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인문명화산책

인문명화산책4(피테르 브뤼헬의 네덜란드 속담)

박찬운 교수 2015. 9. 27. 05:13

인문명화산책4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그러나 매우 유쾌한 그림]


며칠 전 피테르 브뤼헬의 <아이들의 놀이>를 소개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덧붙여 아동의 인권도 이야기했다. 오늘은 브뤼헬의 다른 그림 하나를 보면서 재미있는 속담을 말해 보자.


요즘 학생들의 말과 글을 유심히 살피면 옛날 사람(?)들과 비교해 다른 게 많다. 그 중 하나는 순수 한글 세대여서 그런지 한자에서 온 사자성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글세대라면 정작 알아야 할 우리말 속담도 잘 모른다. 말과 글에서 구수한 우리 속담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단순히 세대차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래가지고서야 우리글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쓸데없는 우려인가? 그렇다면 나야말로 걱정도 팔자소관이다.


피테르 브뤼헬, '네덜란드 속담', 1559


속담이란 풍자나 교훈을 담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관용어구다. 이런 속담은 세계 어느 언어에서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데, 영어로는 proverb라고 말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적확한 표현을 하고자 노력한다. 어떤 상황을 설명하거나 묘사할 때 거기에 딱 맞는 속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누구나 그 속담을 읽는 순간, 고개를 끄덕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속담을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을까? 속담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낸다? 못할 리는 없겠지만, 그 비유와 풍자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비유와 풍자를 이미지화는 것은 고도의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폭에 담는다 해도 한 가지 이상의 속담을 그리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피테르 브뤼헬은 16세기 중반 네덜란드(특히 플랑드르 지방)에서 사용되는 속담을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길 결심한다. 한 장에 하나씩을 그리는 게 아니라 한 폭의 그림에 당시 사용되는 모든 속담을 넣어보려는 담대한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해서 매우 복잡한 그림 <네덜란드 속담>(1559년작, 베를린 게멜데 미술관 소장)이라는 그림이 완성되었다.


물론 그림을 통해 어떤 비유나 풍자를 나타내보려고 했던 화가가 브뤼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브뤼헬보다 한 세대 위의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곧잘 풍자적인 그림을 잘 그렸다. 하지만 그도 하나의 화폭에 여러 개의 스토리를 담진 못했다.


브뤼헬의 <네덜란드 속담>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림으로 만든 속담 사전이다. 그러니 이 그림은 16세기 네덜란드 지역에서 사용된 속담을 연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그는 이 그림에서 무려 100개가 넘는 속담을 넣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현재까지 112개의 속담을 이 그림 속에서 발견해 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 그림이 세상에서 한 화폭에 가장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세계 회화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알레고리 그림! 그게 바로 브뤼헬의 <네덜란드 속담>이다.


오늘 이 그림 중에서 쉽게 파악되는 속담 몇 개를 풀이해 보겠다. 독자들은 시간이 있는 대로 그림을 확대해서(가급적 컴퓨터 모니터에서 크게)내 설명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1. 벽돌 벽에 머리 부딪히기
그림 좌 하단을 보면 한 사람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장면이 보인다. 이것은 속담 ‘벽돌 벽에 머리 부딪히기’를 묘사한 것이다. ‘불가능한 일에 쓸데없이 도전하는 무익한 행동’을 의미한다.


2.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그림 좌 하단을 보면 한 사람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있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묘사한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최고인데, 문제는 그것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3. 가위 걸어 놓기
그림 좌 중간 부분을 보면 처마 아래에 가위 하나가 걸려 있다. 이게 ‘가위 걸어 놓기’라는 속담을 묘사한 것인데, 어떤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가위로 무언가를 싹둑 잘라버릴 것이라는 섬뜩한 뜻이 담겨 있다.


4. 세상은 위 아래로 돈다
그림 좌상 부분을 보면 지구본 같은 게 보인다. ‘세상은 위 아래로 돈다’라는 속담을 묘사한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죽어라 일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때 이런 속담이 사용된다.


5. 둥지 속에 알 하나는 남겨둬라
그림 좌 중간 처마 아래 부분을 자세히 보면 둥지 속에 알 하나가 보인다. ‘둥지 속에 알 하나는 남겨둬라’라는 속담을 그린 것이다. 위급한 순간을 대비하여 마지막 실탄 하나는 준비해 놓고 사는 게 지혜라는 뜻이다.


6. 바보라도 최상의 카드를 잡을 수 있다
그림 좌상 부분(지구본 위)을 보면 한 사람이 카드 하나를 잡는다. ‘바보라도 최상의 카드를 잡을 수 있다’는 속담을 그린 것이다. 누구라도 기회는 있는 법이다. 그러니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 옆을 자세히 보면 주사위도 한 개 보인다. 이것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속담을 묘사한 것이다.


7. 인생사 카드 떨어지기에 달려 있다
위 6 그림 바로 아래를 보면 돌출 한 지붕 위로 카드 몇 장이 떨어진다. ‘인생사 카드 떨어지기에 달려있다’라는 속담을 그린 것이다. 모든 게 운이라고나 할까? 팔자소관이다. 그러니 남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렸다.


8. 과자로 지붕을 깐다
그림 좌상 건물 지붕을 보면 둥근 뭔가가 여러 개 보인다. 그게 과자다. ‘과자로 지붕을 깐다’라는 속담을 묘사한 것이다.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 모양이다.


9. 도랑 위에서 똥 눟기
그림 중앙을 보면 한 사람이 창문에 궁둥이만 내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래 도랑에 용변을 보는 모습이다. 이게 ‘도랑 위에서 똥 눟기’를 묘사한 것인데, 모든 것이 명백해졌을 때 사용하는 속담이다.


10. 두 마리 개가 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격
그림 중앙을 보면 개 두 마리가 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있다. ‘두 마리 개가 뼈다귀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격’이라는 속담을 그린 것이다. 이해관계를 가진 양측이 양보하지 않고 싸울 때 사용되는 말이다.

(2015. 2. 13.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