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국토 난개발에 대한 나의 견해

박찬운 교수 2015. 9. 2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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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논단]국토 난개발에 관한 근본적 성찰
박찬운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주 제주도 올레길 제7코스를 걸었다. 강정리에 도착하자 수려한 풍광의 해안가와 거대한 해군기지 공사현장이 동시에 두 눈에 들어왔다. 착잡함이 밀려왔다. 이제 이 천혜의 비경은 영원히 안녕인가. 그 날 석간보도가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와 관련하여 이를 심의해 온 국립공원위원회가 그동안 문제된 대청봉을 비롯한 국립공원 6곳에 대해 부결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면서생에 불과한 나라도 이번만은 참을 수 없어 대청봉 정상에 올라가 결정철회를 요구하는 메아리 없는 격문을 읽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서, 나는 자연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세계관이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대한민국의 난개발은 모두 이 세계관에서 나오는 종속변수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년간 전 세계를 지배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 땅은 인간과 자연이 가장 위험스럽게 적대적 환경을 조성한 공간이 되었다. 이 세계관은 서양의 정복적 기독교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근대에 들어서 데카르트의 철학과 뉴튼 물리학의 과학적 세례를 거쳐 공고화된 거대한 패러다임이다.

이 패러다임의 물리적인 기초는 에너지보존법칙으로 불리는 열역학 제1법칙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물질에 어떤 손을 가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언제든지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과 자만이 극대화되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개발은 무조건 선이라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으며 세상천지가 사람들의 손에 무분별하게 파헤쳐져도 그것이 성장을 위한 개발이라면 용인되었다. 이것이 4대강 사업, 강정리 해군기지 건설, 그리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로 연결되는 국토난개발의 철학적 기반이다.

내가 믿는 바로는 우리가 이런 세계관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언젠가 하늘과 땅의 진노를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자연은 인간의 목적과 관계없이 그 나름의 법칙이 있는 법이다. 자연이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에 관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유기적 생명체다. 자연은 파괴되면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이 영원한 철칙이라고 말하는 열역학 제2법칙, 곧 엔트로피 법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변화하지 않되, 한 번 사용된 에너지는 다시 사용가능한 에너지로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 한 번 망가진 자연이 다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철학적 세계관을 떠나 지자체나 일부 지역주민들이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미 그런 시대에 돌입했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 더 자연 그 자체가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될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이제 조용함을 원한다. 케이블카를 만들어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면 돈을 벌지 모르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그로 인해 국립공원은 필연적으로 망가진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누가 망가진 설악산에,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으려 할 것인가. 그러니 그런 식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대를 위해 후대에게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자들이다. 우리 자식 손자들도 이 땅에서 살아야 하고, 그것을 정령 원한다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산하에 쇠말뚝을 박지 않고서도 도시인들이 조용하게 찾아와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설악산과 지리산은 천년만년 민족의 영산으로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도 대를 이어 그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여,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자. 설악산, 지리산을 그대로 남겨두자. 그것이 하늘의 뜻이다.(경향논단/2012.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