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안상준 변호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박찬운 교수 2017. 8. 12. 11:13

소설 아닌 소설(11)


안상준 변호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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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상준 변호사. 올해 40세. 변호사 경력 10년 째. 그는 조그만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시민단체에서 활발하게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다. 나하고는 변호사 경력으로 꼭 20년 차가 나니 까마득한 후배다. 하지만 무슨 운명인지 우리는 큰 격의 없이 변호사 동료로 지낸다. 법조계의 기수문화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늘 그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가끔 이런 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그도 나를 무척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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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 안 변호사님, 왜 그리 비협조적이십니까? 접견하는 장면 사진 찍으면 왜 안 됩니까? 그것 찍어서 기록에 편철하려고 합니다. 하도 접견과 관련해 이의를 많이 하시니 저희들도 욕 먹기 싫어서 그럽니다.”
“이보세요.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변호인 접견은 비밀접견입니다. 그 장면을 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사진찍는다고요? 그것은 명백히 초상권 침해입니다. 나는 절대로 동의해줄 수 없어요.”
“참 나, 안변호사님, 저기 계신 변호사님이 누군지 아시지요? 안변호사님 한참 선배되시는 박동혁 변호사님 아닙니까. 저분 조금 전에 변호인 접견마치셨는데, 그 때 사진 찍었습니다. 사진 찍겠다고 하니까 그저 쿨하게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왜 안변호사님은 안 된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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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나도 꽤나 알려질 정도로 인권변호를 해왔지만 나는 경찰관하고도 또는 국정원 직원하고도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선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나 또한 저들과 같은 신세라면 그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을 것이란 생각에 양보하고 또 양보했다. 물론 본질적인 것에선 결코 후퇴하지 않으리란 굳은 결심이야 있었지만.


그런데 안변호사는 그렇지 않다. 그는 한번 원칙을 세우면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섬이 없다.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상황이 와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그가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어떤 날은 형사들과 싸우고 또 어떤 날은 검사들과 피 튀기는 설전을 편다. 어떤 회의장에선 절대 소수의 위치에서 굴하지 않고 절대 다수파 인사들과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안변호사의 행동에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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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 변호사는 이런 성격 때문인지 돈을 모으질 못했다. 변호사 개업 이래 10년이 지났지만 그 흔한 자동차마저 장만하지 못했다. 집도 서울 변두리에 위치해 사무실을 오가는 데만 왕복 서너 시간이다. 메고 다니는 가방은 변호사회 정기총회에서 기념품으로 나누어준 몇 만 원도 채 안 되는 백 팩이다. 아마도 그의 아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부모님 모시고 사는 그의 가정엔 벌써 빨간불이 켜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민단체 아니 모든 시민들의 영웅이다. 그가 지난 10년 간 해온 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는 변호인 접견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부당한 간섭에 대해 법정투쟁을 했고, 집회 시위를 할 때 걸핏하면 금지통고를 하는 경찰에 대항해 수없이 법정투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판례가 손가락으로 헬 수 없을 정도다. 지금 우리가 경찰서에 가서 자유로운 접견을 하고,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자유로운 집회 시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 그의 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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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 변호사, 자네 참 대단하다. 당신 사는 것 보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아이고 선배님, 저는 선배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시고, 어떤 자리에서도 품격을 유지하시니... 저야 다가갈 수 없는 애송이지요.”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나는 이미 많이 무뎌졌어. 날카로움이 없어.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날선 비판의식이 없단 말이야. 이건 내 고백인데, 만일 내가 자네 정도의 나이로 돌아간다고 해도 솔직히 자네만큼 해낼 자신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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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실 그렇다. 나 또한 지금껏 어디에 가서도 다수자가 되거나 주류가 되지 못했다. 항상 소수에 속했고 비주류의 한을 안고 살아 왔다. 그런데도 시간이 가면서 세상살이에 적응하다보니 적당히 타협하기 시작했다. 싸우기가 싫었고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어간 것이다. 그것이 지난 30년 내 삶이었다.

오늘 나는 안상준이란 친구를 다시 본다. 그를 통해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저렇게 피 끓는 열정을 토해 본 적이 있었는가. 절대고독을 느끼면서도 결코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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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안 변호사, 앞으로도 지치지 말고 당신의 길을 가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게. 내가 선배로서 해줄 것은 없다만 응원은 많이 할게. 자 내 술 한 잔 받게. 언제든지 지치면 나를 찾게나. 내가 맛 집으로 자넬 안내해 배불리 먹이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게 해줄 수는 있어. 선배 별 볼 일 없다고 욕하진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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