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반 고흐 그림이야기 38화(밀밭에서 삶의 진실을 그리다)

박찬운 교수 2015. 10. 27. 09:45

빈센트 반 고흐 그림 이야기 제38화

<밀밭에서 삶의 진실을 그리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지금 새벽 4시, 저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자판을 두드립니다. 빈센트 반 고흐,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2014년 가을을 이렇게 온전히 바치고 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그는 37세의 나이에 외로이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합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감동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가 죽은 지 12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의 한 남자는 이 새벽에 일어나 그가 남긴 그림을 보고 감동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쓰고 있는가요. 이 자체가 신비함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그 신비함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지요.』


<씨 뿌리는 사람> (1886).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모방한 것이지만 색감과 구도는 완전히 재창조된 그림이다. 빛나는 태양과 노란 하늘 그리고 보라색 밭! 거기에서 아래 한 사람의 농부가 씨를 뿌린다. 색깔이 매우 대조적이라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10년 동안 고흐가 그린 그림을 쭉 살펴보면, 그의 작품은 대략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의 세 장르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풍경화는 대부분 그가 살았던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인데, 가장 눈여겨 볼만한 그림은 역시 밀밭 풍경화다. 고흐는 수 십 점—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ㅡ의 밀밭 풍경화를 남겼다.


고흐는 왜 그리도 많은 밀밭 그림을 그렸을까? 나는 지난 주말 내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밀밭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고흐는 풍경화를 그림에 있어 우리 일상과 거리가 있는 것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삶과 가장 밀접한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렸다. 밀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밀은 인간(서양인)의 삶에서 하루라도 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고흐에게 있어 그것은 화가라면 당연히 그려야 할 대상이었다.


<일출 아래 밀밭> (1889년 12월). 고흐가 생레미의 요양소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요양소 주변은 이렇게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빛나는 해와 그것에 반사된 밀밭! 밀밭은 담장이 쳐져 있다.


밀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쌀이나 마찬가지다. 서양 사람들의 밥인 빵이 그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밀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서양 문명을 지배해 온 기독교, 그 성경에서 밀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잘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 중 밀에 대한 비유를 들어보자.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마가복음 4장 3절-8절)


<밀밭 속의 농가> (1888년 5월). 고흐가 아를에 도착하자마자 아를 인근의 농촌을 그린 것이다. 밀은 아직 익기 전인데 농가 한 채가 외로이 들판 한 가운데에 있다. 이때까지는 임파스토 기법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색감은 한층 밝아졌다.


하느님의 말씀의 씨가 곧 밀알이다. 고흐는 목사의 아들이고, 한 때 목사 지망생이기도 했다. 당연히 어릴 때부터 성경을 탐독했다. 그러니 인생사에서 뗄 수 없는 밀의 이미지는 고흐에게 자연스레 신념화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런 밀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그려야 한다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흐는 밀의 성장 과장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생로병사라는 인생 사이클을 밀밭에서 본 것이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는 것은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씨가 싹을 튼 다음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인생의 청년기다. 어느새 밀알이 익어 고개를 숙이면 농부는 수확을 준비하는데, 이것은 인생의 장년기 혹은 황혼기를 말한다. 밀짚만 남겨진 황량한 밀밭, 그것은 인간에겐 죽음이다.


<일몰 속의 밀밭> (1888년 6월). 아를 주변의 밀밭인데 지금 시각은 해가 지면서 사방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저 멀리 공장에서 연기가 올라가고 있다. 산업화 되어가는 도시와 밀이 익어가는 농촌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밀의 수확은 얼마나 농부가 정성을 기울였느냐에 달라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인생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실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밀알이 십 배, 백 배의 수확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농부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기상 조건이라는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적당한 때에 비가 내리고 충분한 햇빛이 제공되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운이 필요하다.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덕성(virtus)에 운명의 신(fortuna)이 손을 내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고흐는 바로 이런 것을 밀밭을 통해 발견하고 그것을 그렸다. 그것이 화가의 가장 진실한 행위라는 것을 믿으면서......


고흐는 무엇보다 인간의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땀의 소중함을 알았고, 들판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삶을 경외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 땡볕에서 허리를 굽히고 밀을 베는 농부, 땀을 잠시 시키고자 건초더미 아래에서 누운 농부는 그에겐 존경의 대상 그 이상의 존재였다.


오늘 보여주는 밀밭 그림은 고흐가 1885년부터 죽을 때까지 5년간 그린 밀밭 풍경화 중에서 내가 평소 좋아하는 작품들이다. 나는 그 소개 순서를 위에서 이야기한 인생 사이클의 입장에서 배치했다.


