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천불천탑 미얀마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5)

박찬운 교수 2016. 1. 19. 06:26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5)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인따 족이 사는 비경 인레호수

 



인레호수


인레로 가는 길

미얀마 친구들과 양곤을 떠나 바간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이곳을 갈 계획은 없었다. 바간에서 3-4일 묵고, 오는 길에 미얀마의 새 수도 네피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양곤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인레호수는 차로 갈 곳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바간에서 인레호수까지 거리는 300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지만 차로 가려면 샨주의 남부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데 그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미얀마 현지인들도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차로 가는 건 무리하니 후일 비행기로 가라고 말했다.




인레로 가는 길에서 만난 거리의 행상여인, 이들은 기름에 튀긴 통닭을 머리에 이고 있다가 지나가는 차가 서면 달려와 팔았다. 우리도 한 마리 사서 먹었는데 기름기가 잘 빠져 맛이 담백했다.




인레로 가는 길에서 만난 어느 달구지. 달구지 바퀴를 보면 나무에 쇠를 두른 것이다. 아마 백 년 전에도, 이 백 년 전에도 저랬을 것이다. 미얀마 북부지역은 산악지대라 나무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단단한 나무하면 티크다. 그런 나무로 바퀴로 만든 다음 무쇠로 테두리를 하면 그런대로 달구지 바퀴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바간에서 사흘 밤을 자면서 결국 인레호수를 차로 가기로 결심했다.우리 일행 중 화가인 민 아웅은 그림을 그리려고 그곳을 5회 이상 갔다지만 미얀마의 명사 뉘안씨도, 양곤의 베스트 드라이버인 찌 윈도 가본 바가 없어, 내심 이 기회에 가보길 원했다. 내가 이렇게 제안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으니 천천히 갑시다. 하루 종일 가다 쉬다 를 반복하면서 말입니다.”

 

인레로 가는 길은 듣던 대로 험했다. 샨 주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운전을 할 만 했지만 본격적으로 샨 주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할 수 없었다. 길은 구절양장의 편도1차선이고, 상대차선에선 대형트럭이 쉴 새 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았다.

 



인레로 가는 길에서 우린 이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했다. 참으로 단순한 식당이다. 우기가 되면 이런 식당은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지붕에서 비가 샐테니.




위 식당에서 찍은 식당 주인, 아주머니 그리고 식당집 아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다.




어느 가겟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가게 옆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 한 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얼굴의 깊은 주름, 낯선 사람을 보는 눈 길이 내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길 변에 가겟집이라도 나타나면 쉬기를 몇 번을 하고 나서야 정상에 다달았다. 바간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지만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영국 식민지 시대 여름 리조트로 유명했던 칼로를 거쳐 한 시간 쯤 가니, 인레호수에 오는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헤호 공항이 나타났다. 거기서 다시 한 시간을 더 들어가니 마침내 우리가 묵을 호반도시 나웅쉐! 장장 12시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부라보를 외치며 운전기사 찌 윈의 목을 뒤에서 주물러 주었다.

 

인따 족이 사는 인레호수

샨 주는 미얀마 7개 주와 7개 도 중에서 가장 큰 주다. 남한의 1.5배 정도나 되는 넓이니 얼마나 큰 지는 짐작이 될 것이다. 대부분 산악지대로 중국과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레호수는 이 샨 주의 남쪽 산악지대 해발 900여 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호수는 남북으로 22킬로미터, 11킬로미터 정도이고 호숫가는 습지와 수경재배지이다.

 



인따 족의 고기 잡는 모습과 인레호수


인레호수는 산 속에 있는 호수로서 그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인따 족의 사는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인따 족은 샨 족이 아니고 말레이 반도 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아주 옛날부터 호수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말 '인따'로 불렸다.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상부족이 바로 인따 족이다. 이들은 이곳에 수상부족의 삶을 그대로 옮겨왔다. 호숫가에 나무 기둥을 세워 수상가옥을 만들고, 호수 물을 먹고 호수 물로 세수와 목욕을 한다.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늙어 죽으면 시체는 물속으로 수장되었다(요즘은 이런 수장 풍습은 없다고 함). 그러면 다시 물고기들이 그 시체를 먹고 그 고기는 다시 인따 족 밥상 위로 올라간다. 호수와 일체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인따 족이다.

