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천불천탑 미얀마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2)

박찬운 교수 2016. 1. 16. 06:53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2)

 

미얀마를 이해하는 키워드 세 가지

 

어떤 여행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감동받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역사도시를 방문했을 때 이 말은 진리에 가깝다. 바간을 중심으로 미얀마를 여행하는 경우 우리는 무엇을 알고 가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 가지다.

 

불교를 알면 미얀마가 보인다

첫째, 미얀마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불교다. 미얀마 인들에게 있어 불교는 절대적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바간왕국은 완전히 불국토였다. 바간의 수많은 불탑과 불상은 모두가 바간왕국에 살던 왕족과 귀족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그들은 왜 수천 개의 불탑과 불상을 그 대지에 만들어 천불천탑의 고대도시를 만들었을까?

 

그건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의 불심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삶의 중심에 부처를 두었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내세를 준비했다. 불교는 2,5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화려하게 꽃핀 곳은 인도가 아니다. 불교는 동방으로 전래되면서 남방의 소승불교로, 북방의 대승불교로 발전했다.

 

남방불교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이자 중심은 미얀마다. 인도에서 멀어질수록 불교의 종교적 강도는 약해진다. 그 현상은 미얀마를 거쳐 태국, 캄보디아를 직접 가보면 안다. 불탑의 개수를 보거나, 도시에서 파고다 혹은 사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거나, 사람들의 행태를 얼핏 보아도 차이가 난다. 내가 여기에서 남방불교 혹은 소승불교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 수는 없다. 그저 경험한 사실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

 




승려들이 아침에 맨발로 걸어가면서 탁발을 한다. 신자는 집에서 밥을 가지고 나와 승려들에게 나눠준다.


내가 미얀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아침 일찍 탁발에 나선 승려들의 모습이다. 8시 전후로 맨발의 승려들이 줄을 지어 거리에 나타난다. 신자는 집에서 밥을 가지고 나와 그들 승려를 기다린다. 승려들이 시주자의 앞을 지나가면서 공손히 밥을 받는다. 그 행렬이 많은 때는 수십 명에 달한다. 이런 광경은 미얀마 어딜 가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나와 동행한 뉘안 씨를 통해 미얀마 인들의 불심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는 양곤의과대학을 나온 의사로 유명인사다. 미얀마에선 가장 깬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2년 전 몬주에 있는 그의 집에 가서 놀랐던 것은 거실 한 켠에 놓여있는 불단이었다. 조그만 가정 불당인데, 거기엔 매일 같이 꽃과 예물이 올려 진다.




뉘안 씨의 집 거실에 있는 불단, 불단 아래에는 돌아가신 부친의 사진이 있다.

 

불단 아래엔 뉘안 씨의 아버지 초상화가 놓여있었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딜 가도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고 시주한다. 심지어는 불상에 금박지를 붙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상 앞에서 섰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절을 하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내가 물었다.

 

뉘안, 도대체 오늘은 무엇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까?”

, 우리 집사람과 딸 그리고 우리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우리 아들이 이번에 사업을 시작했든데, 그게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을 위해 특별히 부처님께 빌었지요.”



인레호수 파웅도우 사원의 불상, 신자들이 금박지를 너무 붙여 놓아 불상의 형체를 알 수 없다.




뉘안 씨가 인레호수의 파웅도우 사원에서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불상에 옷을 입히고 있다.

 

인레호수에는 유명한 사원 파웅도우 파야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불상 다섯 개가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 불상들의 형체를 알 수가 없다. 이유인즉, 수많은 신자들이 금박지를 붙여놓는 바람에 불상의 형체가 알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뉘안 씨도 거기에 금박지를 붙였는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노란 천 3개를 사서 불상에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뉘안, 그게 뭡니까?”

, 이것은 부처님에게 옷을 입히는 의식인데, 이렇게 한 다음 이 천을 가지고 가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대화도 했다.

뉘안,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불교에 대해서 기성세대와는 좀 다르지 않겠어요. 저런 불심이 앞으로도 이어질까요?”

, 그건 물론이지요. 미얀마에서 불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가도 그것은 꺼질 수 없는 불꽃입니다. 저기 보이지 않습니까, 어린애들도 저렇게 와서 절을 하지요. 바로 저게 미얀마입니다.”




미얀마 어딜 가도 저렇게 신자들이 불상 앞에서 기도하고 시주를 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원을 찾은 어린이들,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이들도 사원에 오면 공손히 절하는 게 그 불심이 보통이 아니다.

