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신은 존재하는가? <사일런스>

박찬운 교수 2020. 8. 2. 09:45

 

 

 

 

 

비오는 아침에 영화 한편을 보았다. 종교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2016년 작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즈?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에피소드는 기억할 것이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영화 <아이리시 맨>으로 그와 나란히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즈를 바라보며, “어렸을 때 영화 공부를 하면서 가슴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말이 통역되자마자 마이크를 잡고 직접 영어로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라고 했다. 순간 장내는 떠나가는 박수 소리가 들렸고, 한 거장이 일어나 눈물의 답례를 했다.

 

 

 

 

 

 

이 마틴 스콜세지가 만든 영화 <사일런스>. 국내에 개봉되어 상영되었지만 종교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가물에 콩 나는 법, 그 때문인지, 이 영화가 제대로 언론을 탄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2시간 40분의 제법 긴 영화라, 집에서 혼자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조금 마음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몇 주 동안 찜을 해 놓고, 약간의 사전 학습을 한 다음에서야, 사위가 조용한 오늘 일요일 아침, 집중해 보았다.

<사일런스>는 스콜세지가 현대 일본 기독교 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1960년 대 후반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대 번역됨)을 영화한 것이다. 상영시간이 길어 원작의 중요 부분을 대부분 옮겨 놓음으로써 소설 <침묵>이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페레이라를 찾아 나서는 로드리게스(우)와 가르푸(좌)

 

 

 

이 영화는 17세기 도쿠카와 막부 하에서 천주교가 철저하게 탄압되고 있던 시절, 예수회 출신의 3명의 신부가 일본에 도착해, 포교와 배교를 경험하는 내용이다. 페레이라(리엄 니슨)는 매우 존경받는 신실한 신부로 사지인 일본에 진출하여 포교를 하다가 잡혀 결국 배교의 길을 걷는다. 이 소식이 마카오의 포르투갈 교구에 전달되고, 이를 전해들은 페레이라의 제자인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르프(아담 드라이버)는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굳은 결의를 하고 밀항을 시도한다.


일본에 도착하자 그들을 맞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소위 가쿠레 기리스탄, 즉 크리스찬임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몰래 천주교를 믿는 일본인들이었다. 두 신부의 일본에서의 포교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다이묘인 이노우에의 철저한 천주교 탄압에 의해 가쿠레 기리스탄들이 하나 둘 순교하기 시작한다. 관헌들은 신자들에게 예수 성상을 발로 밟을 것을 요구하고, 성모 마리아에게 침을 뱉을 것을 강요한다. 기리스탄이 아님을 그것을 통해 보여 달라는 것이다.

배교를 거부하는 신자는 화형을 시키거나 볏짚으로 몸을 말아 바다에 빠트려 죽여 버린다. 이 과정에서 가르푸 신부는 죽어가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가 함께 수장되고 만다. 로드리게스는 이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신은 철저히 침묵한다.

 

 

 

기리스탄의 순교장면

 

 

 

박해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예수를 부인하면 된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갖든 그냥 성상을 밟고 지나가면 살 수 있다. 어떤 기도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배교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로드리게스가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자 이노우에는 회심의 카드를 내놓는다. 로드리게스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스승 페레이라를 만나게 한다.

그는 이미 일본인 이름을 갖고 일본인 처와 자식을 둔, 얼굴만 서양인인 일본인이다. 페레이라는 로드리게스를 설득한다. 일본은 포교가 불가능한 땅이라고...일본인은 초월적 인격체인 신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들 중 누군가가 순교를 한다 해도 그것은 천주를 위한 순교가 아니라고...

 

 

 

로드리게스에게 배교를 설득하는 페레이라

 

 

 

마침내 로드리게스 신부도 무너진다. 예수를 부정하고 성상을 발로 밟는다. 이제 그도 일본인 처를 얻어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그것도 막부를 위해 서양으로부터 오는 물건 중 기독교 관련 물건을 골라내는 감별사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어떤 성물도 소지하지 않았고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신에게 로드리게스가 답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그의 죽음이다. 그의 시신은 관 속에 들어가고 불길에 휩싸인다. 태워져 가는 그의 몸... 그런데 손에 무언가 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십자가!!!(화면을 잘 보면 그 직전 마지막 작별을 하는 그의 일본인 처가 그의 가슴에 칼을 넣어주면서 몰래 뭔가를 손에 쥐어준다. 아마 그것이 바로... 십자가?) 마틴 스콜시지 감독 아니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신(하느님)은 침묵한 것이 아니라 로드리게스의 안에서 살아 있음을, 이렇게 보여주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