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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 사람들 -소설 <아버지의 새벽>을 읽고-

박찬운 교수 2019. 3. 26. 05:21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 사람들

-소설 <아버지의 새벽>을 읽고-

 

 


내가 살아 온 지날 시절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10여년 후에 태어난 나는 이제 50대 후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죽은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공산주의에 적개심을 불태웠다. 고등학교 시절 10.26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학교에 가니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휴교라서 즐거워했지만, 나는 국부가 서거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국군장교로 임관한 1987년 이후였다. 나는 대학시절 고시공부만 했기 때문에, 매년 5월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광주의 진상을 밝히라고 데모를 하는데도, 큰 관심을 두지 못하고 학창생활을 보냈다. 그것은 마음속에 큰 짐이었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국군정훈장교로 3년을 보냈다. 그것은 군의 정치교육 장교였다. 3년 간 나는 그 직위를 활용하여 열심히 책을 읽고 현실 문제를 고민했다. 3년이 지난 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끝났지만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길을 걷지 못하고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90년 대 초의 혼란한 시절, 나는 변호사로서 시국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역사의 한 가운데에 나도 서게 된 것이다. 그 뒤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거쳐 드디어 야당 대통령이 탄생했다. 김대중의 당선은 민주화를 열망한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다. 그 뒤를 이어 노무현이 당선되어 내리 10년의 진보정권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변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만 가지 않았다.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이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고, 다시 5년 뒤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그 뒤를 이었다. 10년의 역사는 우리 정치를 다시 20, 30년 뒤로 후퇴시켰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위대했다. 2016년 겨울 광화문엔 수만 수십만의 시민들이 촛불로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무혈 명예혁명이었다. 나는 그 시절 런던에서 매일같이 격문을 발표했고, 서울로 돌아와 2017년 초 촛불대열에 합류하였다. 이것이 내가 유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대한민국 민주화의 과정이다.


소설 <아버지의 새벽>

소설가 김상수는 이 과정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경험한 비극적 역사 속에서 스러져 간 두 명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딸로서 앞으로 한 시대를 살아갈 딸의 이야기다소설의 스토리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매우 선이 굵은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한 독립운동가가 일제 고등계 고문기술자로부터 고문을 받고 죽는다. 그에겐 유복자 있었으니 그 이름 김재오. 김재오는 성장해 신문사 기자가 되고 10.26 직전 일본인 사진기자 세이코의 한국 방문 때 가이드를 맡게 된다. 그 인연으로 둘은 가까워지고 김재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깊은 관계 로 발전한다. 그러나 열흘도 안 되는 짧은 밀월은 10.26으로 끝난다. 김재오는 급거 귀국하고 결국 신군부에 의해 죽임을 면치 못한다. 그 사이 세이코의 몸엔 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또 한 명의 유복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 이름 미아. 미아는 성년이 되어 미국에서 동아시아 고대문화사 교수가 되고 2016년 겨울 한국방문을 한다. 바로 촛불시위가 시작된 때이다.


세이코가 말하는 두 명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핏줄 미아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들은 책의 말미에 있는 세이코의 아사히 포토저널리즘 수상식에서의 연설에서 거의 전부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요령 있게 이 소설을 요약한다고 해도 작가가 직접 쓴 말을 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소설의 관련부분을 인용하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선 세이코가 말하는 김재오와의 인연을 들어보자.


저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한국인 남자 김재오를 만나게 됩니다. 취재 가이드를 해 준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형호 선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으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의 손에 홀로 자랐습니다. 그는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기자로서 사건의 현장에서 시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는 악명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과 국토를 눈물겹게 사랑하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과 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만 그런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306-307).


이 소설의 모티브는 두 명의 아버지 곧 김재오와 그의 아버지 김형호의 죽음이다. 이 두 아버지 중 한 사람은 일본 군국주의의, 또 한 사람은 한국 군부독재로 희생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고문기술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한 사람은 일본의 고문기술자에 의해, 또 한 사람은 그로부터 배운 한국 경찰 고문기술자에 의해 죽었다.


