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박판석옹 분투기

박찬운 교수 2017. 10. 4. 20:14

소설 아닌 소설(12)

박판석옹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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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예술가의 아버지'(1861),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세잔의 아버지는 은행가로 부유한 사람이었다. 항상 아들을 지원했고 화가로 성장하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세잔은 존경하는 아버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1.
박판석 옹, 올해 88세. 연세에 비해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씩씩하다. 눈매까지 날카로우니 예사로운 분이 아님이 분명하다. 박옹의 이력을 좀 이야기하자면 한국 전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옹은 전쟁이 한창일 때 국군 장교로 임관해, 전쟁 막바지 철의 삼각지대 중 하나로 알려진 김화에서, 소대장으로 인민군과 격전을 벌렸다. 밀리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고 기어코 고지를 지켜냈다. 그에게 지금도 보배 중 보배는 당시 받은 을지무공훈장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엔, 충청도 어느 벽촌에서 면장 생활을 했고, 70년 대 초 식솔을 거느리고 서울로 상경했다. 고지를 지켜낸 군인이었고, 시골 면장이지만 자존심만큼은 누구보다 높았건만, 사고무친한 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에게 서울 생활 40년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는 삶의 전투를 하루하루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목숨은 질긴 것, 그는 살아남았고, 어느새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

2. 
“아버지, 이제 좀 집에서 쉬면서 조용히 건강이나 돌보세요. 노인회 일도 그만 하실 때가 되었잖습니까?”
“야, 나도 그리 살고 싶다만 그게 쉽지 않구나. 지금 우리 노인정 가보면 다 나만 보고 있어. 내가 과거 군에서 중대장도 하고 면장도 했다 하니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잖니. 한 1-2년 더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번 어느 할아버지하고 싸우셨다면서요?”
“야, 이 아비가 누구하고 싸울 처지냐. 그 일은 그 때 노인회에 처음 들어온 젊은 친구가 버릇이 없이 굴어서 훈계를 한 것이고... 아 그놈 이제 갓 70 넘은 놈이, 좀 배웠다고 지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노인들한테, 반말을 하고... 내가 그걸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니.”
“아버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뭘 어떻게 해, 내가 그 놈 멱살을 잡고, ‘야, 이 개놈의 새끼야, 네가 여기가 어딘데, 어른들 앞에서 까부냐’고 했지. ‘너 이노무 자식, 앞으로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놀면 다리몽댕이를 뿐질러 놓을 거야’하고 소리를 꽥 질렀지”
“허허, 그랬더니요?”
“그 자식, 그리고 난 뒤엔 노인정엔 코빼기도 안 보여.”

박판석옹은 동네에서 이렇게 사신다.

3. 
“야, 그것 무리한 것 아니니. 아버지가 올해 몇 세니? 그런 것을 사드린다고 해서 사용하실 수 있을까? 그냥 폴더 폰이나 사드리지...”
“아냐, 오빠, 노인들도 이런 스마트 폰을 사용해야 치매에 좋데요. 그리고 아버지가 이것을 얼마나 갖고 싶었는데...”
“내가 인터넷 마음껏 하시라고 데이터도 무제한으로 가입해 드렸어요.”
“아버지가 정말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을까?”


4.
“동혁아, 아배 면목이 없다. 내 너희들하고 매일같이 카톡이란 걸 하고 싶어서 이 스마트 폰을 사달라고 했는데... 도무지 뭔지를 몰라 사용을 할 수가 없구나. 체면불구다. 오늘 네가 나한테 확실하게 카톡 사용하는 거 가르쳐 줘야겠다.”
“하하, 아버지, 그거 어렵지 않아요. 그저 몇 번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 되는 건데... 자 그럼 제가 하라는 대로 해보세요. 우선, 카톡 앱을 톡치고.... 보낼 사람을 고르고... 거기 아래 + 를 치세요. 그럼 뭐 많이 나오지요. 그 중에서 사진을 치고... 그 사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다음.... 그리고 전송을 치세요. 아주 쉽잖아요?” 
“이렇게 말이냐? 어, 그런데... 왜 그게 안 나오지? 너는 톡톡 치면 뭐가 나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냐?”
“아 그거 너무 세게 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톡 치세요. 아, 그렇지요. 아... 그래요. 그렇게 하시면 되는 겁니다. 벌써 제게로 사진이 와 있잖아요. 여기 보세요.”
“어? 그렇구나. 그 사진이 내가 보낸 거라고? 내가 카톡으로?”

5. 
“아버지, 제가 카톡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왜 답장이 없으세요?”
“네가 뭘 보냈다고? 그래? 야, 이것 어떻게 한다고? 나, 그새 잊어 버렸다. 뭘 치면 그 카톡 보낸 것 볼 수 있니?”
“아, 노란 카톡 앱 있잖아요? 그것 보면 지금 숫자가 보이지요? 그게 카톡 문자가 와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것을 톡 치세요. 그리고 맨 위 제 이름 보일 거예요. 그것을 치세요.”
“그래? 음... 그렇구나. 지금 치니 뭔가 보인다.”
“아버지, 그것 연습 안하시면 자꾸 잊어버립니다. 하루에 제게 열 번씩 뭐든지 보내세요. 사진도 찍은 다음, 카톡에 들어가서 저에게 보네세요. 알았지요?”


6.
“오빠, 오늘 아버지에게서 카톡 받았어요. 오빠 사진을 보내셨더라고요?”
“아 그러니? 드디어 아버지가 카톡을 하실 줄 아는구나. 야, 너 스마트 폰 잘 사드렸다.”
“아버지에게 아까 전화를 드렸더니 오빠한테서 확실히 배웠다고 하시네요.”
“하하 그래? 나도 바로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야겠다.”
........

<카톡 문자>

나: 아버지, 축하합니다. 드디어 카톡을 하시는군요!
아버지: 그럼, 내가 그것을 못하겠니. 내가 이래봬도 전쟁영웅 아인가.
나: 아, 그럼요, 전쟁영웅이 그까짓 카톡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버지: 아, 그럼. 카톡이 뭐 대수냐. 이제 너하고 카톡으로 얼굴 보며 말하자. 다음 주엔 여기 와서 그거나 가르쳐 다오.
나: 엥? ......

이것이 박판석 옹의 하루하루다. 아들 박동혁이 추석 날 밤 만월을 보며 박옹의 건강을 빈다. “아버지, 만수무강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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