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로맹가리의 <새벽의 약속>

박찬운 교수 2021. 3. 20. 22:09

 

 

 

 

 

 

 

즐거운 고통, <새벽의 약속> 읽기

작년 초 공직에 임명되고 나서부터는 책다운 책을 진득하게 읽기 어렵다. 몸도 마음도 바쁘니 한 자리에 몇 시간씩 며칠을 보내면서 책을 읽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쳤다는 거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수백 쪽의 안건 보고서를 읽고 오면 집에선 당최 문자로 써진 어떤 것도 보기 싫다. 그저 머리 식힐 겸 영화나 보는 게 그나마 낙이다. 그 덕에 지난 한 해 수년 치 볼 영화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난 며칠 간 열심히 읽은 책이 있다. 로맹가리<새벽의 약속>(심민화 옮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동명의 영화를 보고 진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모자지간의 사랑이 한 문호의 삶을 지배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책을 구입했고, 고통스럽지만ㅡ번역문학은 아무리 잘 번역해도 읽기는 어렵다ㅡ 즐거운 마음으로 꼼꼼하게 읽었다. 이로서 나는 로맹가리와 그의 어머니 미나를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이젠 그들 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로맹가리(1914-1980)

 

 

로맹가리 그리고 <새벽의 약속>

로맹가리. 이 흥미로운 인물은 1914년 현재의 리투아니아 수도 빌누스(당시 러시아 도시, 이 도시 이름이 소설에선 윌로, 영화에선 빌로라고 나옴)에서 로만 카체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14세가 되는 해 프랑스 니스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연극배우 출신의 미나, 아버지는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로맹가리는 자신의 친부가 당대 러시아의 대배우 이반 모주킨임을 몇 군데에서 암시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의문을 표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사생아로 자라난 것이다.


로맹가리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교육으로 프랑스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차 대전에 공군장교로서 참전해 프랑스의 전쟁영웅이 되었다.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로서 종전 후 그는 어머니의 꿈대로 외교관이 되었고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번(한번은 로맹가리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이나 수상한 문학가가 되었다. 그는 두 번 결혼을 했는데 모두가 유명 여성들이었다. 한 여성은 영국의 작가 레슬리 블랜치, 또 한 명은 미국 할리웃 배우 진 세버그. 그는 두 번째 부인을 만났을 때 할리웃의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난다. 1980년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66년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가리가 44세가 되는 해(진 세버그와 살던 시절), 그의 문학이 한창 무르익던 시절에 집필되었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로맹가리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어머니 미나에 대한 헌사이자 사모곡이다. 외교관이 되었고 유명작가가 되었지만 자신을 만들어준 어머니는 옆에 없다. 집필이 이루어질 무렵 그에게 건강상 적신호가 찾아 왔는데 아마 죽음의 환영 속에서 어머니를 본 모양이다. 어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휘갈긴다.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ㅡ재능과 그것을 발현토록 한 교육 그리고 미래의 꿈... ㅡ 어머니의 사랑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머니란 존재

로맹가리는 젊은 시절 수없이 희비쌍곡선을 그린다. 아버지 없이 사생아로 살아가는 설움, 유태계로 태어나 천형처럼 따라다니는 차별,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오르내린 삶....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살았다. 자신은 넘어지더라도 반드시 일어날 사람이었고, 언젠가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 그의 삶을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 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46)

어머니는 아들이 갓난아기 시절부터 장래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비범한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윌로에서 살 때 이웃들이 이방인 젊은 여자가 홀로 아들을 키운다고 업신여기며 온갖 중상모략을 하자 어머니는 동네 사람 다 들으라고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로맹가리가 장년이 되어서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일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 단눈치오가 될 거라고!(50)

어머니는 아들의 문재(文才)에 대해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응원했다. 로맹가리는 어머니의 이런 바람대로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썼다. 가끔은 쓴 글을 어머니에게 읽어주었고,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는 세상을 어머니의 발아래 무릎 꿇게 할 불멸의 시구들을 어머니에게 읽어드렸다. 어머니는 언제나 주의 깊게 들었다. 조금씩 나의 시선이 밝아지고 피로의 기색이 얼굴에서 사라져갔으며, 어머니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였다. ”바이런이야! 푸시킨, 빅토르 위고다!“ (143) 

어머니 미나는 자존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무조건 아들을 지원하고, 무조건 아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어머니는 아니었다. 때로는 혹독하게 자식을 대했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못하면 어미로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어린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윌로 시절 로맹가리는 어머니를 비하하는 말을 듣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와 그것을 고해바친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의 태도가 어땠을까?

