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인문명화산책

인문명화산책(8) 16년간의 기다림, 그녀를 만나다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58

인문명화산책(8)

[16년간의 기다림, 그녀를 만나다]


내가 그녀를 알 게 된 것은 2000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때서야 그녀를 알게 된 것이 나로선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앞을 몇 달간이나 매일같이 지나쳤음에도 나는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다.


이 그림이야 워낙 유명하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감상? 그저 조용히 계속 보고 있으면 된다. 눈을 보라, 입술을 보라 그리고 반짝이는 귀고리를 보라...


바로 이 소녀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대표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주인공이다. 지금 그 소녀는 헤이그 마우리츠후이스(Maurishuis) 미술관에 거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그 미술관은 대형미술관은 아니지만 이 한 점의 보물—거기엔 또 다른 베르메르의 역작 두 점이 더 있기는 하지만—을 갖고 있기에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곳이다.


나는 감히 이 그림을 네덜란드 국보로 명명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프랑스의 국보라 부른다면,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이 그림에도 그런 정도의 상찬은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니리라.


나는 1998년 여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바로 이 미술관 근처에서 기거하면서 그곳에 소재하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미국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홀몸으로 네덜란드 생활을 하고 있었다.


2014년 여름 헤이그의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에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매일같이 배낭을 짊어진 채 분홍색 자전거—이것은 미국 학생이 귀국하면서 내게 주고 간 것이었다—를 타고 헤이그 시내를 누볐다.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은 바로 내 통근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은 이준 열사가 일본의 조선 침탈을 세계만방에 호소하고자 들어가고자 했던, 당시 만국평화회의의 회의장이었던, 네덜란드 국회의사당 비넨호프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까지 베르메르를 몰랐다. 귀국 뒤 미술관련 책을 보면서 베르메르를 알았고, 드디어 이 소녀를 알게 된 다음, 나의 무지함을 탓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 때문에 그 이후 나는 네덜란드 회화를 특별히 좋아하게 되었다. 베르메르가 준 선물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묘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인물 묘사는 신비로웠다. 특히 내게 비친 그는 빛의 마술사였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그는 화폭에서 숨 막히게 그려냈다. 빛의 화가로 유명한 카르바조나 라 투르의 초상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묘한 이국적 요소가 그의 작품엔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다 지상의 인물들이지만 한 발을 다른 세상에 디딘 것과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 2014년 여름 찍은 사진이다.


베르메르! 그는 살아생전 무명의 화가였다. 죽은 다음에도 근 2백년이나 되는 긴 시간 그 어느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20세기가 다가오는 어느 날 그는 몇몇 미술평론가에 의해 발굴되어 재평가되었다. 그 이후 그의 그림은 삽시간에 서양미술관 어디에서나 최고의 작품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너무나 적었다. 고작 30여 점!


이제 서양의 유수한 미술관은 이 베르메르의 작품을 한 점 소장하는 게 소원이 되었다. 이런 말이 있다. 베르메르의 원작 한 점을 소장하는 순간, 그 미술관은 1급 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베르메르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나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베르메르의 이 명작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소망했다. 언젠가 헤이그를 가는 그날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이 소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2014년 여름, 나는 마우리츠후이스를 들어가고 있었다. 이날 내가 헤이그를 들른 유일한 목적은 바로 이 소녀를 친견하는 것이었다. 16년간의 긴 기다림 속에서의 만남... 그 황홀한 시간은 이런 만남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파란 두건과 어쩜 동양에서 왔을지도 모를 황금색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붉은 입술과 빛나는 눈동자의 큰 눈을 가진 소녀는 애절하게 무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언뜻 보아도 그녀는 귀족의 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귀에 달린 큼직한 진주 귀고리의 광채와 백옥 같은 피부는 지상의 어느 귀족도 따라 오지 못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이는 열 예닐곱 살 정도? 그 어린 소녀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녀의 강렬한 눈길에 내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녀는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품과 순수함...소녀로서의 순백의 청초함과 순결성...그리고 동시에 여인으로서의 고귀한 우아함을 다 표현하고 있었다."


베르메르는 이 소녀가 어떤 인물인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주변에 조그만 소품이라도 그려 놓았더라면 이런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으련만 그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더욱 배경은 깜깜하다. 검은 색의 배경에 빛나는 얼굴, 반짝이는 눈동자와 진주 귀고리... 그것이 전부다.


사람들은 상상을 할 것이다. 이 소녀가 누구일까? 혹시나 베르메르가 사랑한 어느 소녀? 그렇다면 저 귀고리는 누구의 것일까? 아마도 베르메르의 아내의 것을 잠시 빌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언젠가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았지만 내겐 그림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이 그림은 그저 그 앞에서 그녀의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족하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몸과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영혼을 일깨우면 그 뿐이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