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반고흐 그림이야기 44화(의자로 그린 두 천재의 초상화)

박찬운 교수 2015. 9. 28. 05:44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44화

<의자로 그린 두 천재의 초상화>


미술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알레고리>를 해독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림의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실제 의미에 다가가는 해석을 말한다. 원래 알레고리라는 말 자체가 ‘다른 것으로 말하기’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알레고리’적 그림에서는 작가가 어떤 것을 형상화했더라도 그것은 비유에 불과하고 실제 의도는 다른 것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알레고리 기법으로 그린 작품을 볼 때는 그림의 이면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게 감상 포인트다. 이런 그림은 겉보기에는 의외로 평범한 게 많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소품 몇 개를 캔버스에 그리기도 하고, 일반적인 인물화나 정물화의 한 귀퉁이에 소품 하나를 살짝 얹어 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통상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작가는 이것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


그림을 그린 작가는 작품을 끝낸 다음 말이 없는 법이다. 더욱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작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어떤 미술작품도 그 독법은 종국적으로 관객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알레고리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한 작품을 둘러싸고, 수많은 독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독법도 있다. 그것은 관객이 얼마나 그 작가를 이해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흐의 그림 대부분은 그 특유의 메타포(비유)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몇 작품은 그 정도를 넘어 아예 알레고리 기법의 그림이라고 해야 할 것도 있다.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지난 번 제29화에서 다루었던 <펼쳐져 있는 성경>(1885년)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다음 고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촛불이 꺼진 책상 위에 낡은 성경책 한 권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 역시 낡은 소설책 한 권이 놓여있다. 매우 간결한 그림인데 고흐는 그 작품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고흐의 작품 중 또 하나의 묘한 알레고리가 숨어 있는 작품은 오늘 보는 두 개의 의자 그림이다. 하나는 <팔걸이가 있는 고갱 의자>(1888년 12월), 또 하나는 <파이프 담뱃대가 있는 고흐 의자>(1888년 12월)이다.


서양회화사에서 고흐만큼 의자를 그린 작가는 없다. 평범한 의자가 정물화의 소재라고 생각한 화가도 없었을 것이다. 고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무슨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에겐 주변에서 발견되는 어떤 생활용품도 정물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거기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재주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독서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엄청난 독서 때문에 그의 머리는 언제나 생각이 넘쳤다. 어떤 사람, 어떤 물건, 어떤 자연적 대상을 보더라도 그의 머리엔 금방 저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자신이 그림으로 그리면 그것이 어떤 예술적 의미로 바뀌는지를 알고 있었다.


오늘 보는 두 개의 의자는 모두 고흐가 고갱과 함께 아를에 있을 때인 1888년 12월에 그렸다. 하나는 고갱을 위한 의자로 또 하나는 자신을 위한 의자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고흐와 고갱과의 관계를 좀 알 필요가 있다.


1888년 12월 작 <팔걸이가 있는 고갱 의자>


고흐가 파리에서 남쪽 나라 프로방스 아를에 온 것은 단지 따뜻한 나라를 찾아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화가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온 것이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생활은 매우 불안했다. 그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기껏 열심히 그렸더라도 싸구려 그림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고흐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공동으로 작품 판매를 해서 화가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소망했다. 그는 물가가 싸고 날씨가 좋은 아를이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동생 테오는 고흐의 그런 생각을 지지했고,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고흐가 화가 공동체 구상을 실현할 첫 번째 동지로 선택한 사람이 파리에서 만난 고갱이었다. 그는 아를에 도착한 후 고갱이 자신과 합류하여 그림을 같이 그리는 것을 학수고대했다. 고갱이 합류하면 다른 인상파 친구들도 그곳으로 하나하나 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고흐는 1888년 여름에 고갱이 오면 함께 살면서 작업을 할 집, 일명 <노란 집>을 구하고, 그 집을 예술가들의 화실로 꾸미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여러 점의 해바라기와 인물화 그리고 풍경화를 <노란 집>을 장식하기 위해 그렸다.


고갱은 그해 10월에 아를에 도착해 고흐와 함께 공동생활에 들어간다. 둘은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살았는데, 셈이 빠른 고갱이 돈 관리를 맡았다. 고흐는 무엇이든지 고갱과 같이 하려고 했다. 당시 고갱이 작성한 비용내역을 보면 두 사람은 심지어 브로델(매춘업소)까지 함께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둘의 관계는 악화된다. 고갱도 한 성격하는 친구인데다, 나이 몇 살(5살) 더 먹었다고 그랬던지 고흐를 항상 가르치려고 하는 데서 사단이 일어났다.


