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인문명화산책

인문명화산책(6)피테르 브뢰헬, 16세기 네덜란드 결혼식을 그리다

박찬운 교수 2015. 9. 26. 22:18

인문명화산책(6)

[피테르 브뢰헬, 16세기 네덜란드 결혼식을 그리다]



얼마 전 어느 결혼식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피로연장이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림 한 점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피테르 브뢰헬의 <농부의 결혼식>(1567)!


예식장 주인의 그림 안목이 여간 아니었다. 어쩜 피로연장에 저렇게 꼭 맞는 명화를 선택해 거기에 걸어두었을까.


오늘은 이 그림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보기로 한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을 두서없이 정리한 것이다.


브뢰헬은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농촌풍경이나 농부들의 삶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그는 농부의 화가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니 이 그림이야말로 브뢰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도록 하자.

우선 이 피로연이 열리는 곳은 한 농가의 헛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볏단 두 개가 벽(사실 그것은 벽이 아니라 헛간의 안쪽 지저분한 것을 가리는 누런 천의 장막이다)에 걸려 있다. 그 의미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만 하다. 농업의 신성성을 저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 벽(장막)의 가운데엔 푸른 천이 걸려 있고 거기에 왕관 하나가 보인다. 로열석이란 의미다. 신부는 그 아래에서 왕관모양의 머리 장식에 눈을 반쯤 감고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다. 일견 다소곳하다. 다른 하객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지만 신부는 그럴 수 없음이렷다. 신부 왼쪽의 흰 두건을 쓴 여자와 그 옆의 검은 모자를 쓴 노인은 신부의 부모가 분명하다. 그들도 오늘만큼은 체면을 차려야 한다. 하객들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을 순 없다.


하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두 명의 악사가 연주를 하는 데 한 친구 표정이 우습다. 배가 고픈지 연주는 건성이고 음식에 눈이 돌아가 있다. 그림 왼쪽에선 한 친구가 열심히 빈 술 병에 포도주를 채우고 있다. 술 병 개수가 많은 걸 보니 포도주를 꽤나 많이 준비했을 것 같다. 이 가난한 집안에서 어떻게 그 많은 포도주를 장만했을까?


누구 말대로 이 그림이 성서를 모티브를 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가나의 결혼식일 것이다.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한 마리아는 많은 축하객으로 인해 술이 떨어진 것을 발견한다. 마리아가 근심하자 예수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오라고 한다. 그랬더니 그 물이 모두 포도주로 변해 사람들이 마시고도 남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 오늘 이 신부의 결혼식에 차려진 음식은 별 볼이 없다. 그림 전체에서 메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빵, 스프 그리고 술뿐이다. 조촐한 음식이다. 그럼에도 하객들은 불평이 없다. 불평은커녕 오랜만에 온 잔칫집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바쁘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 옆을 보라. 검은 옷을 입은 하객은 술이 떨어졌는지 술을 가져오라는 소리를 지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연신 빵을 집어 상 위에 올리고 있다. 하객들 중에는 아예 술병 채 마시는 사람도 있다. 술도 무척이나 고팠던 모양이다.


그림 아래쪽을 보면 한 아이가 앉아서 빵을 먹고 있다. 얼핏 보아도 행색이 초라하니 어느 가난뱅이 집의 아이임이 틀림없다. 잔칫집에 와서 이런 빵을 먹어 본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꼬마는 오늘 운이 좋다. 헛간 문을 보라. 수많은 사람들이 연회장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하객 한 사람이 빠져 주어야 한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꼬마는 저런 경쟁을 뚫고 들어와 바닥에 철 푸덕 앉아 빵을 먹고 있으니 오늘 운수대통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왠지 이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하나가 앉아서 어느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표정이 결혼식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검은 모자에 검은 옷 그리고 칼을 찬 사람인데, 일견 농부가 아니다. 돈 많은 도시인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궁벽한 시골에 무슨 일로 왔을까. 혹시 그는 이 마을에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재지주가 아닐까. 그는 음식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에게 맞는 음식이 아니리라. 그 옆의 개? 바로 그가 데리고 온 개임이 틀림없다. 그 개도 잔칫집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지 그저 주인 옆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제일 알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 신랑이 안 보인다. 아니 신랑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어떤 미술사가의 해설에 의하면 이 그림에서 신랑은 아예 없다고 한다. 브뢰헬이 잘 그린 속담 그림을 연상해 보자.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는 ‘잔칫날 신랑 보기 어렵다’라는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 혹시 브뢰헬이 이 속담을 이 그림에 적용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신랑은 이 그림에 없어야 맞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음식을 나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특히 모자에 숟가락을 꽂은 사람? 씩씩하고 잽싸게 음식을 나르는 폼이 일반 하객과는 확연히 다르다. 무엇인가 이 결혼식과 특별한 연이 있어 보인다. 아님, 술 따르는 사람? 이 사람도 일하는 솜씨가 그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다. 얼굴 묘사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매우 정교하다. 브뢰헬이 뭔가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대접을 했다는 증거다. 신랑 외에 이렇게 특별히 대접 받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가끔 이렇게 그림 한 점을 놓고 이야기하길 즐겨한다. 16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농촌에서 열린 결혼식... 역시 사람 사는 곳 어디든지 한 남자와 한 여인이 맺어지는 날은 특별하다. 그날은 먹고 마시고 떠드는 날이다. 인류가 수 천, 수 만 년 동안 지속해 온 공통의 풍속이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