 





인따 족의 고기잡는 모습, 작은 배의 노를 한 발로 저어간다. 기우뚱하는 모습이 저 멀리에서도 보이는데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보니 신비 그 자체였다.


미얀마 공항 등에 가면 미얀마를 대표하는 풍광을 찍은 엽서가 있다. 이 중엔 인레호수 사진으로 만든 엽서가 반드시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경치가 인따 족의 고기 잡는 풍경이다. 이들은 아주 조그만 납작한 배를 몰고 호수 한 가운데서 고기를 잡는데 한쪽 발로 노를 휘감아 저으며 나아간다. 잔잔한 호수 한 가운데서 발 하나를 들어 몸을 기우뚱하게 만들고 노를 젓는 모습은 이색적이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인레호수 한 가운데 ... 죽어도 여한 없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바로 선착장으로 달려가 보트 하나를 빌렸다. 우리가 탄 배는 그저 나무 판자 몇 개로 만든 배다. 백 년 전에도, 아니 천 년 전에도 이곳에는 이런 배가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달라진 게 있다면 배 뒤에 모터를 달아 지금은 노를 손으로 젓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나웅쉐 선착장이다. 뱃사공이 우리가 탈 배를 호숫가로 대고 있다. 우리는 저 배를 타고 하루 종일 인레호수를 누볐다.

 

배는 쏜 살같이 호수 한 가운데로 나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물안개가 뽀얗게 일어났다. 그런데 저 만치 호수 위에 사람이 보인다. 인따 족이 아침 일찍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이다. 사진에서 본 바로 그 모습이다. 다리 하나를 들고 노를 젓는 모습이 신비롭다.

 

호수 한 가운데 배가 이르니 마치 잔잔한 바다 위에 있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태양은 눈부시기 시작하고 멀리서 인따 족은 고기를 잡고 그 뒤로 수상가옥이 펼쳐진다. 이것을 그저 아름답다, 평화롭다고만 표현해야 할까?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런 경치를 보았으니... 그만큼 인레호수 한 가운데서 맞는 아침은 경이롭게 아름다웠다.

 

파웅도우에서 불심을 생각하다

나웅쉐 선착장을 떠나 두어 시간을 가 도착한 곳이 파웅도우 파야다. 호수 내의 조그만 섬에 있는 사원이다. 선착장에서 내리니 한 떼의 비둘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수 백 마리 비둘기가 순례자들이 뿌려주는 먹이감을 먹으려고 한꺼번에 날아드는 게 매우 이색적이다.





파웅도우 사원, 인레호수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유명 사원이다. 기도발이 있는 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 소원을 빈다.

 

이곳 사원은 바간왕국 시절에 건설되었다고 하지만 그 뒤 보수에 보수를 거쳐 지금 파고다의 모양새는 전형적인 바간양식과는 거리가 멀다. 번쩍이는 황금색 탑신은 팔각형으로 양곤 시내에 있는 슐레 파고다와 비슷하다.

 

사원 내부를 들어가니 그 모습이 다른 사원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넓은 강당 같은 곳에 온 기분이다. 그 한 가운데 불상을 모신 단이 있는데, 거기엔 노랗게 생긴 황금알 아니 오뚝이 같은 게 금 덩어리 다섯 개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불상에 금박지를 붙여 놓았는지 형체를 분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미얀마 불교의 특징이다.





타웅도우의 불상, 금박지를 너무 많이 붙여 불상의 형태가 알 수 없을 정도다. 우리의 베스트 드라이버 찌 윈이 소원을 빌면서 금박지를 붙이고 있다.

 

이들의 불교는 철저히 기복적이다. 모든 불상이 경배의 대상이고, 그 불상을 모시고 있는 사원마저 경배의 대상이다. 미얀마 어딜 가도 사원이 있는 곳에선 신발을 벗는다. 미얀마에서 양말장사를 해 돈을 번다는 것은 기적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식의 기복 불교가 가능했을까?