그는 지난 1월초 한국의 남쪽 바닷가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의해 고문 타살을 당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말하고 싶은 비극이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피식민지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식민지 세력인 일본 국국주의에 대항하다 일본인 특수임무 고등경찰 고문기술자에게 고문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그 아들은 비록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라지만 또 다른 군사 압제와 싸우다가 일본인 고문기술자들에게 고문기술을 전수받은 한국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307-308)


세이코와 김재오의 짧은 사랑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김재오의 생명을 세이코를 통해 딸 미아로 이어지게 한다. 한일 간의 관계는 이렇게 숙명적인 것이다.

 

저는 김 상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일시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을지언정, 김 상의 저항정신은 한국인 시민들의 가슴속에 불꽃처럼 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리라 믿는 겁니다. 그렇게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그는 지금 죽음의 시간을 뚫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의 육신은 지상에서 찾을 수 없어도 그가 남긴 생명은 여기 제 뱃속에, 자신의 대를 잇는 생명으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308-309)


세이코가 말하는 작가의 메시지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개인의 귀중한 생명은 어떤 폭력에 의해서도 함부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협하는 공포에 대해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이 소설을 쓴 것이다..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한국인 김재오, 김 상이 저에게 일러주고 가르쳐준 물음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유를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두려움에 대한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경계해야 함을 우선으로 합니다.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인간 인격의 가치와 존엄을 해치는 것이고 인간의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 민주주의, 오직 하나뿐인 개개인의 생명의 귀중함이 어떤 그럴듯한 폭력이나 국가적 강제에 의해서 함부로 취급당하고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명의 진리와 인간의 자유, 오늘 저는 이것의 중요성을 새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309-310)


촛불로 이어지는 희망

소설 전부를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가 2016년 말의 촛불시위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2016년 겨울 수 십 수 백 만의 인파가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이것은 단지 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민중의 염원을 실현하는 하나의 굿판, 눈물과 환희가 동시에 교차하면서 굴곡진 한 시대를 마감시키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이었다.  촛불은 횃불이 되어 사람들은 마침내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 벅찬 새벽을 맞이하였다. 한국인의 핏줄 미아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통해 한국인을 다시 보았다. 그가 말하는 한국인 그리고 광화문의 촛불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마, 오늘 세 번째 이메일이에요. 한국을 올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저는 한국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여기 사람들은 아주 솔직하고 자기감정에도 충실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말을 숨기고 사는 일본 사람들과는 한국 사람들은 많이 달라요.”(323)


박물관에서 나와 광화문 광장으로 갔어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시위에 나갔어요. 쌀쌀한 가을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왔어요. 마마 한국 뉴스를 보고 있지요?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평화적으로 노래를 하고, 어린 학생들, 아저씨, 아주머니, 아기를 안은 주부, 샐러리맨, 여러 사람들이 마이크를 붙잡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모습은 놀라웠어요. 한국 사람들은 참 용감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 저도 반쯤은 한국 사람이죠? 마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 경찰들한테 붙잡혀 가지는 않을게요....”(326)


이제 세이코가 한국인 전체에 전하는 마지막 응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아니 이것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두 명의 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말하는 간절한 염원이다. 이제껏 새벽을 열지 못하고 미명 속에 갇혀 있던 김형호와 그의 아들 김재오가 드디어 새벽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다.


“‘사랑하는 한국인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날 일본 사람들은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던 분들입니다.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여러분은 이번에는 꼭 지켜내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일본인 친구 세이코는 간절하게 빌고 응원합니다. 2016102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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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김재오나 세이코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읽는다면 특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지난 40-50여 년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다시금 무언가 결심의 시간을 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 소설은 그들의 후배들, 이제 대한민국의 주인공으로 자라나는 청년들이 읽어도 좋다. 그들에겐 선배들이 어떤 꿈을 갖고 살았는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소설을 쓴 김상수 선생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