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고통의 땅에 사는 나의 형제자매여! <연을 쫓는 아이>

박찬운 교수 2020. 9. 7. 20:32





문학으로 알린 아프카니스탄의 아픈 역사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미국 유학에서 일시 귀국한 둘째 딸이 집안에 널려 있는 책을 정리하던 중, 집사람이 이 책을 발견하고 읽은 다음, 내게 한 번 읽어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맨날 딱딱한 책이나 읽고 있는 남편이 딱했던 모양이다. 무슨 소설이든 처음부터 흥미진진할 수는 없는 법, 얼마간 무료한 시간을 보냈지만, 의외로 빨리 삼매경에 빠졌다. 일요일 하루 종일 서재를 떠나지 않고 이 책을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책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고, 또 언제부터인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사로잡은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이 책은 두 번역자에 의해 국내에 번역되었다. 나는 2005년 이미선이 번역한 ‘열림원’ 판본을 읽었음)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카니스탄이 소련의 침공을 받을 시기 미국으로 망명해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에겐 다른 아프칸 망명객과는 분명히 다른 재주가 있었다. 글쓰기! 그의 문학적 재능은 뒤 늦게 영어를 배우고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미국 문단에서 최초의 아프카니스탄 출신 작가의 길을 걷는다. 이 소설은 호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일 뿐만 아니라 아프카니스탄 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

소설을 읽다보면 아프카니스탄 인들이 받아온 지난 50여 년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 온다. 1973년 쿠데타로 왕정폐지, 소련의 침공과 반군의 공격, 반군의 승리에 이은 탈레반 정권의 수립, 미국에 의한 아프카니스탄 전쟁....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반인도적 상황을 경험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과 고향을 떠나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이방인이 되었을까.

문학은 위대한 것!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어떤 보도보다,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 이 소설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 울림은 우리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이기에 꽤나 오래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동력! 그러니 할레드 호세이니는 새로운 아프카니스탄의 영웅이다. 그는 아프카니스탄을 위해 누구도 못한 일을 했다. 세계의 양심들에게 아프카니스탄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구나 아프카니스탄의 아픈 역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형제요, 자매임을 느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아프가니스탄, 아미르 가족은 수도 카불에서 살다가 잘랄라바다를 경유해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빠져나와 망명길에 올랐다. 카불의 왼쪽으로 탈레반이 고대 불교유적을 파괴한 바미안이 보인다. 북쪽 마자르 이 사리프에선 하라자족을 인종청소하는 만행이 저질러졌다.&nbsp;



1975년 겨울에 일어난 일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한다면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미르는 12세가 되는 1975년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것이 그의 나머지 삶을 결정했다. 어린 소년의 마음을 그리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간 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아미르는 카불의 부유한 사업가 바바의 외동 아들. 바바는 아프카니스탄을 지배하는 파슈톤족의 명망가 집안 출신으로 돈만 버는 상인이 아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선 가진 것을 내놓는 사람이다. 그는 사재를 털어 고아원을 지었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런 그에게도 그늘은 있으니, 젊은 시절 아내를 잃었다. 그의 처는 아미르를 낳고 바로 사망했다. 바바 같은 유력가문의 돈 많은 사람이라면 당장 새 부인을 얻었을 텐데, 그는 어쩐 일인지 그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아미르가 살았던 카불. 그는 카불의 부촌 와지르 아크바르 칸에서 살았다.



아미르는 바바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바는 아미르를 항상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지가 약해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척하기 어렵다고 근심한다.

아미르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연날리기에서 우승을 하는 것. 그는 평소 동생 같은 하인 하산과 연날리기 연습을 해왔다. 만일 카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연날리기의 우승자가 되고, 마지막 연을 끊은 다음 그 연을 집으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아미르에 대한 바바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하산은 비록 생김새는 못 생겼지만(더군다나 언청이) 주인 아들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다. 아미르를 위하는 일이라면 백 번 천 번이라도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아이다. 그 또한 엄마 없이 아버지 알리와 바바의 문간방에 사는 처지지만, 바바의 관심과 사랑은 다른 집의 주인이 하인에게 주는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알리 가족은 아프카니스탄의 하층민인 하자라족 출신(이들은 수니파인 파슈툰과 다른 시아파)이지만 바바 가족과는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바와 알리는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자랐고, 그들의 자식인 아미르와 하산도 한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바바의 알리 가족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긴 어렵다. 도대체 바바가 알리 가족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5년 겨울 연날리기가 시작되었다. 바바는 아미르가 우승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인가? 아미르의 연은 수백 개의 연을 제치고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다. 마침내 마지막 연을 끊어 버리고 우승을 따낸다. 그리고 하산은 주인에게 줄 최고의 선물을 주기 위해 떨어지는 마지막 연을 잡으러 뛰어간다. 얼마 후 아미르가 경험하는 인생 일대의 뼈아픈 장면이 일어난다.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하산을 찾아 아미르가 어느 골목에 당도하자 악당 아세프 일당이 하산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미르는 아세프가 하산을 성폭행하는 것을 숨어서 본다. 얼굴을 보이고 아세프의 행위를 저지할까 망설이다 결국 나서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아미르는 하산을 배신한 것이다.

  “결단을 내릴 단 한 번의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단 한 번의 최종적인 기회였다. 골목으로 걸어가서-과거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하산이 내 편을 들어줬던 것처럼- 하산의 편을 들어주고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나는 도망쳤다.”(120-121)

더 큰 배신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하산에게 볼 낯이 없는 아미르는 알리 가족을 아예 집에서 쫓아내기로 결심한다. 자기 생일 선물 중 바바가 준 시계와 현금을 알리의 집에 숨겨 놓고 하산을 도둑으로 몬다. 그럼에도 바바는 하산을 용서하나 알리는 주인을 배반했다는 자책을 하며-물론 하산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집을 떠난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한 마디만 하면 하산의 무고함은 풀리지만, 아미르의 입에선 그것이 안 나온다.

