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종교 철학 심리

일상이 철학이다

박찬운 교수 2023. 10. 13. 08:05

 

신간 “일상이 철학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회를 만드는 길-

 

 
철학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으면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원리 즉 인생관,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써있다. 서양의 philosophy를 한자 문화권에서 철학이라고 최초로 번역한 이는 일본의 니시 아마네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가 왜 그것을 philosophy의 어원대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y의 어원인 희랍어 ‘필라소피아’는 love of wisdom의 뜻임) 즉 ‘애지’(愛智)로 옮기지 않고 철학(哲學)이라고 옮겼는지 궁금하다.

철(哲)은 밝다는 의미이고 (學)은 배운다는 의미이니, 철학은 ‘무언가를 깊이 연구해 모호했던 것을 밝게 드러낸다’는 의미다. 이런 작업을 하는 이는 어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맹목적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매일 새롭고, 줄기차게 비판적이어야 한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판적 정신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말한 것의 궁극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함이다. 철학은 사유의 과정이지 그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든 그것의 본질, 그 궁극의 의미에 다가가려는 자세, 그것이 철학하는 자세이다.

우리 모두는 철학적 사유의 주체인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철학이라는 특수 학문 영역을 공부해야 그것이 가능한 게 아니다. 법학을 공부해도, 경제학을 공부해도, 수학, 물리학을 공부해도,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철학적 행위자로서의 철학자이다. 나는 이것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시민의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누구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이는 이것을 전파해야 하며 그 자신이 앞장서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철학자로서의 철학 연구자가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런 생각을 실천하는 철학 연구자가 있다. 이종철 박사. 이 페북 공간에 그의 글이 매일 같이 올라온다. 처음 그의 글을 발견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반가움 반 호기심 반으로 읽었다. 그의 글은 명징했고 냉철해 복잡했던 내 마음에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글을 볼 때마다 공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는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석박사를 한 이후 평생 전문 철학 연구자로 살았다. 나이 들어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한 철학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는데 삶 속의 철학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죽은 활자로 몇몇 학자들만의 공간에서 헤겔과 칸트에 대해 글을 쓰는 것만이 철학 연구자의 본분이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여기’에서 매일 몸으로 부딪히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끼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SNS라는 현대문명의 이기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물론 그의 글은 우군도 많지만 가끔은 격렬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진검승부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글이 차곡차곡 쌓였고, 그것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며칠 전 세상에 나온 ‘일상이 철학이다’(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가 그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일상을 철학화하고, 영화를 철학으로 음미하며, 한국 사회와 정치를 한 걸음 물러나 거시적 안목으로 살핀다. 나아가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이 우리 삶에 갖는 의미를 논하며 보다 구체적으론 우리 대학과 교육문제를 논한다. 그는 이러한 글을 스스로 에세이철학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문제들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일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비판의 정신을 살리고자 했다. 일상이 에세이에 대응한다면, 비판의 정신은 철학에 대응한다. 그것이 에세이철학의 의미이다.”(서문)

그의 에세이철학이 지향하는 세계관, 종교관을 알면 전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당나라 선사의 생각을 빌어와 이렇게 말한다.

“흔히 도나 진리, 법으로 상징되는 초월적인 깨달음은 현실 밖의 다른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일상에서 얻는 것이다. 때문에 선사들은 ‘물짓고 밥 짓는 곳에 도가 있다’고 말한다.”(22쪽)
“진정한 의미의 초월은 있지도 않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너무나 당연해서 왜곡되기 쉬운 일상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23쪽)

나는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일상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 일상의 철학자가 되어 보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야 이 나라가 진정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2023.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