<일출 아래 수확하는 농부> (1889년 9월). 생레미 시절의 그림이다. 농부는 아침 일찍부터 밀을 수확하고 있다. 한 낮에는 너무 더워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침이란 느낌을 주기 위해 하늘을 일부러 노란색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태양의 발광도 거의 없다.


첫째 그림은 <씨 뿌리는 사람>(1888년 6월)이다. 아를의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한 농부가 씨를 뿌린다. 이 씨가 뿌려짐으로써 우리 인생도 제1막이 시작된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동생 테오에게 그 맘을 이렇게 썼다.


“어제와 오늘, 나는 이제까지 그려오던 <씨 뿌리는 사람>을 완전히 다르게 그렸어. 하늘은 노란색과 녹색, 땅은 보라색과 오렌지색이야. 이처럼 놀라운 소재는 꼭 그림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하든 내가 하든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란단다.”(1888년 6월 28일 편지)


두 번째 <일출 아래 밀밭> (1889년 12월)과 세 번째 <밀밭 속의 농가> (1888년 5월)는 각각 아를과 생레미 주변의 밀밭이다. 이제 밀알은 싹을 틔워 무성한 밀밭을 이루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이다.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면 청년기다. 정열적으로 살아가면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바로 저 무럭무럭 자라는 밀이다.


네 번째 <일몰 속의 밀밭> (1888년 6월)는 아를 주변의 밀밭인데 해가 지면서 사방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저렇게 저물 날이 올 것이다. 저 멀리 공장에서 연기가 올라가고 있다. 산업화 되어가는 도시와 밀이 익어가는 농촌! 묘한 조화지만 언젠가 공장의 굴뚝에 의해 저 아름다운 농촌은 위협받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삶도 항상 안전하진 않다. 낭만적인 것 같으면서도 언제 불안한 내일이 엄습할지 모른다.


<밀 짚단이 세워진 밀밭>(1885년 9월) 고흐의 누에넨 시절 작품이다. 그림 전체를 노란색으로 그렸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다.


다섯 번째 <일출 아래 수확하는 농부> (1889년 9월)는 생레미 시절의 그림이다. 아침이란 느낌을 주기 위해 하늘을 일부러 노란색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태양의 발광도 거의 없다. 농부가 아침 일찍부터 밀을 열심히 베고 있다. 밀은 제 때에 수확하지 못하면 썩는다. 또한 한 낮에는 너무 더워 일하기도 쉽지 않다. 노년의 삶을 맞이할 우리는 어떤 것을 수확할 수 있을까. 제 때에 그것들을 수확할 수 있을까.


여섯 번째 <밀 짚단이 세워진 밀밭>(1885년 9월)과 일곱 번째<월출 아래 밀 짚단이 있는 밀밭)(1889년 6월)은 수확이 끝난 후 밀 짚단이 밀밭에 쌓여 있는 그림이다. 전자는 누에넨 시절, 후자는 생레미 시절의 그림이다. 밀알은 없어졌고, 밭에는 이제 짚단만 남았다. 저것은 이제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밀의 운명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어떤 사람도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이들 그림 중 여섯 번째 그림(1885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1888년 아를 이후의 작품이다. 한 눈에 보아도 화풍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여섯 번째 누에넨 시절의 그림도 전체를 노란색으로 그린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의 노란색과는 판이하다. 노란색이라고 해서 항상 밝은 것이 아니다. 노란색도 이렇게 그리면 어둡고 침울하다. 하지만 아를 이후의 작품은 모두가 화려한 노란색이다. 거기다가 붓 칠도 소위 임파스토 기법을 기본으로 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칠한 이 기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월출 아래 밀 짚단이 있는 밀밭)(1890년 6월)작품이다. 오베르 시절의 그림인데, 보름달이 뜨면서 밀 짚단이 있는 밀밭이 훤하게 드러난다. 푸른색과 노란색의 대비 그리고 점묘적 기법이 그림의 특징이다.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오베르의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쏘았다고 전해진다. 이것도 참으로 아이러니다. 고흐에겐 밀밭이란 삶의 진실을 상징하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 밀밭에서 죽음을 선택한 게 그에겐 진실한 삶의 표현이었을까?(사실 고흐의 자살을 둘러싼 많은 추측이 있으나 어느 것도 신뢰하긴 어렵다. 그가 남긴 편지나 죽기 직전의 행적에서 자살의 동기를 추정하긴 대단히 어렵다.) 고흐를 둘러싼 최대의 미스터리다.



위 이야기는 필자의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