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단상
-생기있는 삶을 위하여-
내게 있어 나이가 들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욕망의 감소다. 육체적 욕망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정신적 욕망마저 줄어든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의 쇠퇴는 심각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뭔가를 새롭게 안다는 게 즐거움이었다. 독서를 평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하철 속에서도 책을 읽었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지참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새 책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주문하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이 책이 쌓여갔다.
그런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시나브로 약해졌다. 온갖 매체에선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지만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일로 치부했다. 문자를 읽는 게 피곤해지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나와도 그것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다. 자연스레 책 주문량도 떨어지니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최우등 고객 등급도 낮아지고 말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여전히 길지만 우두커니 앉아 시간만 죽이는 일이 잦아졌다. 한마디로 내 상태를 말하면, 하고 싶은 게 별로 없고 매사가 귀찮다.
정년이 되려면 아직 몇 년이 남았지만 그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학교를 떠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변호사 생활, 공직 생활, 그리고 교수 생활을 30년 이상 했으니 충분하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다잡고 몇 년을 더 버텨야 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그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가족도 그래 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생 2막을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인생 후반기가 위험할 거라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생기 있는 삶이 앞으로도 가능할까. 돌아오는 여름방학엔 배낭을 매고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고 싶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나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손에 잡히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까?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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