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승우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박찬운 교수 2016. 4. 4. 14:15

 

승우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승우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친구의 엄마, 아빠로부터 몇 마디 들은 게 전부다. 그 아이 이름은 승우. 서울의 어느 특수학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부모님 이야기로는 자폐아라고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지만 사실 매일같이 만난다. 오늘도 방금 전 점심을 먹고 그 아이를 만나고 왔다. 그의 엄마가 만들어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말이다.

 

나는 점심 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산책 겸 내 연구실에서 2킬로미터 쯤 떨어진 뚝섬역 근처로 걸어간다. 내가 발견한 몇 곳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요즘은 어느 가정식 백반 집엘 자주 간다. 단돈 오천 원에 집에서 보다 더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집!) 늘 상 가는 카페에 들어간다.



승우의 <별이 빛나는 밤>과 내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바로 승우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다. 나는 이곳에 가면 주문할 필요가 없다. 의례 마시는 내 전용 레시피의 카페라테가 자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좋은지(!) 나는 어느 밥집에 가도, 어느 카페에 가도, 곧 특별한 손님이 된다. 손님이 없을 때 주인과 이야기하길 좋아해서 그런 모양이다. 갈 때마다 대우가 달라진다. 승우네 집도 그랬다.

 

처음 승우네 카페에 갔을 때다. 혼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실내 장식을 둘러보았다. 벽에 몇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언뜻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모사해서 그린 것도 있고, 여러 점의 초상 소품도 있고, 추상성이 강한 상상화도 있고... 누가 그렸을까? 자세히 보니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이 보였다. 그런데 글씨체가 어린이 수준을 넘지 못했다. ! 어떤 아이가 그린 것이구나!

 






나는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사장님, 이 그림이 어떻게 이곳에 걸려 있지요?” “, 그 그림요? 우리 아이가 그린 겁니다. 애가 자폐아거든요. 그래도 그림 그리길 좋아해서 조금 공부를 시켰는데 저렇게 그렸군요. 남이 보면 어설픈 그림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냥 걸어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승우는 그림을 통해 조우했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그림을 유심히 본다.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 그림을 그리면서 승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초상은 누구의 얼굴인가? 엄마인가? 아님 아빠인가? 상상에 상상을 하면서... 가끔은 엄마, 아빠에게 그림에 대해서, 승우에 대해서 물어본다.




 

연초에는 내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를 한 권 들고 가 승우 부모님에게 선물을 했다. 나는 그 책 표지 뒤에 승우에게 보내는 말 한마디를 썼다. “승우, 나는 빛나는 별이 네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승우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 한 면이 저렇게 승우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오늘 승우가 그린 그림을 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저 마음을 조용히 내려놓고 감상하기 바란다. 우선, 자폐아가 그린 그림이라 생각하지 말고 보길 바란다. 다음엔 자폐아가 저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고 보길 바란다. 우리 마음속에 무엇인가 반짝이는 게 없는가. 승우가 그린 둥근 보름달 같이 큰 왕별이 우리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지는 않은가. (2016.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