바꾸어 놓을 뿐이다. 열기는 사색으로, 욕망은 여백으로, 불안은 수용으로 바뀐다. 키케로의 말처럼 노년은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라 가장 깊은 장이다. 속도가 아닌 깊이로, 경쟁이 아닌 성찰로 삶이 재편되는 시기다. 그래서 나는 이제 늙는 것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소란스러운 욕망들이 잦아들고, 남의 눈에서 벗어나, 내 삶의 리듬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은 새벽 4. 젊을 때였다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이 시간 이렇게 조용히 깨어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늙음의 한 표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혼자 앉아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늙음이 내 가슴에 달아준 조용한 훈장이 아니겠는가. (2025.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