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하늘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ky)

박찬운 교수 2020. 8. 5. 11:00

 

 

 

모처럼 며칠 연가를 보내게 되었다. 공직을 맡은 덕(?)에 교수의 특권(?)인 방학을 당분간 바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로선 큰 희생이다. 이 직을 맡지 않았으면 지금쯤 전국 어느 암자의 호젓한 방안에서 책을 읽거나, 전나무 숲속 길을 맨발로 걷고 있을지 모른다. 그날이 언제 오려나... 당분간 그런 호사스러움은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더욱 올핸 장마가 길고 수해마저 곳곳에서 일어나니 어딜 갈 엄두가 안 난다.

 

 

 

 

아침에 일어나 넷플릭스 영화 목록을 뒤지다가 눈에 띄는 영화 하나를 발견했다. 스릴러물인데, 볼까말까 망설이다, 웬지 어떤 끌림이 있어, 클릭을 하고 말았다. 브라질의 떠오르는 스타 감독 마르코 두트라(40세)가 2016년 만든 <하늘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ky).

고백하건대, 내가 제일 많이 보는 영화는 명화성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많이 보는 영화는 액션 혹은 범죄스릴러다. 왠지 그런 영화가 끌린다. 폭력, 살인, 섹스... 그리고 인과응보. 이런 내용은 작품성 유무를 떠나 묘하게 우리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러나 보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대부분 킬링 타임용이다. 그럼에도 영화목록에서 화끈한 액션영화나 섬뜩한 스릴러를 발견할 때면 다시 보게 되는 그 유혹을 떨 추기 어렵다.

 

 

 

 

<하늘의 침묵>을 보자마자 내가 이렇게 약간의 정리를 시도하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스릴러로선 보기 드문 작품성을 갖는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스토리 전개의 독창성과 두 남녀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글을 통해 과도한 스포일러를 할 생각은 없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두 아이의 엄마 다이아나(카롤리나 지에크망)는 집에서 어느 두 남자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남편 마리오(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는 우연히 집에 일찍 들어오면서 그 광경을 본다. 하지만 마리오는 그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이 남자는 평소 공포증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심지어 비행기도 타지 못하는 심각한 불안증후군을 앓고 산다.

 

여주인공 다이아나
남자 주인공 마리오

 

 

그런 그가 아내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다이아나는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간다. 마리오는 강간범을 찾아내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이들의 신원을 알아내 복수에 성공한다. 그런 과정에서 다이아나와 마리오는 어떤 말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무슨 일을 할 것인지...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다이아나는 마리오가 범인들에게 복수극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이아나는 마리오가 범인 형제 중 형인 안드레스를 처참하게 죽이는 것까지 보게 된다. 마리오가 가지고 갔던 권총을 범행현장에서 떨어트린 채 나오자, 다이아나는 그 총을 가지고 나온다. 마리오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을 것이
다.

두 사람은 끝까지 자신들이 당하고 벌린 사실을 서로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늘의 침묵일까?


이 영화는 스토리 파악이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순간순간 주인공들이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표현하는 그 묘한 심리묘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나라면 저 장면에서 어떻게 했을까? 나도 마리오나 다이아나처럼 행동했을까? 그것은 장면 하나하나를 보면서 직접 느끼고 생각할 밖에 없다.

스릴러물 중 이만한 심리묘사와 디테일을 갖는 작품이 얼마나 있을까... 브라질 영화의 수준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