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어느 재벌가 이야기

박찬운 교수 2018. 4. 19. 09:36

소설 아닌 소설(14)


어느 재벌가 이야기

-항공재벌 호양조 휴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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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양조 회장이 조양호 일가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제 나이 80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라도 지난날을 회고해 달라고 하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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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 호양조, 희성의 가문입니다만, 제 선대는 대한민국 최대의 항공회사 한국한공을 만들어 굴지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저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누구보다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여행을 좋아하는 지라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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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왔지만 제 마음 속엔 항상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죄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선대가 만들어 준 부가 과연 온전히 내 것일 수 있을까? 그 부를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것인가? 젊은 시절부터 그런 질문을 수 없이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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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남인 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뒤를 이어 그룹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미 생각은 굳혔습니다만 그 때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상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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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저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한국항공 주식의 30%(가문 전체로는 60%)와 전국 각지의 부동산 그리고 수 천 억의 금융자산이 제 재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재산 대부분을 출연해 재단법인을 만들어, 그것을 운영하는 대신, 한국항공 경영에선 손을 뗐습니다. 제가 한국항공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최대주주인 재단의 대표로 훌륭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는 데에만 국한해 왔습니다. 저는 한국항공을 이용할 때도 특별한 혜택을 받지 않습니다. 모두 제 계산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외국에 다닐 때는 항공사에 특별히 부탁합니다. 저를 아는 척 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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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재단의 주된 설립목적은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지원입니다. 국가지원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분야를 선정해서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재단이 만들어진 이후 지난 30년 간 저희 재단이 지원한 규모는 2조가 넘습니다. 그 지원으로 성공적인 연구자가 셀 수 없이 나왔고, 작년엔 마침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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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처는 평소 봉사활동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시집 와서 한동안 아이들 교육에만 신경을 쓰다가 나이 40이 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도 재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복지법인인데 이곳에선 미혼모를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성교육, 미혼모의 출산과 아이 양육을 지원함으로써, 그 가정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 딸 '아현'과 '민현'은 엄마의 복지재단 일을 돕고 있습니다. 모두 대학에서 복지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입니다. 아들 '태원'은 대학에서 이집트 고고학을 공부한 고고학 교수입니다. 틈틈이 재단 일을 도와주어 왔는데, 대학정년 뒤엔 재단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전형적인 학자라 번잡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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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대가 만들어 지금 세계적 기업이 된 한국항공이 더욱 발전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과 세계 시민 누구나 여행을 할 때 한국항공을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반세기 한국항공은 성공적인 역사를 썼습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기에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전문 경영인들과 종업원들이 노사화합을 토대로 더욱 발전시켜 줄 거라 믿습니다. 한국항공은 주주만의 기업이 아닙니다. 1만 명의 임직원과 이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자가 주인입니다. 결코 군림하는 기업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저와 제 가문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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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이 수익을 많이 내면 저는 그것을 제가 운영하는 재단 그리고 제 집사람이 운영하는 복지법인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손가락질 받는 재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 왔습니다. 눈을 감을 때 부자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 가족은 저의 이런 생각을 전폭적으로 존중합니다. 자식들은 우리 부부가 해왔던 이 일들을 이어 받을 겁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온 간단한 이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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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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