내말 잘 들어.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군가 네 어미를 네 앞에서 모욕하면, 다음번엔, 사람들이 너를 들것에 실어 집으로 데려오기를 나는 바란다. 알겠니? ... 내가 한 말을 명심해 두어라. 지금부터 너는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저들이 주먹으로 너를 어떻게 하건 나한테 상관없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필요하다면 넌 죽기라도 해야 해(148-149)

새벽의 약속

이렇게 자라온 로맹가리. 어려서부터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했다. 중년을 넘어서부터 당뇨로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였다. 언제 죽음의 신이 어머니를 데려갈지 모르는 상황. 아들의 마음이 초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 인생의 새벽에 스스로에게 이런 약속을 한다.

서둘러야겠다는 것을, 어서 빨리 불후의 명작을 써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전무후무한 최연소 톨스토이로 만들어, 즉시 어머니의 고생을 보상해주고, 어머니의 일생에 왕관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할 걸작을. 나는 사력을 다해 작품에 매달렸다.(180)

이 약속은 전쟁터에서도 계속되었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전쟁의 한 가운데! 매일 출격하고 돌아와 몇 시간 자다가 다시 출격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글을 썼다. 그를 본격적인 소설가로 만들어준 <유럽식 교육>이 집필 될 때, 로맹가리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하트포드 브리지 비행기지의 문학적 작업 조건은 좋지 않았다. 너무 추웠다. 나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사용하는 함석으로 만든 오두막에서 밤에 글을 썼다. 나는 비행점퍼와 털 장화를 신고 침대에 앉아 새벽이 될 때까지 썼다. ...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난 그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 모든 것이 같은 투쟁의, 같은 작품의 일부분이었으므로.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밤이면 나는 또 다시 글쓰기에 몰두하였다.(394-395)

어머니의 꿈 그것은 아들의 꿈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과도하지 않았을까? 자식을 이렇게 키우면 혹시 마마보이가 되는 게 아닐까? 자식으로서도 얼마나 부담감이 있었을까?  그런 의문에 대해 로맹가리는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도 그런 부담 때문에 고통스러웠다고,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어머니의 바람이 자신의 희망이 되었다고. 그것은 자신도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나를 대상으로 한 어머니의 쉼 없는 사랑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일 때가 종종 있었다. 열정에 사로잡히고 넋을 잃은 것 같은 시선으로 끊임없이 나를 마치 유일하고 비교가 불가능하며 모든 자질을 다 타고났고 승리에 찬 길이 약속되어 있는 존재처럼 보는 어머니의 시선은 내 긴장을 가중시켰고, 그 찬란한 이미지와 나의 초라한 현실 사이에 놓인 심연에 대한 그 때 이미 매우 뚜렷하고도 고통스러웠던 인식을 강하게만 할 뿐이었다. ... 나는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실현시키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또 나는 어머니의 꿈이 너머 소박하다고도 도에 지나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기엔 너무도 어머니를 사랑하였다. 또 어릴 때부터 내 찬란한 미래에 대한 약속과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자란 탓에 나 자신 가끔 그 속에 빨려들어가 어느 것이 어머니의 꿈이고,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잘 구별되지 않곤 하였던 만큼 그 속에서 환상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았다.(190-191)

낭만에 대하여

어머니와 아들은 어려운 삶을 헤쳐 왔음에도 낭만을 잃지 않았다. 소설의 몇 부분은 지금 시점에선 받아들여질 수 없겠지만 남성이 지배하던 20세기 전반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로맹가리는 젊은 시절 많은 여성들과 연애를 했다. 그것은 본능에서 비롯된 실수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관용으로 받아들였다. 십대 시절 로맹가리는 처음으로 유곽을 들락날락하면서 쾌락을 쫓는다. 돈이 떨어지면 집안의 값나가는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가 판 돈으로 그곳을 향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의 반응이 어땠을까?

어머니는 무한한 만족을 표하며 요란스럽게 코를 킁킁거리더니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와 감탄과 애정을 담고, 마침내 내 아들이 남자가 되었구나. 나는 헛되이 투쟁한 것이 아니었구나.(171)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로맹가리는 파리에서 법대를 마치고 1938년 공군장교가 되기 위해 군사학교에 입교한다.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임관하는 날 그는 300명 동기생 중 유일하게 장교임관이 안 되었다. 왜 일까? 그는 본래 외국인이었고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장교로 임관되지 못하고 하사관으로 임관되었으니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니스에 있는 어머니는 아들이 공군장교 견장을 차고 집에 나타나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상황이다. 그때 아들의 머리에 이런 묘안이 떠올랐다. 장교로 임관을 못한 이유가 상관의 와이프와 눈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이 안 되는 변명인데 어머니의 반응이 놀랍다.

