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천불천탑 미얀마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3)

박찬운 교수 2016. 1. 16. 21:31

천불천탑의 나라 미얀마를 가다(3)

 

내 심장을 멎게 한 바간의 석양-바간 서장-

 







석양 속의 바간, 중앙의 사원은 아난다와 탓빈뉴

석양 속의 바간, 숨 막힐듯한 장엄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풍경을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바간의 아름다움은 어떨까? 아무리 평가가 박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수많은 절경의 하나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내 표현력으론 그 신성한 아름다움을 묘사할 길이 없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 바간 한 가운데 퇴락한 수도원의 옥상에 올라가 수천 개의 파고다 군락을 지켜볼 때의 그 감동 어떻게 그것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앙코르와트의 일출

수 년 전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앙코르와트 일출 장면이다. 새벽 5시 반 아직 사위가 깜깜한 때 나는 수많은 여행자들 속에 끼어 앙코르와트 앞에 섰다. 곧 솟아오를 해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해가 앙코르와트 뒤 밀림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엄한 자연에 어우러진 앙코르와트가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나는 지금도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석양 속의 바간





석양에 빛나는 틸로민로 파야




바간의 석양을 바라보는 필자

 

그런데 이번에 바간 한 가운데 사원에 올라 저 멀리 파고다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나니, 노을진 석양 아래 눈부시게 서있는 파고다를 보고나니, 앙코르와트 일출의 장엄미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바간의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이, 노을진 석양이 한 동안 내 기억을 지배할 것이.


그만큼 나의 영혼을 사로잡는 광경이었다. 나는 이 광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이번 여행을 위해 거금을 들여 산 사진기 성능이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 광경을 제대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앞에 중국인 남녀가 고가의 망원렌즈를 사용해 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바간에 오려면 저 정도의 무장은 하고 와야 여행자의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바간을 가보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 바간에 가서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쉐산도 사원으로 달려가라! 저녁 무렵엔 해가 떨어지기 한 시간 전쯤 틸로민로 사원 근처 허물어져가는 옛 수도원을 찾아 그 옥상에 올라가라! 해가 떠오르면서 바간의 파고다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그것을 보라. 노을에 붉게 탄 하늘 아래 펼쳐지는 파고다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그것을 보라. 나는 이 광경만 제대로 보고 기억한다고 해도 바간여행은 일단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쉐산도에 보는 일출



쉐산도에서 보는 아침의 바간 파고다



쉐산도 파야





쉐산도 사원에 많은 여행자들이 일출을 보기 올라왔다.

 

바간에는 여행자의 눈을 의심할 정도의 엄청난 규모의 파고다가 즐비하다. 하루 부지런히 바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몇 개의 사원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 담마얀지, 탓빈뉴, 틸로민로, 고도팔린, 쉐산도, 쉐지곤, 밍글라제디, 마하보디 등등... 이런 사원의 위치를 안 다음 일출은 쉐산도 사원에서, 일몰은 위에서 말한 수도원 옥상에서, 바간 파고다 군락을 보면 내가 말하는 그 압도적 절경을 맛볼 수 있다.

 

바간왕국이 남긴 파고다
미얀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서가 19세기에 쓰여진 <유리궁연대기>라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바간은 기원 후 2세기부터 버마족에 의해 왕국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바간왕국의 전성기를 만든 이는 11세기 아노라타라는 왕과 그 후계자 짠지타 왕이다. 이 두 왕이 어떤 사람인 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면 얼마 전 EBS가 미얀마 방송국과 공동으로 만든 바간왕국 특집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미얀마에 가기 전 이 프로그램을 두 번 보았다.

 

아노라타는 1044년 즉위하여 당시 강력했던 남쪽의 몬족 타톤 왕국을 점령하고 그곳 왕 마누하와 왕비 등 3만 명을 바간으로 끌고 왔다. 아노라타는 이외에도 수많은 부족을 전쟁을 통해 복속시켜 왕국의 경계를 넓혔다. 그 다음 왕 짠지타는 여러 부족을 화합시켜 명실공히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을 완성했다. 이 두 왕은 재위기간 중 수백 개의 불탑과 사원을 건축했다. 바간왕국은 그 뒤 2백년의 영화를 누렸지만 1287년 몽고의 침략을 받아 점령되었고 파괴되었다.







바간의 여러 파고다



우리가 바간에 가서 보고자 하는 것은 바간왕국 최전성기에 이루어 놓은 파고다. 바간의 파고다는 14세기 4천 개가 넘었다고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천 개 정도. 많은 파고다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폐허가 되었지만 우리의 눈을 의심할 정도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파고다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파고다를 만든 건축술이 뛰어났다는 이야기다.

 

바간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파고다라는 말의 의미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 원어로 파고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 몇 개가 있다. 우선, 파야라는 말을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사원 개념이다. 대체로 모가 엄청나다. 예를 들어 바간에서 가장 큰 사원 중 하나가 아노라타와 짠지타 재위 기간에 만들어진 쉐지곤인데, 통상 쉐지곤파야라고 부른다. 보통 파야는 중앙에 중앙탑이 있고 부속건물이나 소규모의 탑이 딸려 있다.







밍글라제디, 저 파고다는 아래에 공간이 없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파야의 양식이다. 중앙탑을 기준으로 파야는 크게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진다. 하나가 제디. 이것은 중앙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를 말한다. 밍글라제디라는 사원이 있는데, 이것은 명칭만으로 그 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 탑은 아래가 꽉 차있어 순례자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또 하나의 양식이 파토. 이것은 중앙탑 아래 쪽에 공간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며, 순례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유명 사원 중 하나인 아난다의 경우 아난다 파야라고도 부르지만 아난다 파토라고도 부른다. 이 용어만으로 이 사원에선 중앙탑 안으로 들어가 사면 복도를 따라 모셔진 부처에 예불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담마얀지 파야, 이 사원은 파토식이다. 중앙탑의 아래 부분에 복도식 공간이 있고, 동서남북으로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바간 파고다를 순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2천 개가 넘는 파고다를 전부 다 보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몇몇 주요한 파고다만을 선택해 주마간산 격으로 순례한다고 해도 최소 2-3일은 필요하다. 자유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E-Bike라는 것을 이용해 바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바간의 여행자들은 저렇게 E-Bike를 타고 다닌다.

호텔이 있는 뉴바간에는 E-Bike 대여소가 곳곳에 있다. 이것을 타고 바간 지도를 보면서 사원을 찾아다니는 것이.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미얀마에선 어딜 가도 사원에 들어갈 때는 맨발이어야 한다. 미얀마에선 양말을 신을 필요가 없다. 수없이 많은 사원을 순례하는데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가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슬리퍼나 샌들이면 족하다. 대통령도 공식적인 행사에 나올 때도 전통복장인 론지를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나오는 나라가 미얀마다.

다음 회는 내가 돌아 본 파고다 중 주요 파고다를 선별해 사진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날이 좋은 건기에 이곳을 방문했으니 대부분 사진이 예술이다. 독자들은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