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X 같은 세상

박찬운 교수 2017. 2. 17. 13:08

소설 아닌 소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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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 아닌 소설입니다. 저는 선생으로서 요즘 제일 어려운 게 진로지도입니다. 도대체 학생들 앞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대 우리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제가 젊었을 때 경험한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꿈을 갖고 살라, 근면성실의 자세로 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우리 세대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는 어제 졸업식장에서 있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상황을 리얼하게 써볼까 생각했습니다만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해서 한편의 소설 아닌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이지만 정말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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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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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날 같으면 늦잠을 잘 시간, K는 일어났다.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다.


, 이거 오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10년 만의 졸업인데... 엄마는 시골에서 올라 오신다는데...”

무슨 낯으로 학교에 가서 학사모를 쓰지. 이룬 게 하나도 없는데...”

 

K는 자취방 구석에 있는 조그만 옷장을 연 다음 옷가지를 살펴본다.

 

, 이거 졸업식장에 가려고 해도 뭐 하나 입을 게 없네. 학사 가운을 입으려면 타이를 매야 할 텐데,,, 와이셔츠, 신사복 정장 하나 없는데.”

에잇, 모르겠다. 그냥 평상시대로 잠바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가자. 학사 가운을 입으면 적당히 감춰지겠지. 누가 나에게 관심이나 갖겠나.”

 

2.

지금부터 S대 법과대학의 마지막 졸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다음은 동문회장이신 Y 개발산업의 L 회장님으로부터 축사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친애하는 법대동문 여러분, 마스시타 고노스케를 아십니까. 한 때 세계 최대의 전기회사인 일본 내셔널의 창업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 가지 복을 타고 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게 무언지 아십니까? 첫째는 배우지 못한 복입니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배우고자 했습니다. 둘째, 가난의 복입니다. 그는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했고 결국 세계 최대의 전기회사를 일구어냈습니다. 셋째, 병약의 복입니다. 그는 건강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그 덕에 94세까지 살았습니다. 친애하는 동문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마스시타 고노스케 보다 뭐가 부족합니까?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스시타 고노스케를 능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3.

다음은 학장님이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겠습니다. 호명되는 졸업생은 단상으로 올라와 주기 바랍니다.”

 

K는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장발의 머리에 쓴 학사모가 자꾸 아래로 흘러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학장인 D교수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학장 옆에 도열한 교수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거기엔 대학 내내 마주치기 싫어했던 지도교수 P교수도 있다. 그가 K의 손을 잡고 속삭이듯 말을 한다.

 

“K, 축하하네. 근데 이게 무슨 꼴이니. 졸업하는 날에 이런 차림으로 나타나다니...쯧쯧쯧... 저기 봐라, 고시합격하고 온 저 친구 봐. 말쑥하잖아!”

 

4.

엄마 뭐 하러 여기까지 오셨어요. 안 오셔도 되는데...”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십 년 만에 졸업을 하는 것인데, 엄마가 와서 축하를 해 줘야지.”

“K, 너무 기죽지 마라. 아까 동문회장님 말씀하셨잖아. 그 마스시타라는 사람은 배우지도 못하고, 돈도 없고, 병약했는데도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다고. 그에 비하면 너는 너무 갖고 태어난 게 많다. 많이 배워서 대학 나오지, 뭐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어도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네 몸은 어떠냐. 180에 준수하게 생겼고 또 건강하지 않니.”

엄마, 저는 요, 그런 말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와요. 마스시타가 오늘 날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그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대한민국 그리 만만한 나라 아니에요.”

저도 지난 10년 동안 놀지 않았어요. 남들 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공부했잖아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책상을 떠나지 않으면서요. 그렇게 몇 년을 공부한지 아세요? 그런데도 지금 이래요.”

 

C여사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5.

K는 어머니와 함께 교정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졸업식 날이니 학교 근처 중국집에라도 가서 어머니와 짜장면에 탕수욕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니 지난 10년간 공부했던 커다란 원통형 법대 강의동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 저기에서 내가 10년을 보냈다는 거지. 그리고 이제 이 대학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지. 내가 가야할 곳이 바로 저 밖이란 말이지. , 세상 X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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