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높고 푸른 사다리

박찬운 교수 2015. 9. 26. 18:11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제법 책이란 것을 끼고 살아왔다. 누구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생각을 갖고 말이다. 호기심도 많아 여러 장르의 책을 읽었다. 나는 그것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고, 그것으로 세상을 보아왔다.


그런데 내가 피한 책이 있었다. 동시대의, 동년배의 작가들이 쓰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소설은 그냥 글재주로 써선 안 되지, 그것은 경험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아.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동년배의 작가, 더욱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의 글에서 그런 감동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연한 인연으로 작가 공지영을 알게 되었다. 최근 그로부터 책 두 권을 받았다. 그의 친필 사인과 함께. 최근작 <딸에게 주는 레시피>와 2년 전 낸 <높고 푸른 사다리>. 가끔 친구들이 책을 내면 증정본을 보내오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저 준 이의 정성을 생각해 버리지 않고 서가 어딘가에 고이 모셔두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공작가의 책을 읽고 싶었다. 동시대를 살아 온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가 어떤 소설을 쓰는 사람인지... 나의 메마른 감정에 조금이라도 단비를 내릴 수 있는 작가인지... 조금은 알고 싶었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얼마 후 떠날 여행을 위해 남겨두고 우선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기 시작했다. 약간의 무미건조한 첫 부분이 지나자 손에서 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마력을 느꼈다.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그 광경을 그렸다. 나는 이미 소설 속의 정요한 신부가 되어 있었다. 소희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었고, 어느 날 이별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의감 넘치는 친구 미카엘 수사와 천사 같은 친구 안젤로 수사가 한 날 한 시에 죽었다. 눈물이 났다. 토마스 신부가 마지막 길에서 요한의 손을 잡고 해준 이야기... 수용소에서 한 마리의 돼지 같은 대우도 못 받고 죽어가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친구 요한 신부... 빅토리아메리디스호의 선장으로 한국전쟁 시 흥남부두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태우고 사지를 빠져나온 마리너스 수사 이야기... 신은 과연 내곁에 존재하는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잔잔한 감동은 밤새 가실 줄 몰랐다.


작가는 주요 대목마다 이런 질문을 남겼다. 신이여 “대체 왜 그러십니까.”


내 눈을 사로잡은 글귀가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들을 깊이 음미했다.

작가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사랑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만약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나도 평소 질문한 것들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마모시키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은 마모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정한 고통도 진정한 슬픔도 진정한 기쁨도. 시간은 모든 거짓된 것들을 사라지게 하고 빛바래게 하고 그 중 진정한 것만 남게 한다는 것을. 거꾸로 시간이 지나 잊힌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정에 가 닿지 못한 모든 것이라는 것을.” (278)


나도 가끔 남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는 어떤 무게의 기도이었을까? 미혼모로서 요한 신부의 보살핌을 받은 모니카라는 여인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내 기도도 솔직히 그 정도이길 바랐고, 앞으로도 그런 기도를 계속하길 꿈꾼다.


“제 기도는 먼지보다 미약할지 모르지만 어느 날 신부님의 소망이 이루어질 힘이 먼지 하나의 무게만큼 딱 모자랄 때 제 기도가 신부님께 보탬이 될 거라 믿을 뿐입니다.”(307)


작가는 이 혼란한 시대에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가. 나는 그것을 미카엘에 대한 요한 신부의 회상에서 찾았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세상의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다음 천국을 찾는 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영역이다.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우리의 운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카엘은 명석한 사람이었기에 “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져야할 곳은 삶과 죽음 혹은 운명에 대해서가 아니라, 가난과 불의 혹은 정의와 제도에 대해서라는 것, 그러니까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에서 신과 씨름해야 한다는 것 알았던 거다. ... 진정한 세속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일지도 모른다.“(309)


마지막 책장을 넘긴 후 잠시 생각했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어떤 자세로 써야 할까?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할까? 작가의 마지막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이자 나의 말이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