어머니는 놀라운 자부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았다. “돈 후앙이다!”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카사노바야! 내가 늘 그랬지!”(265)

로맹가리는 전쟁터에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딜 가나 여자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 또한 그녀들을 찾았다. 더욱 전쟁 중이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격정적 사랑으로 생사의 고통을 잠시나마 이겼다. 그중에서도 콩고의 한 소녀과의 인연은 잊을 수가 없다. 16세의 어린 소녀 루이종을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한센인이었다. 격리정책상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그녀는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나는 사람이 그토록이나 어떤 목소리, 어떤 목, 어떤 어깨, 어떤 손에 사로잡힐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상상해본 일이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눈은 너무도 살기 좋은 곳이어서 이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383)

이런 말을 하면 독자들은 배꼽을 잡을 지도 모른다. 로맹가리가 출격하여 무공훈장을 받게 된 폭격 상황(아래에 계속됨)에서 적이 쏜 탄환에 부상을 당한다. 그는 당시 일을 이렇게 그린다. 그 절박한 순간에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었을까?

순식간에 피가 바지에 배어 손에 흥건히 고여들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바로 전에 가장 중요한 곳을 보호하라고 철모를 배급 받았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은 당연스럽다는 듯 그것을 머리에 썼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은 모두 그들이 훨씬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덮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철모를 들추고서, 제일 중요한 곳은 무사히 건져냈음을 확인하였다. 어찌나 안심이 되었던지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심각함조차 특별히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을 지경이었다.(398)

죽음의 계곡을 통과한 비결

로맹가리는 2차 대전에 참전해 나치와 싸웠다. 그는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10명 중 9명이 죽는 전쟁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전선에선 장티푸스에 걸려 다마스쿠스의 군병원에 옮겨졌다. 그의 증상은 의사들도 손을 들 정도로 심각했고 급기야 신부가 병상에 들어와 종부성사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그는 영국으로 넘어가 공군 폭격기 항법사로 셀 수 없이 출격을 하면서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다. 그 중에선 조종사가 적기의 총탄에 맞아 앞을 못 보는 상황이 된 적도 있다. 탈출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 그 상황에서도 그는 탈출을 포기하고 임무를 완수한 다음 조종사의 눈이 되어 기지로 돌아온다. 이로써 그는 드골이 주는 영토해방 훈장을 받는다. 그는 불사조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운명을 타고 났을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어머니가 준 재능을 드러낼 운명이었다고, 자기를 질투하는 신이 자신과 어머니 사이를 잇는 탯줄을 끊는 것을 잊어서, 자신은 어머니의 생명력을 계속 공급받았다고.

나는 내가 졌음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수백 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영광에 뒤 덮혀 집으로 돌아가고, 전쟁과 평화를 쓰고 프랑스 대사가 되고, 간단히 말해 내 어머니의 재능이 널리 드러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 나는 내 어머니의 인생이 다마스쿠스의 병원 전염병 병동에서 바보처럼 끝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신들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 질투하는 신들은 내 사랑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것이다. 그들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고, 그래서 나는 소생했다. 내 어머니의 의지와 생명력과 용기가 계속 내게 흘러와 나를 먹여주었던 것이다.(387-389)

어머니, 그 하늘 같은 사랑

이제 이야기를 끝내야 할 때다. 감정이 매마른 독자라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로부터의 편지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전쟁이 나면서 로맹가리는 영국으로 떠난다. 어머니는 그가 떠난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그러나 로맹가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종전이 다가올 때까지 모른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3년 반 동안 쉴새없이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일주일에 두어 통의 편지가 중립국 스위스를 통해 영국으로 도착한 것이다. 어머니로부터의 편지는 그를 강한 군인으로 만든다. 

삼년 반 동안 그렇게 하여 나는 나의 의지보다 훨씬 강한 의지와 입김에 의해 지탱되었고, 그 탯줄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심장보다 더 강인한 심장의 용맹을 내 피에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371)

어머니는 이런 편지를 아들에게 보내곤 했다.

내 사랑하는 아가야. 네게 애원하니 나를 생각지 말고, 나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다오. 넌 이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닌 어른이라는 점을, 너 혼자서도 네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아들아, 빨리 결혼해라. 네 곁엔 항상 여자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네게 심어준 병일 게다. 하지만 무엇보다 빨리 아름다운 책을 쓰도록 해라. 그러고 나면 어떤 일이 생겨도 훨씬 쉽게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넌 항상 예술가였다. 내 생각 너무 하지 마라. 내 건강은 좋다. 로자노프 선생님은 아주 내게 만족스러워하신다. 그분이 네게 안부 전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용감해야 한다. 엄마.(392-393)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머니는 죽기 전에 250여 통의 편지를 썼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을 받쳐주지 않으면 아들이 서지 못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죽기 전 편지를 써 스위스에 있는 친구에게 정기적으로 아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3년이 넘도록 아들이 죽지 않고 지탱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보이지 않는 탯줄을 통해 계속 공급한 것이다. 아아, 어머니!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넓은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