 

미얀마에서 제일 큰 양곤의 쉐다곤 사원도, 바간의 쉐지곤 사원도 모두 석가모니의 불발이나 사리와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 사후 인도에서 가지고 왔다는 머리카락 몇 개, 이빨 사리 등을 모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그런 전설을 믿는 신자들은 그 영험한 기도발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돈을 시주하고, 금박종이를 사 불상에 붙여댄다. 그게 그들 삶의 전부일지 모른다. 자신의 모든 삶은 부처의 손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본 미얀마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샨 양식? 인 데인에서 본 파고다 무덤

파웅도우를 떠나 다시 한 시간 쯤 배를 몰았다. 인 데인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수로를 타야 한다. 수심이 낮고 물 흐름이 완만해 곳곳에 나무나 수초로 간단한 보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약간의 낙차가 있는 통문이 있는데 배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이곳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인 데인으로 가는 수로, 여기 사람들은 여기에서 목욕한다. 배를 타고 가면서 그런 사람들을 몇이나 보았다.


인 데인에 도착해 올라가 보니 큰 전통시장이 있다. 5일장이 이곳 샨 주 인레호수에도 있었다. 이곳도 5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장이 선다고 하니 우리나라 전통장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장터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니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복도는 길다. 처음에는 몇 백미터 정도나 될까 하면서 걸었는데, 걷다보니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미얀마의 수많은 사원을 거쳐왔지만 이렇게 긴 진입로는 처음이다.




인 데인의 쉐 인 데인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다. 양 편에는 선물가게가 줄을 잇고 있다.

 

민 아웅은 복도를 걷다가 잠시 옆으로 빠지자고 한다. 나는 자연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자는 이야기인가 하고 따로 나섰는데... , 거기엔 천 년의 세월을 이겨온 파고다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여기가 바로 인 데인의 파고다 숲!


그런데 이 파고다들은 이제껏 본 것과는 모양이 사뭇 다르다. 첨탑식의 소규모 파고다인데 한 곳에 밀집해 있는 것이다. 끝은 뾰족한 첨탑으로 마치 굵은 바늘이 하늘로 치솟은 모양이다. 이게 이름하여 샨 양식의 파고다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수의 흔적이 많지만 아래 부분에 있는 파고다는 관리가 안 되었는지 폐허 일보 직전이다.

 






쉐 인 데인 사원 근처의 파고다 숲, 아랫 쪽은 거의 관리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서 이 탑의 원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탑은 보수가 많이 되었는데 그 보수에 큰 문제가 많았다.



어떤 파고다엔 큰 나무가 파고다 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본 스펑나무가 사원 전체를 삼킨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인간의 손이 잠시 떠나면 저렇게 되는 것인가. 어느 날 나무 씨앗 하나가 파고다 젖은 벽돌 위에 날아 왔다. 마침내 그것은 발아했고 주변의 흙의 도움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 뿌리는 파고다 벽돌을 파고들어가 언젠가부터는 파고다의 주인이 되었다.

 

이곳 쉐 인 데인 사원 근처의 파고다의 수는 약 천 여 개라고 한다. 일부는 마구잡이로 보수가 진행되어 번듯해졌지만 그저 시멘트를 쳐발라 놓은 정도라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 많은 파고다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우리나라에 저런 파고다 몇 개만 있다고 해도 벌써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했을 텐 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뉘안씨에게 물었다.






위 두 사진을 보면 보수를 제대로 못해 매우 생뚱맞은 파고다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필자는 옛 파고다를 보면서 그 구조를 면밀히 살폈다. 

 

뉘안, 내가 보기에 파고다의 양식이나 수 모두 대단합니다. 이런 곳을 이렇게 관리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요.”

“중앙부 관리들은 이곳의 상태를 모를 겁니다. 안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고요. 주 정부로가 이런 보수를 한다는 것은 엄두가 안 날 겁니다. 사람들의 의식도 보존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게 아직 미얀마지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2016.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