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반 고흐그림이야기 37화(고흐 파리에서 새 여인을 만나다)

박찬운 교수 2015. 9. 28. 06:09

고흐 그림 이야기 제37화

<고흐 파리에서 새 여인을 만나다>


이번 주 5일간 연속으로 글을 썼다. 나 스스로도 놀랍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썼으니...... 나에게 어떻게 이런 힘이 있다는 말인가. 회를 거듭할수록 내겐 뚜렷한 목표가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글을 써보자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이글은 이제까지 나온 그 어떤 고흐 이야기와도 다른 종류의 글이다.


물론 글 여기저기에서 다른 이들이 쓴 글들을 참고했지만 글의 주제나 내용 그리고 형식은 전적으로 나의 창조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 가을 나의 모든 지적 역량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아니 세계에서 유일한, 고흐 그림 이야기를 페친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자, 이제 한 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 아침의 주제로 들어가 보자.

지난 번 제28화 <사랑을 하지 못하면 얼음이 되든가, 돌이 되겠소>에서 고흐의 사랑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자료 수집의 한계 상ㅡ 따지고 보면 쓰고 싶어도 다루기엔 분량이 너무 길었다ㅡ 1884년까지의 사랑 이야기만 쓰겠다고 했다. 오늘 그 이후 고흐가 만난 한 여인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1887년 작 <탕불랭에서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이 그림을 통해 고흐는 신여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내 판단으론 남녀평등 의식이 짙게 배인 그림이다.


아고스티나 세가토리(Agostina Segatori). 이 사람은 이태리 태생으로 고흐가 파리 시절(1886-1888) 만난 여인이었다. 당시 그녀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의 클리시가( Boulevard de Clichy)에 있었던 카페 탕부랭의 주인이었다. 고흐는 이 카페를 열심히 다닌 손님이었는데, 여기서 둘은 눈이 맞았다.


사실 이 둘의 관계가 무엇이었을지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이 관계를 알아보려고 국내외의 자료를 수없이 뒤져보았지만 명확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몇몇 자료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을 보았기에 그것을 기초로 이야기한다.


아고스티나는 고흐보다 12살이나 많은 한참 연상의 여인이었다. 그러니까 고흐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40대 후반의 나이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고흐도 여자의 미모에 꽤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결코 그녀가 완전히 한 물 간 여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원래 젊은 시절 고향 이태리에서 파리로 건너 와 몽마르트를 근거지로 화가들의 인물화 모델로 생활을 한 모양이다. 그녀를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린 화가들 중에는 우리에게도 알려진 이들이 많은 데, 카미유 코로, 제롬, 드라클라와, 마네, 동통 등이 그들이다. 아마도 그녀는 모델 생활을 하면서, 이들 대부분과 모종의 연인 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동통(Dantan)이란 인물은 거의 기둥서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는 아이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아고스티나는 모델 생활로 돈을 벌어 탕불랭이라는 술집을 연 것 같다. 이제 나이도 40이 넘었으니 모델 생활은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 무렵에 고흐는 이 여인을 만났다.


이 여인은 고흐의 그림을 상당히 좋아했다. 고흐가 와서 술을 엄청 마셨을 텐데 술값은 없으니 대층 그림을 술값으로 받았을 것이다. 한 점 두 점 그의 그림이 술 집 벽에 붙기 시작하였으니 얼마 가지 않아 이 술집은 자연스레 고흐의 그림 전시장이 되었다.


더군다나 고흐에겐 당시 엄청나게 일본 우키요에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1887년 초 그는 자기만 보기가 아까웠든지 그 그림을 전시하기로 결심한다. 아고스티나는 이 때도 그 전시를 자신의 가게에서 하도록 한다.


고흐와 아고스티나의 관계가 어땠을까? 어느 책에는 둘의 관계가 매우 깊어져 그녀가 애를 가졌다느니, 그렇지만 결국 둘은 헤어졌고, 그녀는 애를 지웠다고 쓰여 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특별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고흐의 편지 중에는 그녀가 중절수설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파리 시절의 고흐의 일상사는 애석하게도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것은 그 당시 고흐가 그렇게 잘 썼던 편지가 없기 때문이다. 고흐는 파리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생활했다. 그러니 아무리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고흐라 할지라도 이 당시 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고흐와 이 여인과의 관계도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고스티나는 고흐와 만나고 나서 얼마 뒤 가게 문을 닫는다. 빚을 많이 졌는데 채권자들이 와서 고흐의 그림마저 떼어갔다는 것이다.


