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박찬운 교수 2016. 4. 23. 21:17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한국을 떠나는 조카에게

 


이런 글을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많이 망설였다. 사적인 이야기는 SNS에서 좀처럼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쓰기로 했다. 내 조카도, 그 부모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기에.

 

내 조카 태균은 여동생 아들이다. 올 해 26. 필리핀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고, 한국에 돌아와 현역으로 병역을 마친 다음,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과로 편입해 올 2월 졸업했다. 매우 우수한 청년으로 졸업할 때 총장상을 받았다.

 

조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지만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 일찍이 아빠(내 매제)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시절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린 아들과 딸을 기르느라 고생한 여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저려온다. 다행스럽게도 동생은 하늘이 준 새 짝을 찾았고 필리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매제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동생 가정은 행복을 되찾았다. 내가 매제에게 평생 고마움을 표할 이유다.

 

외삼촌이 대학교수지만 조카를 위해, 특별히 도와준 것도, 도와줄 것도 없다. 단지 가끔 만나 격려할 뿐이다. 어렵게 살았으니, 빨리 직장을 잡고 결혼해,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바람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조카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몇 번 최종 면접까지 가서 떨어지고 나선, 한국에서 직장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조카의 능력을 믿는 나로서는, 좀 더 도전을 해 보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결정을 했다니 못내 아쉽다.

 

조카는 세칭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의 어엿한 대학을 나왔고, 출중한 영어 실력에, 학과 성적도 빼어났다. 그럼에도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 누군가는 그것을 헬조선이라 말할 지도 모른다.

 

조카는 곧 호주로 떠난다. 그곳에 가서 당분간 돈을 벌겠다고 한다. 몇 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1년간 그곳에서 돈을 번 경험이 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면서 돈을 모았고, 그것으로 지난 몇 년 간 대학을 다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몇 달간 공사장에서 인부로도 일했다. 외삼촌으로서 보건대, 조카는 어딜 가서도 일할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조카를 믿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다.

 

얼마 전 만난 조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외삼촌, 그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면 한국에서도 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품위 있고 인간답게 살 곳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가진 꿈을 펼치면서 살고 싶어요. 늦기 전에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할 겁니다. 일단 학비를 벌고, 제가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대학원을 찾아볼게요.”

 

태균아,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 같이 열심히 산 젊은이가 대한민국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구나. 너에게 더 미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말할 때 말하고, 써야 할 때 쓰마. 너 같은 젊은이들이 이 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이 나라를 좀 바꾸어나가자고 말이다.

 

태균아, 어딜 가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면서,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라. (2016.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