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검찰개혁론자다,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나는 검찰개혁론자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40년간 인권변호를 해온 박찬운 한양대 교수가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이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을 지낸 그는 "수사·기소 분리를 교조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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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찰개혁론자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40년간 인권변호를 해온 박찬운 한양대 교수가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이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을 지낸 그는 "수사·기소 분리를 교조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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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이후 검찰개혁과 관련해 셀 수 없는 글을 썼고 언론 인터뷰를 해왔다. 내 블로그에 정리된 글만 65개이고, 단독 인터뷰 기사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오늘 나는 이 글과 이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말해 왔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는 검찰개혁론자다. 이 점을 먼저 분명히 하고 싶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나는 인권 변호를 하는 변호사로서, 인권정책을 다루는 공직자로서, 인권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지난 40여 년을 살아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경찰개혁위원회 위원, 경찰청 수사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검찰과 경찰의 개혁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아온 사람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을 때 나는 검찰개혁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있었기에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직을 맡았다.
위험하게 흘러가는 검찰개혁 논의
그러나 나는 지금의 개혁 논의가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 내가 수없이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해온 이유는 바로 이 위기감 때문이다. 나는 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방식으로는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말해 온 것은 이것이다. 검찰개혁의 목적은 두 가지여야 한다. 첫째는 검찰권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가의 범죄 억지 기능과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지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한다.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그런데 지금의 논의는 온통 첫 번째에만 집중되어 있다. 검찰권 남용을 막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형사사법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실종되었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제도 개혁은 구호로 굴러가지 않는다. 현실에서 그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연간 170만 건 가까운 형사사건 중 99%는 일반 민생사건이다. 살인, 강도, 성폭력, 사기, 폭행 등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직결된 사건 들이다. 경찰이 범죄 혐의를 인정해 검찰에 송치하는 사건만 해도 연간 약 110만 건에 이른다. 검사는 이 사건들을 단순히 기록 검토로 끝내지 않는다. 증거 누락 여부를 확인하고, 진술 모순을 점검하며, 법정에서 공소유지가 가능한지를 따져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참고인 조사 한 번, 추가 증거 확보 하나가 기소와 불기소를 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내가 반대하는 것들
나는 '수사·기소 분리'를 교조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 원칙이 개혁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 지금 논의의 가장 큰 문제다. 검사제도를 가진 어느 나라에도 "검사는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는 절대 원칙은 없다. 나라마다 검사와 경찰의 관계를 다르게 설계하고 있을 뿐, 검사가 기소 책임을 지는 이상 어떤 형태로든 수사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에서는 이 원칙이 마치 성역처럼 되어버렸는가. 나는 그 배경을 이렇게 본다. 검찰권 남용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개인적 경험이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되었고, 그것이 지지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절대선의 서사"로 굳어진 것이다. 나는 그 분노를 이해한다. 그들의 선의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인의 경험이 백년대계 형사법 설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적지 않은 국민이 "수사·기소 분리가 아니면 검찰개혁은 실패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 설득의 결과가 아니다. 반복과 감정의 축적이 만든 것이다. 제도 개혁이 감정 정치의 하위 영역으로 전락한 것이야말로 비극이다.
나는 검사 집단 전체를 악마화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특정 권한의 남용을 비판하는 것과 하나의 직역 전체를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집권 세력이 검사를 악마화해서 얻을 것은 없다. 그들도 공무원 조직에 불과하다. 제도적으로 다뤄야 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악마화는 오히려 집권 세력 내부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검사들이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말하면 "수사권을 놓치기 싫어서 하는 위장 연기"라고 단정하는 태도다. 이해관계를 의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낙인이다. 개혁의 언어가 아니라 악마화의 언어다.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은 신뢰 없이 작동할 수 없다. 검찰을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만 삼아서는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만 남는다.
내가 바라는 검찰개혁의 방향과 내용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주장해 왔는가.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검찰의 수사개시권은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착수하는 권한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역대 가장 강력한 구조 개혁이 된다. 이 하나만으로도 검찰권 남용의 핵심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둘째, 보완수사권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단, 그 성격과 범위를 법에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더 깊이 설명하고 싶다. 보완수사는 일반수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반수사는 범죄를 발견하고 피의자를 특정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반면 보완수사는 경찰이 이미 완결한 수사 기록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다.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개념의 혼동이다.
보완수사는 송치된 사건과 동일성이 인정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경찰이 수사해서 넘긴 사건의 테두리를 벗어나 별건수사로 번지거나, 사건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이 과거 검찰권 남용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수사개시권의 우회적 복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늘 함께 강조해왔다.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공소유지를 책임지는 기관이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 권한, 그것이 보완수사의 전부다. 검사가 기록만 들여다보고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기소·불기소를 결정하게 만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억울한 피해자와 무고한 피의자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형사소송법이 지향하는 공판중심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공개된 법정에서 제대로 된 증거로 유무죄를 가리려면, 그 증거를 제대로 갖추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보완수사권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통제 장치를 반드시 함께 도입해야 한다. 보완수사권을 인정하되 아무런 통제 없이 두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통제 장치의 설계야말로 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검사가 보완수사의 범위를 일탈하여 별건수사를 감행하거나 송치사건과 무관한 수사를 벌이는 경우, 법원이 공소를 기각할 수 있는 명시적 근거를 형사소송법에 두어야 한다. 위법한 보완수사로 수집된 증거는 공판에서 사용할 수 없게 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소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 실질적인 사후 통제자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수사 진행 중에도 피의자가 보완수사의 범위 일탈이나 위법성을 사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준항고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정비해야 한다. 현재의 준항고 제도는 실무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가 수사 단계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기소권 자체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시민 참여형 기소심의회, 일명 한국형 대배심제도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소·불기소 결정은 검사 한 사람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지는 구조다. 이 권한이 오·남용될 때 지금의 시스템은 이를 교정할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기소심의 기구를 통해 검사의 기소 판단 전에 만든다면, 기소권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남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넷째, 전건송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검사의 기소 책임성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또한 이것이 있어야 사건 암장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
나는 개혁의 속도보다 방향을 걱정한다. 개문발차식으로 제도를 바꾸고 "부작용이 생기면 바로잡으면 된다"는 발상은 매우 무책임하다. 문제가 발생하고 수습하는 데는 최소 몇 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 부조리한 사법 구조로 피해를 입은 국민은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제도 개편의 비용은 결국 국민이 치른다. 그 비용을 외면한 채 열망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형사사법은 백년대계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고, 깊은 연구와 합리적 토론이 필요하다. 생각이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배신"이나 "변절"로 낙인찍는 편협함으로는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없다. 나는 그 편협함 앞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검찰개혁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은 개혁으로 검찰권 남용이 억제되었는지, 동시에 국가의 범죄 억지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이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다. 만약 이 평가에서 실패한다면, 검찰개혁은 이재명 정부의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내가 이 많은 글을 쓰고 셀 수 없이 인터뷰를 해온 이유다.
개혁은 분노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완성은 냉정한 판단과 책임 있는 설계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026.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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