1886년 작 누드화, 이 그림의 모델이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라는 주장이 있다. 그 나이치고는 몸이 매우 젋다.


고흐가 이 여인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린 게 두 점 남아 있다. 모두 1887년 겨울쯤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는 지난 번 제30화 <고흐와 에로티시즘>에서 보여 준 첫 번째 누드 그림(오늘 세 번째 그림)도 아고스티나를 그린 것이라고도 하지만 명확치는 않다. 다만 나는 당시 그 그림을 설명하면서 다른 두 점 누드화에 비해 그 모델이 젊고 아름답다는 것만은 인정했다.

카미유 코로가 1866년 그린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그녀의 20대 시절이다.


우선 이 여인의 젊은 날 얼굴을 보자. 마침 19세기 자연주의 미술의 거장 카미유 코로가 그린 이 여인의 초상화를 찾아냈다. 네 번째 그림이 그것인데, 이 그림은 1866년 작으로 그녀의 20대 모습이다. 이 그림으로 보건대 그녀는 젊은 시절 꽤나 예쁜 모델로 몽마르트에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화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불렀고, 돈도 상당히 벌었을 것이다.


그 여인이 고흐를 만난 것은 그 후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인데, 여전히 미모는 있었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다. 첫 번째 그림 <탕불랭에서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 그림을 자세히 살피면 상당히 많은 정보와 화가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이를 위해, 어제 한 시간 이상, 이 그림을 확대해 세밀하게 관찰했다. 마치 방사선과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하듯이 말이다.


우선 탕불랭이라는 공간을 보자. 테이블은 매우 조그맣고, 의자도 작다. 벽에 의자를 붙여 놓은 것을 보면 중앙엔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밤에는 이곳이 춤을 추는 제법 노는 술집이라는 뜻이다.


벽에는 그림이 붙어 있는데, 잘 보면 일본 그림 우키요에다. 아마 지금 고흐가 가지고 있는 우키요에 전시회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아고스티나에 집중해 보자. 그녀는 탕불랭의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녀는 지금 두 잔째를 마시는 중이다. 어떻게 아냐고? 이 그림을 확대해서 맥주잔 아래를 자세히 보라. 잔 받침이 두 개다! 한 잔 마신 다음 그 잔 받침 위에 새 잔 반침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녀의 왼 손가락 사이엔 담배 한 개비가 보인다. 지금 그녀는 지금 술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있는 중이다. 이 당시 여인네치고는 매우 대담한 행동이다. 알다시피 이 시기는 서구여인들도 대놓고 담배를 피울 때가 아니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야 서구여인들도 대중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옷차림과 머리 모양도 예사롭지 않다. 치마는 그런대로 괜찮은 데 윗옷은 매우 튄다. 더욱 머리엔 묘한 털모자를 썼고, 옆에는 매우 화려한 양산이 하나 놓여 있다.


자, 이 정도를 보면 대충 결론이 나온다. 고흐는 전형적인 파리 여인을 그린 게 아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새로운 여성, 신여성을, 그렸다. 양산을 쓰고,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는 여성! 그것은 바로 고흐가 남녀평등을 생각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고로 이 그림은 고흐의 인권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887년 작 <이탈리아 여인>. 이 그림은 고흐의 화풍이 파리에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려준다. 일본 우키요에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두 번째 그림 <이탈리아 여인>은 메시지보다는 회화적 특색이 강한 것이다. 우선 각진 얼굴 모습 때문에 아고스티나인지 아닌지도 의문이 간다. 그림을 매우 평면적으로 그린 게 마치 판화를 보는 기분이다. 통상 인상파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빛에 따른 그림자가 있을 법한데, 이 그림은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2차원의 평면구도다.


뿐만 아니라 배경은 노란색이라 매우 밝고 선명하고, 초상은 그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이 모두가 우키요에에서 받은 영향이다. 그런데 한 가지! 배경을 잘 보면 점묘적 필치가 보인다. 고흐가 시냐크나 쇠라에게서 배운 점묘법이 여기에서도 적용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은 고흐의 화풍이 파리 이전의 그것과는 이제 완전히 결별을 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이 여인이 손으로 살며시 쥐고 있는 게 있다. 두 송이 카네이션! 그게 무엇을 뜻할까. 혹시 이런 뜻인가? “빈센트, 나는 당신이 나를 싫어해도(노란색 카네이션),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게요(흰색 카네이션).”

오늘 금요일이라 평상시보다 말이 길었다. 양해를 구한다.






위 이야기는 필자의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