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살아있는 자의 책무--세월호 참사 1주기에 부쳐--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43

[살아있는 자의 책무--세월호 참사 1주기에 부쳐--]


신원권(伸寃權)이란 권리가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나머지 구성원이 그 진상을 밝혀내고 본인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판례에서도 가끔 보이는 권리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권리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가에 의해 개인이 그 생명과 재산을 무참하게 침해당했음에도 서슬 퍼런 권력 때문에 오랜 기간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온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켰고, 국가의 존립근거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어 제대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국민들 사이에서 원한 있는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혹시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 신원권이 권리개념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는 데에는 국제인권법의 대가인 반 보벤이라는 학자의 공이 크다. 그는 20여 년 전 유엔인권위원회에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당한 희생자의 복권 및 배상 등 원상회복권리에 관한 주요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서 그는 다음 사항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신원권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희생자 및 가족에 대한 완전한 금전적 배상이 실시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진료·고용·주택·교육 등의 형태에 의한 배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금전적 배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나는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사실규명을 하고 이를 완전히 공개한다.

둘째, 침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한다.

셋째,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한다.

넷째, 희생자 및 가족과 증인을 보호한다.

다섯째, 희생자에 대하여 애도하고 기념한다.

여섯째, 희생자에 대하여 지원하고 이에 필요한 기관을 설치한다.

일곱째, 침해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한다.


오늘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이날 우리가 무엇을 다짐해야할까. 바로 저 신원권을 생각해야 한다. 권리자가 있다면 반드시 의무자가 있는 법이다. 세월호 신원권의 의무자는 누구인가? 살아있는 모든 자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한을 풀어주는 게 우리들 살아있는 자의 책임이자 의무란 말이다.(2015.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