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공포영화의 바이블, <샤이닝>

박찬운 교수 2020. 8. 7. 06:18

 

 

 

 

어제 밤 공포영화를 한편 보았다. 영화보기가 취미인 사람이라면 아마 예외 없이 보았을, 영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1980년 작 <샤이닝>. 혹자는 이 영화를 평하길, 호러영화의 교과서 혹은 바이블이라고 한다. 그런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하다니,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는 듯하다.

내가 원래 공포성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아니다. 잔인한 범죄영화도 비교적 자주 본다. 보고 나면 크게 남는 것은 없지만, 분명 그것도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영화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슨 유령이나 귀신이 나와서 사람과 대화를 하고, 거기에서 악령과 손을 잡고 칼부림이나 도끼를 찍어대는 영화는 도통 볼 엄두가 안 난다. 밤에 꿈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데...어제 밤, 혼자서 러닝 타임 2시간 20분의 <샤이닝>을 보고 잠을 청했다. 다행히 악몽은 꾸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어제 밤의 영상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

 

 

잭의 가족은 한 겨울 호텔에서 살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티븐 맥큐리는 영화 곳곳을 원작과 달리 만듦으로써 그만의 세계를 그렸다.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다. 한 가족(남편 잭, 부인 웬디, 아들 대니)이 콜로라도의 눈 많이 내리는 지역에 위치한 ‘오버룩’이라는 호텔에서 한 겨울을 나면서 직면하는 광기의 이야기다.


가난한 소설가 잭 트랜스(잭 니콜슨)은 글을 쓰기 위해 조용한 장소가 필요한데 기가 막힌 장소가 나타난다. 콜로라도의 로키산맥에 있는 ‘오버룩’이란 호텔. 이곳은 겨울(11월-5월)이 되면 영업을 하지 않는다. 폭설로 손님이 올 수가 없어 관리인만 두고 문을 닫는 것이다. 잭이 6개월 동안 이곳 관리인으로 취직하면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적막강산의 호화 호텔에서 글만 쓰면 된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도 공짜다.

 

 

겁에 질린 웬디

 

 

그런데 이 호텔은 평범한 호텔이 아니다. 인디언의 피가 뿌려진 공동묘지 위에 만들어진 호텔이니 그들의 원혼이 여기저기에 있을지 모른다. 더욱 이곳에선 여러 해 전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관리인이 아내와 딸 둘을 토막 내 죽였다는 곳이다.

잭은 관리인 인터뷰에서 담당자가 알고나 있으라는 태도로 말해주는 이런 말을 건성으로 흘려보낸다. 이보다 더 좋은 소설 쓸 장소가 없는데...그깟 과거의 살인사건이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잭의 가족이 이곳에 살면서 바로 살인사건의 주인공들이 될지...잭은 알지 못했다.

 

 

샤이닝 능력을 갖고 있는 대니

 

 

잭의 집안엔 한 묘한 아들이 있다. 대니 트랜스(대니 로이드). 이 꼬마는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샤이닝’ 능력을 갖고 있다. 대니는 호텔로 들어가면서 무언가 섬찍함을 느끼고...곧 아버지 잭이 자신과 엄마 웬디(셜리 두발)를 죽이려 할 것을 예감한다. 호텔에 와선 순간순간 과거 이곳에서 죽은 여자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잭의 가족이 호텔에 온 후 처음 며칠은 좋았다. 넓고 호화로운 호텔, 미로 같은 정원을 한 가족만이 사용하니...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잭의 글은 어땠을까? 호텔 홀 한 가운데 고풍스런 책상 앞에서 타이핑을 쳐가며 위대한 작품을 구상하는 잭 트랜스... 그러나 글은 공간이 좋다고 써지는 것은 아닌 것...날이 가면 갈수록 잭의 글은 진척이 없고 점점 이상한 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잭에게도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호텔의 큰 방에선 파티가 열린다. 거기서 과거 토막살인을 일으킨 호텔 관리자 그래디를 만난다. 여기서 잭은 악령의 하수인으로 돌변한다. 마침 웬디는 그동안 써 놓은 잭의 원고를 살핀다.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글을 썼는지... 그런데, 수백 페이지 원고는 단 한 문장의 반복이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잭은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

 

 

잭이 광기에 사로잡혀 웬디와 대니를 죽이려고 도끼로 문을 찍는다. 그리고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저 얼굴... 이 영화의 백미다.

 

 

이제 잭의 마각이 드러날 때가 되었다. 이 호텔의 악령에 지배 받는 잭은 도끼를 들고 웬디와 대니를 쫓는다. 잭 니콜슨의 광기어린 연기가 빛을 발하고, 눈 큰 여배우 셜리 두발의 극도의 공포감이 영화 전편을 짓누른다. 그러나 샤이닝의 능력을 갖는 꼬마 대니는 침착하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결국 도끼를 휘두르는 아빠의 광기에서 엄마와 자신을 구하고, 두 모자는 설상차를 타고 호텔을 빠져 나간다.

 

 

잭의 최후

 

 

이 영화는 영상 예술에서도 여러 작품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영화의 첫 부분, 한 대의 노란 승용차가 콜로라도의 로키 산 중을 질주한다. 하늘에서 보이는 짙푸른 삼림과 호수... 무언가 음습한 미래를 예고한다.

호텔의 이곳저곳도 볼만하다. 이 호텔은 인디언의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호텔, 그래서인지 감독은 호텔의 바닥과 벽면을 인디언과 관련된 그림과 문양으로 채웠다.


영화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사용한 스테디캠이란 촬영기법에 관심을 갖는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방법으론 보통 레일을 이용해서 카메라맨이 움직이는데(그래야 안정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음), 여기에선 카메라맨이 장비를 듣고(그렇지만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사용) 배우를 따라간다. 꼬마 대니가 호텔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눈에 쌓인 미로 정원에서 대니를 쫓는 잭의 모습은 바로 이 스테디캠 기법으로 찍은 거라고 한다.


그러나 압권 중의 압권 장면은 잭이 웬디와 대니를 죽이려고 도끼로 방문을 찍는 장면이다. 잭의 눈은 이글거린다. 가끔 히죽이죽 웃기도 한다. 도끼로 문을 뚫어버린 다음, 그 틈새로 얼굴을 넣어 묘한 웃을 지으며 “여기 자니가 왔다”라고 외친다. 바로 그 순간이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이 공포영화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담으려 노력한 모양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냥 만든 게 아니다. 무언가 복선을 깔지 않은 게 없다. 누구는 이 영화가 현대 미국을 고발한다고도 한다. 미국 역사에서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점, 백인에 의한 흑인 인종차별(이 영화에서 대니의 샤이닝을 알아 준 사람이 흑인 요리사 딕 홀로랜이다. 그는 대니의 불운을 감지하고 오버룩 호텔로 설상차를 몰고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잭의 도끼에 찔려 죽고만다. 허무한 일! 그렇지만 대니와 웬디는 그가 몰고 온 설상차를 이용해 이 지옥굴을 탈출할 수 있다)...이런 문제의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공포영화를 좋아할까. 특히 한 여름철이면 극장가나 티브이마저 공포영화를 내보내 주니, 공포영화가 더위를 잊게 하는 청량제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이 샤이닝을 통해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공포영화가 우리 내면의 일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영화의 한 대목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일만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거야! 일과 휴식...이 둘을 적절히 갖추고 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그것이 큐브릭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