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50화(고흐, 인류역사상 최초의 해골 자화상을 그리다)

박찬운 교수 2015. 11. 5. 22:42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50화

고흐, 인류역사상 최초의 해골 자화상을 그리다

 

작년 11월 고흐 그림이야기 연재를 마치고 한동안 고흐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좀 쉬고 싶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게 무언가에 미치지 않고는 힘든 일인데, 내가 계속 미친 상태에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 글이 읽기는 쉬어도 쓰는 건 보통 어려웠던 게 아니었다. 나는 고흐 그림과 관련된 유일한 글을 쓰고 싶었다. 여기저기에 있는 글을 짜깁기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 어디에서도, 여직 볼 수 없었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매번 글의 주제와 소재를 새로운 시각에서 선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49회 글을 쓰니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으로 마감한 것이다.


반 고흐, <담배피는 해골>, 1885년 말?-1886 년 초?, 암스테르담 고흐 박물관 소장


오늘 오랜만에 고흐 그림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언뜻 보면 좀 끔직한 그림인데... 이름하여 <담배피는 해골>(1886년 초)이라는 그림이다. 내가 오늘 이 그림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 페친과 나눈 댓글 대화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페친이 된 신용문 선생님은 매우 유쾌한 분이다. 신 선생님은 연배가 있으심에도 페북활동이 왕성하신 분인데, 매일같이 예술성 높은 그림이나 사진을 올려 많은 페친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그 많은 포스팅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멋진 여체 사진이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그 중에서도 남성에게, 단연 제일의 꽃은 여인의 벗은 몸이다. 신선생님은 그 자명한 이치를 매일 포스팅으로 증명해 준다. 앞으로도 그와 같은 헌신적 포스팅이 계속이어지길!

오늘 신선생님이 고흐의 이 그림을 포스팅했는데, 내가 댓글로 약간의 설명을 붙인 게 계기가 되어,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이 그림의 비밀을 알아낸 것이다. 그 발견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 이 밤이 가기 전에 여기에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이 글을 쓴다. 

페이스북이란 게 이래서 대단한 것이다. 페북은 잘만 사용하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이곳에 내 지식을 일방적으로 풀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이곳의 페친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자극을 받는다우리는 이곳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다. 그게 바로 옛 선인들이 우리에게 권하는 교학상장의 의미이다..

 

1888년 9월 작 자화상.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것으로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각설하고, 그림 설명에 들어가자. 저 그림은 고흐가 1885년 말부터 1886년 초까지 머문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뜻 보면 무슨 금연을 경고하는 그림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100프로 아니 1,000프로 틀린 이야기다. 절대로 저건 금연과 관련이 없다. 그럼 무엇일까?

이 그림에 대한 자료는 아무리 찾아봐도 별스런 게 없다. 단지 이 시기는 고흐가 앤트워프에서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합격해 잠시 그림공부를 했던 때니 회화의 기초로 그린 두개골 그림일 것이라는 설명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오늘 찬찬히 뜯어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해설, 새로운 학설을 하나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쩜 세계 미술사학계에 보고할 만한 대발견이다!(ㅎㅎ. 뻥을 치는 것 같지만 ...정말 입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곧 자화상이다. 나는 고흐 그림이야기 제43화에서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일별한 바 있다. 그 이야기에서 나는 이 그림이야기를 넣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까진 이 그림을 알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이 그림을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밤, 이 그림이 고흐의 자화상 중 가장 놀랄만한 그림 중 하나라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고흐의 자화상과 <담배피는 해골>을 겹쳐 놓았다. (페친 신용문 선생 작). 어떤가? 해골이 고흐 바로 자신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가?


고흐는 앤트워프 시절 엄청나게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의지는 불타고 있었지만 정신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다 치통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마저 느끼고 있었다. 동생이 보내주는 돈은 있었지만 그 돈만으론 그림공부도 작품활동도 하기엔  사실 어림도 없었다.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극히 어려운 신세였다

18862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썼다. “18855월 이후 따뜻한 식사를 해본 건 6번밖에 없다.” 이 정도면 거의 절망적 상태다. 죽음의 사신이 밤낮으로 고흐를 유혹하지 않았을까.

고흐가 언제부터 흡연을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내가 고흐 편지 전체를 관리하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사이트를 통해 확인해보니검색어만 넣으면 간단히 알 수 있다고흐가 최초로 편지에서 흡연을 이야기한 게 그의 나이 20세가 되던 18733월이었다. 그는 한 편지에서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테오야, 내가 다시 너에게 권하는 데 너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야 해. 그게 얼마나 좋은 지 아니. 그건 네가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좋은 상태를 만들어 줄 거야. 내가 요즘 그렇거든.”(1873317)

이런 것으로 보아 고흐는 이미 십대 말부터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고, 나이 20이 넘어서부터는 이미 골초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담배가 얼마나 좋으면 동생까지 꼬시는 정도가 되었을까. 여하튼 여러 편지를 분석해 보면 고흐는 죽을 때까지 헤비 스모커였음이 틀림없다. 내가 발견한 편지 몇 통에서 고흐는 자신이 과도하게 담배를 피고 있다는 것과 그게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고흐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를 잠시라도 위로할 수 있는 것으로 그만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우리는 저 그림을 쉽게 해석할 수 있다. 고흐는 저 그림에서 해골이란 것을 통해서 죽음 혹은 고통을, 담배라는 것을 통해서 위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저 그림이 고흐의 자화상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고흐는 그저 고통과 위로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닌가. 그런데 무슨 근거로 저것이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대 발견 운운하는가? 거기엔 분명히 근거가 있다. 나는 오늘 저 그림을 유심히 보면서 순간적으로 저 두개골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보았을까?

독자 여러분, 오늘 아침 포스팅한 제43화 고흐의 자화상 중 그 빡빡머리고흐를 기억하는가? 18889월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그 자화상 말이다. 그 자화상의 머리와 이 해골상이 유사하지 않은가? 나는 이 생각이 퍼뜩 들어 두 그림을 겹쳐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담배피는 해골은 바로 고흐의 두개골, 고흐의 해골이었다!

이 말을 신용문 선생님이 포스팅한 저 해골 그림 아래에 댓글로 달았더니 신 선생님이 당장 이 두 그림을 합성해 콜라주를 만들어 주셨다. 이제 신 선생님이 만드신 콜라주를 보시라. 거의 정확하게 두 그림의 두개골이 일치하지 않는가!

이로써 이 <담배피는 해골> 그림은 고흐의 자화상이 분명해졌다. 고흐는 앤트워프의 삶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그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려줌으로써 죽음 같은 고통을 잠시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 불쌍한 우리의 빈센트 반 고흐! 인류역사상 이런 자화상을 그린 이가 누가 있겠는가? 나는 확신하건대, 그건 당신밖에 없소.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인간의 고통, 그 절정의 모습을 바로 저렇게 그렸단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