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행정법규 국회 수정요구 논쟁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12

국회 수정요구권의 성격에 관하여


어제에 이어 재미없는 말을 한 번 더 해야겠다. 사실 나는 요즘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이런 것보다 내 본업인 인권법을 비롯하여 역사, 문학, 예술, 여행... 그런 데에 필이 꽂혀 있다. 그런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사는 이 대한민국 전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법률전문가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한 번 더 자판을 두드린다.


국회가 행정부의 시행령 등 행정법규가 모법인 법률에 위반될 때 수정을 요구하는 국회법(제98조의 2)을 개정하자 그 성격에 관해 논란이 있다. 야당은 이 수정요구가 강제성이 있는 것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 여당은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여당과 야당이 해당 조항에 강제성이 ‘있다, 없다’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어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강제성 유무에 대한 (여야) 입장이 통일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간단히 정리하도록 한다. 법률을 모르는 분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은 없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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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통령령이 모법인 법률에 위반된다고 국회가 판단하여, 그것을 법률의 취지에 맞추어 수정할 것을 국회가 요구했다고 하자. 이 요구가 어떤 성격일까? 지금 한쪽은 강제성이 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없다고 한다.

여기서 강제성이란 말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 국회가 행정부의 목을 비틀 수 있는 강제력은 없다. 말이 강제이지 그것은 법적의무란 말에 다름 아니다. 즉, 국회의 수정요구에 행정부가 따라야 할 법적의무가 있는가가 강제성의 실체이다.


강제성을 법적의무로 이해하면, 행정부는 개정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 수정요구에 마땅히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수정요구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된 그 대통령령이 바로 효력정지 되거나 무효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만일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삼권분립의 헌법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문제의 대통령령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무효로 선언되거나 행정부가 스스로 수정하기 전에는 여전히 효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문제된 대통령령의 수정요구를 했음에도 행정부가 따르지 않으면, 국회는 그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이 문제를 사법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거기서 그 대통령령의 유무효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다른 예로 설명해 보자.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때, 이것은 채권자의 권리에 기한 것이고, 채무자가 이에 따르는 건 법적의무이다. 하지만 종종 채무자는 여러 이유를 대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채권자로서는 별 수가 없다. 법적 권리를 보호받기 받기 위해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국회의 대통령령 수정요구도 이런 것이다. 국회(채권자)가 수정요구권(채권)에 따라 수정을 요구하지만 상대방인 행정부(채무자)가 그것(채무, 법적의무인 수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결국 이 문제는 사법부(헌법재판소 혹은 법원)로 가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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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도 참으로 답답하다. 이런 자명한 법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여당이나 야당 모두에게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률의 의미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게 우리 입법부의 현실이다. 도대체 그 머리 좋은 율사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대로 법학공부를 했다면 이런 정도를 모른다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입법부가 대통령령 수정요구를 한다고 그게 헌법위반일까?


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 헌법논쟁이 활발하다. 법률의 집행을 위해 만들어지는 행정부의 행정법규(시행령인 대통령령이 대표적인 행정법규임 )에 대한 국회 수정요구권을 정한 국회법에 관한 것이다. 매우 중요한 논쟁인데, 아쉽게도 전문가들의 제대로 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몇몇 헌법 권위자라는 분들이 인터뷰에 응한 모양인데, 유감스럽게도,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런 분들이 어찌 헌법권위자로 불리는지 지극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 여야는 국회법 98조의 2 제3항 (시행령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는 소관 부처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을 '국회는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청와대는 이 개정이 위헌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행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질 우려가 크다”(홍보수석)고 경고하였다.

과연 그런가? 국회가 행정부가 만든 시행령이 법률에 위반된다면서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삼권분립을 정한 헌법에 위반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같은 주장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 간단히 그 이유를 여기에 적시한다.


1. 행정부의 시행령은 법률에 위반될 수 없다.

행정부의 행정입법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집행하는 하위법령을 만드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법률을 위반할 수 없고, 만일 위반되면 그 법규(시행령 등)는 무효이다. 효력이 없다는 말이다.


2. 입법부가 행정부의 행정입법의 법률위반 여부를 감독하는 것은 입법부의 고유권한이다.

행정이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다. 행정부의 집행은 법률에 위반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입법부는 행정부의 법률집행이 위법하지 않도록 일정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나온다. 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행정법규가 만들어졌을 경우 즉시 입법부에 보고하고 만일 그것이 법률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면 그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반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입법부의 직무유기다. 세상에 어떤 (제대로 된) 입법부가 행정부의 하위법령이 모법인 법률을 위반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만일 그런 입법부라면 행정부의 통법부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