고갱은 미술사에서 인상파를 뛰어 넘어 종합주의라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든 또 다른 천재다. 그것은 인상파 화가들처럼 외형적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과 자신의 경험을 종합하여 가시적인 세계가 아닌 감추어진 세계를 회화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기법이었다. 이것은 강렬한 색과 굵은 선, 단순화한 형태로 나타났다. 고갱은 이런 자신의 화풍을 고흐에게 강조했고 고흐도 몇 점의 그림에서 그것을 시도하기도 했다.(제31화에서 다룬 <아를 경기장> 그림이 고갱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고흐는 고흐였지 고갱이 될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색깔, 자신만의 화풍을 버릴 수가 없었다. 고갱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고흐를 무시했다. 12월이 되면서 날이 추워지자 둘은 매일같이 한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언쟁을 했고, 그 싸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비극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성탄절을 앞두고 고흐가 마침내 사고를 치고 만다.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버린 것이다. 고흐는 그 자른 귀를 종이에 싸서 단골로 다니던 브로델에 가서 매춘부 라셸에게 주고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하는 엽기적 행동을 했다. 이런 이상 행위가 있고나서 고흐는 병원으로 보내졌고, 고갱은 바로 파리로 떠나버렸다.


1888년 12월 작 <파이프 담뱃대가 있는 고흐 의자>


이런 시기에 그려진 두 의자가 과연 어떤 알레고리를 가진 작품인지 이제부터 두 그림에 집중해 보자. 우선 고갱의 의자는 팔걸이가 있고 쿠션이 있는 고급의자다. 주변은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벽에는 가스등이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은 꽤나 품격 있다. 거기에다 의자엔 책 두 권이 올려져있고 옆에선 촛불 하나가 타고 있다.


이에 반해 고흐의 의자는 팔걸이도 없고, 좌석은 밀짚으로 되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의자다. 방바닥은 카펫도 없이 그저 붉은 타일이 깔린 정도다. 벽면은 푸른색의 페인트를 검소하게 칠했고, 그 아래엔 해바라기 몇 송이가 담긴 상자가 하나 있다. 의자 위에 올려놓은 것은 무엇인가? 자세히 보니 고흐가 평소 입에 물던 파이프와 담배다.


왜 고흐는 이 두 개의 의자를 그리면서 하나는 고갱의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것이라 했을까? 이 그림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접근하여 성적 이미지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과도한 공상이다. 나는 이 두 그림을 쉽게 해석하고자 한다. 위에서 그림을 객관적으로 살핀 대로 하나는 화려함을 나타냈고, 다른 하나는 검소함을 나타냈다. 고흐는 고갱을 화려한 사람으로, 자신을 검소한 사람으로 그린 것이다.


고갱의 의자 위에 올려 진 책과 촛불은 무엇일까? 책은 지식을 뜻하니 그것을 통해 고갱이 매우 유식하고 지적인 사람임을 표현한 것이다. 촛불은 그런 사람에 대한 일종의 존경의 표시이며,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염원의 표시이기도 하다. 고흐는 이 그림에서 자신보다 한 수 위인 고갱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고갱이 좀 더 자신과 다정한 친구가 되어 함께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빌면서 촛불을 그렸다.


이에 반해 고흐는 자신의 의자를 통해서 검소하고 단순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밀짚의자란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싸구려 의자다. 그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고흐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는 그렇게 자신과 고갱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조금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갱은 고갱, 고흐는 고흐일 뿐이었다.


이 두 그림은 고흐가 비록 고갱을 존경하지만, 자신은 결코 그의 인생을, 그의 화풍을 그대로 닮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인생 독립선언으로도 볼 수 있다. 두 의자는 고흐가 그린 두 사람의 초상화였던 것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고갱 앞에서 귀를 자르는 엽기적인 행동을 하고 만다. 그것으로 그 둘의 관계는 끝났다. 고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를을 떠났다. 이후 둘은 고흐가 죽을 때까지 본 일이 없다.


이 두 그림은 따로따로 보면 위와 같은 알레고리를 해독하기 어렵다. 지금 고흐 의자는 런던 국립미술관에, 고갱 의자는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에 있다. 언젠가 이 두 그림이 한 곳에서 만나는 날 찬찬히 감상을 할 수 있다면 오늘 내 이야기가 실감날 것이다.






위 이야기는 필자의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