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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민주혁명의 희망, SNS

박찬운 교수 2015. 10. 4. 08:34

[경향논단] 새로운  민주혁명의 희망, SNS

유럽의 도시를 갈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도시마다 있는 광장이다. 고색창연한 역사도시에는 예외없이 도심에 광장이 있고, 성당과 시청 그리고 조그만 가게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광장에서 두 개의 권력, 즉 교권과 속권이 만나고 이를 경제력이 떠받치는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는 매우 특이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바다 한가운데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땅을 만들었고 거기에 찬란한 해양도시 문명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물의 도시가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에 유럽의 다른 지역은 봉건영주 혹은 절대군주가 권력을 행사했지만, 베네치아는 1000년 가까이 공화정을 유지했다.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광장이다. 베네치아는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광장이 많다. 물의 도시인 만큼 땅은 모두 금싸라기인데, 거기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산마르코 광장만이 아니라, 섬 곳곳에 크고 작은 광장이 깔려 있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탄생시킨 만큼 베네치아인은 모두가 상인정신으로 무장되었음에도, 공화정을 계속하기 위해 광장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던 것이다. 상인들에게도 광장을 통한 민주주의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섰던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서구 사회의 광장은 중세나 르네상스기에 비롯된 것이 아니고 멀리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광장은 2000년 이상 서구인들의 삶의 공간이었고,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도시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카페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곳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가 있다. 300년 전에 개점한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와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이들 카페는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계몽시대 이후 민주주의를 싹틔운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광장에 사람이 모이고,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함으로써 유럽은 민주주의를 생활화했고,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럽은 위기다. 특히 유럽 문명의 원조인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심상치 않다. 직접적인 이유야 경제적인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위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을 광장과 카페로 상징되는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로 설명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나라는 민주주의 소통 수단인 광장과 카페를 현대적 의미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는 현대판 광장과 카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지금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가보라.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라면 그 불편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이들 나라의 광장과 카페는 모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점령됐고, SNS는 자국민의 민주주의 공론장이 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광장과 카페를 가지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모이고, 토론하는 문화를 갖지 못했다. 그나마 시골 5일장이 유사한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유관순의 3·1만세운동은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 공론장으로 연결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항시 상대를 인정하면서 토론하고, 설득해야 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에 이제 새로운 광장과 카페가 탄생했다. 인터넷과 SNS가 그것이다. 이 분야만큼은 우리가 단연 세계 최고라 해도 좋다. 이것은 어떤 광장이나 카페와도 비교가 안되는 소통수단이다. 급변하는 2012년, 우리의 역사가 이 소통수단에 의해 좌지우지될지 모른다. 이 수단을 우리가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새로운 민주혁명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과학기술에 왜곡된 또 다른 우민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그 선택은 우리 민주시민의 지혜와 역량에 달려 있다.(경향/201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