  “내가 골목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을, 내가 그곳에 서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를 사랑했다.”(161)


새로운 삶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몇 년 후 카불은 소련에 의해 점령되고 바바와 아미르는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망명 길에 오른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온 바바와 아미르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동분서주. 바바는 주유소의 관리원으로, 주말엔 벼룩시장에서 골동품을 팔아,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아프카니스탄을 잊지 못한다. 아미르는 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가고, 소설가의 꿈을 안은 채 영문학을 전공한다. 그러는 중 벼룩시장에서 아프카니스탄 왕정 시절의 장군 타헤리의 딸 소라야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바바의 운명은 여기까지. 그는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곧 폐암으로 세상을 뜬다. 아미르는 슬픔 속에서도 안정을 찾아가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신의 소설을 출판하기에 이른다.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최초 미국 소설가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내 나는 ‘바바의 아들’로 존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바바가 없어져버렸다. 내게 길을 이끌어줄 바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나 혼자 힘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264)

아미르가 아프카니스탄을 뜬지 26년이 되는 해 어느 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전화 한 통이 온다. 바바의 친구이자 동업자 그리고 어린 시절 아미르의 정신적 후원자인 라힘 칸으로부터. 그는 아미르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한다. 아미르는 망설였지만 풀지 못한 숙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전하는 말은 충격 자체. 아미르와 관련된 모든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 왔다. 하산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다. 바바가 어린 시절 왜 자신에게 냉랭했고 하산에 대해 그리고 카불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인정을 베풀었는지도 알았다. 바바와 아미르가 카불을 떠난 이후에도 라임 칸은 하산을 찾아내 바바의 집을 관리해 왔다. 하산은 결혼해 소람이라는 아들을 두었고, 집을 나갔던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 몇 년을 같이 살았다. 병든 라힘 칸이 카불을 떠나 페샤와르에 온 후, 카불을 지배하는 탈레반은 하산 부부를 처형하였다. 그리고... 소람은 지금 카불의 어느 고아원에 있다.

  “제 아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 카불 거리에 라울라 꽃이 다시 피고, 루밥 음악이 사모바르 집에서 연주되고, 연이 하늘에서 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련님이 카불로 돌아와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나라로 다시 찾아오는 꿈을 꿉니다. 도련님이 돌아오면 충실한 옛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326-327, 하산이 아미르에게 보내는 편지 중)
  “나는 그(바바)를 친구로서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인간으로서 어쩌면 훌륭한 인간으로서 사랑했다. 그리고 네 아버지가 가진 좋은, 진짜 좋은 자질이 회한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거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짓고, 어려운 처지의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 했던 그의 모든 행동이 사실은 속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450, 바바의 친구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남긴 편지)
  

죽음을 무릅쓰고 카불로
이제 아미르가 피할 곳은 없다. 카불로 들어가 소람을 구해오는 것 외엔...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지만 26년의 빚을 갚기 위해선, 그리고 자신의 이복동생 하산의 아들 소람의 미래를 위해선, 그 길밖엔 없다.

카불로 들어간 아미르, 그곳에서 탈레반이 저지르는 악행을 목도한다. 축구 경기장의 수천 관중 앞에 간통했다는 남녀가 잡혀와 돌로 맞아 죽는다. 그것을 지휘하는 탈레반 간부, 그가 소람의 운명을 쥐고 있다. 그자는 고아원에 있는 소람을 데려가 성노리개로 삼고 있는 중. 아미르는 그 자를 만나 담판을 벌리기로 하고 탈레반의 소굴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자가 누구인가....바로 26년 전 그 겨울 하산을 능욕한 아세프! 둘은 소람 앞에서 결투를 벌이지만 그는 아미르가 상대할 적이 아니다. 초주검이 되도록 맞은 아미르...죽음의 문턱에서, 소람이 새총으로 금속 공을 발사해 아세프의 눈을 맞춘다. 26년 전 아세프의 위협에서 하산이 새총으로 구해준 일이 그의 아들에 의해 반복된 것이다.

  “간통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 어린아이들을 겁탈하는 것?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을 채찍질하는 것? 하자라인들을 대량학살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이 사명이야?”(424, 아미르가 아세프에게 탈레반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힐난하면서 물어보는 말)

이 소설은 2007년 영화로도 나왔다. 2008년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는데 흥행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을 쫓는 아미르, 소람의 미래는...
아미르와 소람은 천신만고 끝에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온다. 소람에겐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다. 아늑한 가정, 자신을 사랑해 주는 큰 아빠와 큰 엄마...이제 그에겐 행복만이 앞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수 없다. 말문을 닫은 지도 오래다. 소람은 끝내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소설의 엔딩은 샌프란시스코 어느 동네에서의 연날리기 행사. 아미르와 소담은 연을 가지고 섰다. 공간은 카불이 아닌 금문교가 보이는 미국 땅. 여기에서 소담은 하산의 분신이 아니라 아미르의 분신이다. 26년 전처럼 마지막까지 남은 연은 소담의 연... 아미르는 하산이 되어 끊어진 연을 향해 달려간다. 소담이 어떻게 살아갈까? 작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소담이 하산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달렸다. 고함을 질러대는 아이들 무리와 함께 다 큰 어른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판즈세르 계곡만큼이나 활짝 미소를 지우며 달렸다.”(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