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낭만

밤하늘의 별 하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대한 일

박찬운 교수 2015. 11. 27. 15:03

밤하늘의 별 하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대한 일

 

20여 년 전 처음으로 북경을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중국 율사 한 분이 이런 말 한 게 기억난다. “좋은 식당 하나 발견하는 게 밤하늘의 별 하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대하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 말은 물질을 중시하는 유물론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하는 말이리라.

 

이런 이유로 나는 오랜 기간 알게 모르게 좋은 식당을 찾아다녔다. 이게 내가 즐기는 낭만기행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여기서 말하는 좋은 식당이란 값비싼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서민을 위한 식당이지만 특별한 맛을 내는 집을 말한다. 칼국수는 어딜 가도 있지만 맛은 천차만별이지 않는가.

 

10년 전 학교로 옮긴 뒤로 틈나는 대로 캠퍼스 주변 맛집을 찾았다. 그런데 의외로 맛집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서 이제껏 찾아낸 맛집이 불과 6-7개를 넘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다. 누구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수만으론 앞으로도 십 년 이상이나 더 남은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지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맛집이라도 너무 자주가면 그  맛도 식상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최근 들어 나는 맛집 리스트를 좀 더 보강하려고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좋은 정보만 있다면 점심 때 산책 겸 해서 왕복 5킬로미터 정도를 다녀올 각오는 언제든지 되어 있다. 사실 점심 때 마다 주변 식당을 닥치는 대로 전전하면 의외로 맛집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을 텐데 그러질 못한다. 그렇게 해서 혹시나 망가질 단 한 번의 점심 식사가 내겐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맛집 리스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오늘은 열 일 제치고 맛 집 하나를 개발하기로 맘먹었다. 목표는 최근 들어 자주 가는 뚝섬 역 부근. 분명히 이곳엔 내가 다니는 단골집 외에도 몇 군데 맛집이 더 있을만한 곳이다. 박아무개 하면...모험심으로 가득 찬 사람인데, 요즘 너무 소극적으로 생활했다. 이 고리를 오늘 맛집 개척으로 끊기로 했다.

 

뚝섬역 부근은 요즘 서울숲으로 인해 점점 뜨고 있지만 아직까진 공장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울에선 외진 곳이다. 때문에 이곳 맛집은 허름한 게 특징이다. 도저히 저런 곳이 맛집일 것 같지 않은데, 그곳이 맛집이란다. 나는 그런 음식점을 좋아한다.

 

식당을 찾기 전 이 부근을 갈 때마다 들리는 커피숍엘 들어갔다. 마침 한산한 시간대라 커피를 내리고 있는 사장님에게 물어보기 좋은 타이밍이다. “사장님,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집 좀 한 군데 소개해 주세요?” “글쎄요. 제가 잘 가는 곳이 있긴 한데, 그곳이 선생님 입맛에 맞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을 가보시지요. 순대 국밥집인데 이 동네에선 꽤 유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 식당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일이...“손님, 혼자 오셨으면 지금은 안 됩니다. 1시 이후에 오세요.” “, 한 시간 이상이나 기다리라고요? 세상에 혼자 왔다고 자리를 내주지 않는 집이 어디에 있어요?” 내 입에선 당장 욕이라도 튀어나올 기세였다. 하지만 꾹 참았다. 마침 나보다 일찍 온 손님 중 한 분이 저하고 합석하시지요?” 하는 바람에 그 어색한 국면은 해결됐다. 식당 서비스로선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탄(?)할 만한 곳이다. 과연 이런 기분으로 맛이 날까?

 

잠시 뒤 순대국밥 한 그릇이 나왔다. 일명 육개장 순대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는 순간, 나는 알고 말았다. 왜 이집 사장님이 그렇게도 도도하게 한 시간 뒤에 오라는 사실을. 이 정도 표현으로 될까? 맛의 예술! 맛의 지존! 내가 이제껏 먹어 본 순대국밥과는 레벨이 다른 맛이다.

 

그 맛을 무엇과 비교할까? 얼마 전 부산에서 맛보았던 돼지국밥? 아무래도 그 보단 두 배는 더 맛이 있다! 뭐 이 정도가 되니 서비스가 그렇게 개판이라도 살아남으리라. 맛으론 대체불가하니 식당은 영원히 갑, 손님은 영원히 을일 수밖에 없으렷다.

 

수모를 당하고 밥을 먹었지만 식당을 나오는 내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걸 득의만면! 오늘 내 수첩에 적어 둘 맛집 하나가 늘었기 때문이다. 10년에 6-7개 밖에 발견하지 못한 맛집에 하나를 더한다는 건 역시 밤하늘에 별 하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대한 일이다. 그게 오늘 점심, 방금 전에 일어났다.

 

*식당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건 혹시나 이 글이 그 집 소개 글로 읽힐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꼭 이 집을 알아야겠다는 페친들께서는 조용히 메신저로 연락해 주기 바란다. 성의껏 알려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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