 

불교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미얀마를, 바간을 보는 눈이 트일 것이다. 바간과 미얀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그 수많은 불상,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 불교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지리를 알면 미얀마가 보인다

미얀마를 이해하는 두 번째는 지리다. 미얀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라와디 강(에야와디 강이라고도 부름)이다. 이강은 길이가 2,170 킬로미터가 되는 미얀마 최장의 강으로 미얀마 가운데를 관통한다. 히말라야 산맥 남단에서 발원해 느마이 강과 말리 강이 카친 주에서 합류해 하류인 양곤방향으로 내려간 다음 안다만 해로 흘러들어간다.

 



지도만 보아도 미얀마 중앙을 관통하는 이라와디 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미얀마 역사는 각 종종끼리 이 강을 놓고 벌린 투쟁의 기록이다. 이 강을 차지하는 종족이 결국 미얀마의 주인이 되었다. 지난 천 년의 미얀마 역사에서 최대 종족인 버마족은 세 번에 걸쳐 통일왕국을 만들었다. 그 통일왕국은 모두 이 강을 차지한 것이었다.

 

미얀마 역사에서 이 강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지도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얀마의 평원지대는 바로 이 강가에 조성되어 있고(그 면적이 미얀마 전체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0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다) 곡창지대이기 때문이다. 통일왕국은 이집트의 고대왕조에서 보듯 강 전체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시도된 필연적 결과물이다.




바간은 이라와디 강가에 위치한다.

 

바간은 이라와디 강가에 위치한다. 버마족은 강변 둑을 천연요새로 삼고 바간 평원에 성곽을 쌓고 도시를 건설했다. 지금 바간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올드 바간의 성벽으로 초기 바간왕국의 규모를 알 수 있다. 바간왕국은 조그만 성채도시에서 출발해 그 규모를 성 밖으로 뻗어나갔다.


종족을 이해하면 미얀마가 보인다

미얀마를 이해하는 세 번째는 종족(ethnic group)이다. 미얀마는 고대부터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 종족 국가다. 현재 인구 중 70프로가 넘는 버마족과 다수종족으로 불리는 샨족, 몬족, 라카인족, 꺼인족, 까야족, 까친족, 친족이 있고, 그 외에도 135종족이 있다. 미얀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버마족이지만 이들이 항상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평생 목에 금속 링을 걸고 사는 카렌 족 여인


역사에 의하면 버마족이 미얀마의 맹주가 되기 전엔 다른 종족이 이곳저곳에서 독립왕국을 세웠다. 대표적인 게 몬족과 샨족이다. 몬족은 양곤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역의 패자였다. 양곤에서 북쪽으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바고엔 14세기 몬족의 바고왕조가 세워져 영화를 누렸고, 같은 시기 인레호수가 있는 지금의 샨주에선 샨족의 인와왕조가 세워져 번영을 구가했다.

 

버마족은 11세기 초부터 두각을 나타났다. 바간왕조를 중흥시킨 아노라타와 그 후계자 짠찌타는 이라와디 강가에 사는 타 부족을 모두 복속시킨 다음 첫 번째 통일왕국을 세운다. 그 이후에도 버마족은 두 번에 걸쳐 통일왕국(타웅구 왕조, 콘바웅 왕조)을 세우면서 미얀마에서 대적할 수 없는 종족적 위치를 점한다. 그렇다고 해서 버마족이 미얀마 전체를 마음대로 했던 것은 역사 이래 없었다.

 

현재 미얀마의 행정구역은 이들 종족을 중심으로 편성된 것이다. 메이저 7개 종족이 사는 지역은 각각 주(state)로 인정받고 있다. 버마족은 주에 편입되지 않고 7개의 도(region)라는 행정구역에서 사는데, 이들 도는 모두가 이라와디 강가로 미얀마의 노른자위 지역이다

 

미얀마를 돌다보면 그 많은 파고다와 사원들이 종족별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적으로 이것을 연구하면 그게 바로 불교 건축양식이다. 이 양식은 바간양식, 만달레이 양식, 몬양식, 샨양식, 라카인양식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종족이 불교에 끼친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간의 쉐지곤 파야, 바간탑의 전형은 저렇게 종같이 생긴 탑이다.



샨주 인데인의 탑, 샨양식은 저렇게 마치 바늘처럼 탑하부에서 꼭대기까지 가파른 경사로 치솟아 있다.


미얀마에서 이들 종족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최근까지도 미얀마엔 종족분쟁으로 밀림지역에선 소수부족의 게릴라 활동이 있었다. 군사정부 하에서 국호가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뀐 것도 바로 그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버마라고만 하면 오로지 버마족의 국가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내가 뉘안 씨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뉘안, 미얀마가 무슨 뜻입니까?”

, 그것은 Fast and Hot이란 뜻이오. 미얀마가 빠른 시간 내에 경제성장을 해 부유한 나라가 되고, 여러 종족이 뜨겁게 연대하자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