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천하제일 효자 피상준 박사

박찬운 교수 2017. 8. 8. 16:08

소설 아닌 소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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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효자 피상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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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그 친구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지난 10년 어간의 일이다. 학교 후배이긴 하지만 7-8년 후배인지라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이름 피상준. 당49세. 민법학 박사. 현 직업 대학시간강사. 그가 있는 곳은 법대 도서관 지하 캐럴. 생각해 보니 이 피박사가 지난 10년간 나와 가장 자주 점심을 먹은 친구다. 그만큼 피박사는 내게는 편한 존재다. 피박사도 다른 선배와는 달리 나를 잘 따른다. 내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인 모양이다. 나이차를 떠나 말을 잘 들어주면 사이는 가까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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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박사,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거기 한번 가세. 이 삼복더위에 몸 축났겠다. 몸보신 좀 해보세.”
“선배님, 고맙습니다만, 요즘 제가 그건 먹질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시지요.”
“아니, 피박사, 그게 무슨 말이야, 지난 몇 년간 우리 복날이면 꼭 같이 갔잖아. 어쩐 일이야?”
“아,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도저히 못 먹겠습니다. 눈에 밟혀서요.”
“??? ......”


3.
오십을 바라보는 피상준이 지금까지 학교에 남아 도서관을 지키는 것은 본인이 원한 삶은 결코 아니었다. 그도 젊은 시절 푸른 꿈이 있었고 충분히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믿었다. 과연 그에게 능력이 있을까? 지난 10년간 내가 찬찬히 관찰한 결과, 그는 분명 능력 있는 친구다. 평균 이상의 두뇌를 가졌고, 평균 이상의 언어 구사력이 있다. 논문 쓴 것을 보아도 그 정도면 기존 교수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는 지금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을까.


젊은 시절 그도 한 동안 고시공부를 했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 1차를 몇 번이나 합격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놈의 2차를 보기만 하면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고시는 팔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자 뒤늦게 학자의 길로 나섰다. 몇 년간 절치부심한 덕에 학위를 끝내고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 어디든 전임 자리 공고가 나기만 하면 원서를 냈다.


여기에서도 원서를 내면 대부분 1차를 통과했지만 그 면접이 문제였다. 아마도 이미 누군가를 정해 놓은 면접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전패했을 리는 없을 터였다. 아니면 그에겐 마지막 한 방이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 설상가상 로스쿨이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전국 주요 대학에서 법대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교수가 되는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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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박사, 요즘 얼굴이 왜 그래? 뭔 걱정이 그리 많아? 자리? 그래 알만 하다. 자네 고민...”
“선배님, 이제 자리는 더 이상 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매 학기 강의만 맡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 봐도 저는 시간강사로선 강의 시간이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남들은 주 3시간도 맡기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지난 학기 무려 20 시간을 맡았으니 말입니다. 전국의 선후배 교수님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이라 생각합니다. 고마울 뿐이지요.”
“그래? 그런데도 자네 얼굴이 별로 즐거운 것 같지 않은데...?”
“아 그건 요즘 제가 지방에 사시던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고 왔거든요. 팔십이 넘으신 데다 몸도 불편들 하셔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형님들이 계시지만 모실 형편이 안 돼 제가 모시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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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정은 이랬다. 원래 피박사의 부친은 지방 소도시에서 공무원을 하시다가 정년퇴직한 분인데, 꼬장꼬장하기가 말도 못하는 분이다. 자식들이 아버지 앞에선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엄한 분이었다. 그럼에도 피박사는 예외였다. 어릴 때부터 이 엄한 부친에게 가장 귀염 받는 아들이 피박사였다. 그것이 결국 부모님의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피박사가 피박을 쓰게 된 이유였다. 피박사는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와 자신이 사는 집을 내드리고, 자신은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 도움으로 산 집이었기 때문에 돌아가실 때까지 남의 집에서 모시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즘 세상에 이런 자식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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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박사, 아니 그렇게 해도 자네 와이프는 아무 불평도 안 해? 대단들 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부부가 있으니...”
“선배님,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제가 와이프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부모님을 모셔 와도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부모님 모시는 것은 제가 다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말? 그럼, 부모님 밥해드리고 빨래 해드리고... 그 궂은 수발을 다 피박사가 한다는 말이야?”
“물론이지요. 어떻게 그것을 제 와이프에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만일 그랬다간 당장 갈라서자고 할 판인데... 제가 조석으로 밥해드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도 부모님이 별로 기뻐하시지 않으니 그게 속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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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늦게 제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이는 이미 자고 있습니다. 그 때 저를 반갑게 반기는 애가 하나 있습니다. 은지라고...”
“은지? 누구야? 피박사는 아들 하나 두고 있잖아? 언제 나 모르게 딸을 낳았어?”
“하하... 은지는 제 집 강아지입니다. 이놈이 얼마나 저를 따르는지... 제가 들어가면 사정없이 제 품에 안깁니다. 제겐 걔밖에 없습니다.”
“...... 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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