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마루야마 겐지의 시소설 ... 결연한 문학정신

박찬운 교수 2015. 9. 26. 19:28

마루야마 겐지의 시소설 ... 결연한 문학정신




나는 문학을 잘 모른다. 이것이 내 독서의 빈틈이다. 하지만 이 빈틈은 언젠가 채워질 것이다. 그 한 가운데로 걸어가 내 삶을 반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작년 이래 틈만 있으면 시와 소설을 읽어 왔다. 거기에서 얻은 경험은 이제껏 다른 독서에서 얻은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지난 한 주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고 이곳에 몇 차례 그 내용을 포스팅했다. 그동안 읽은 책은 그의 산문이었다. 국내에 번역된 에세이집 5권을 읽으면서 그의 작가정신을 살폈다. 어제 밤 그의 에세이집을 덮고 드디어 마루야마 문학의 정수에 도전했다.


<달에 울다>. 소설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작품이다. 내용보다도 그 형식, 그 문체가 말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여운은 강렬하다.


마루야마는 말한다. “소설은 너무 이완되어 있고, 시는 너무 긴장되어 있다.” 그에겐 새로운 문학 장르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그가 창조한 시소설(詩小說)이다. 시 같은 정서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시적인 문체에 영상적 이미지가 어른거리는 문장이다. 간결한 단문으로 이루어진 문체가 마치 영화를 보듯 선명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글이다.


<달에 울다>는 그가 43세 때에 쓴 이른바 마루야마 겐지 문학의 새로운 경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소설이 스토리 중심의 문학이라면 이 작품에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스토리가 무엇인지 손에 잡힐 뿐이다. 이소설의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인 ‘나’는 사과밭을 가진 농가의 외아들이다. 아버지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산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 40세가 넘어서도 변함없이 혼자 산다. 한 번도 마을을 떠난 적도 없다. 나는 딱 한 번 사랑을 한다.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야에코라는 여자다. 나는 오로지 그녀가 동네를 떠나 돌아와 죽을 때까지 나와 벌렸던 그 사랑을 반추하고 음미하며 살아간다.


스토리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마루아먀는 천근만근의 무게감 있는 문장으로 그것을 묘사한다. 주인공의 저 단순한 삶, 한 순간 한 순간을, 군더더기 없이 응축된 언어로 시구를 만들어 간다. 한 문단 한 문단을 보면 분명 그것은 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모이면 소설로 변한다.


한 군데만 보자. 이 장면은 주인공인 ‘나’와 야에코가 사과밭에서 정오의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 야에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난폭하게 움직였다. 내 손은 사과 냄새가 나는 유방을 움켜쥐었고, 이로는 그녀의 부드러운 무릎을 깨물었다. 긴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어지럽게 바뀌며 새빨갛게 칠한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름풀 속에서 엄청난 열기가 분출되고 있었다.

야에코 위로 폭염이 소용돌이쳤다.
그 위에는 타서 눌은 하늘이 있고, 조금 더 위에는 타다 문드러진 태양이 눌어붙어 있다. 이 산 저산에서 요란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폭풍우 같은 매미 소리는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괴성을 지르던 야에코가 벌채된 나무처럼 무너지며 내 위를 덮쳤다.”(54-55)


이런 글이 어떻게 나올까? 그에게 있어,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절제하며 육체를 단련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 30분쯤 글쓰기를 시작한다. 경건함을 유지하기 위해 몸도 씻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처음 한 줄은 글의 생명이다. 한 줄이 잘 나오면 그것이 다음 문장을 끌고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컴퓨터 자판을 기관총처럼 빠르게 두드린다. 딱 두 시간만 그렇게 글을 쓰고 멈춘다. 그 이상 쓰면 뇌도 피곤함을 느끼고, 그 상태에서는 최고의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그에겐 친구도, 동료도 중요하지 않다. 예술이란 영혼과 접신하는 일이므로 행복과 안정이 가까우면 그 만큼 예술에선 멀어진다. 진정한 문학을 위해선, 고독, 분노, 슬픔을 초월해야 한다. 아니, 그 모든 것에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돌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서 문학의 금광이 펼쳐진다.


바로 이것이 마루야마의 결연한 문학정신이다. 거기에서 저 전인미답의 시소설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