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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철학

박찬운 교수 2015. 9. 26. 20:29

칼국수 철학


대한민국엔 건설은 있지만 건축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은 하늘을 채우고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문화와 철학을 읽을 수 있는가. 모든 건물이 천편일률적으로 기능만 앞세우지 미적 요소나 자연과의 조화,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요소를 담진 못하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소위 랜드마크 건물도 그것을 만든 건설회사는 알지 모르지만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는 모른다. 삼성동 코엑스 빌딩은 누가 설계를 했는가, 도곡동의 거대 거주 공간 타워팰리스는 누구의 작품인가. 나만 모르는가? 아마 나의 페친들도 모를 것이다. 알 수가 없다.


한 마디 더 하자. 이 나라는 건축가나 건축 장인들을 너무나 홀대한다. 수년간 복원에 힘써 마침내 조선궁궐의 위용을 갖춘 경북궁을 세상에 선보일 때도 이를 총지휘한 대목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복원행사에서도 그것을 위해 땀을 쏟은 목수와 장인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쳐주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우리는 천박한가? 그렇다. 우리에겐 철학이 있는가? 없다. 왜 우리는 모든 것을 권력과 돈으로만 재단하는가.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누구는 그 모든 것이 20세기 일제의 식민문화와 한국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선배들이 당한 고통이 너무 컸다. 그 엄청난 시련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체면을 버려야 했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과 힘만이 찬양되었다. 그러니 무슨 문화냐, 무슨 배부른 소리냐.


그러면... 우리가 언제까지 모든 것을 과거의 책임으로 돌리며 살아가야 할까. 이제 해방된 지 70년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족하지 않을까. 이제는 좀 주변을 돌아보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철학을 가져야겠다. 이것은 학력의 문제가 아니다, 일류대학을 나와야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아무리 가방끈이 짧다 해도 철학적인 사람은 될 수 있다. 이것은 품격의 문제다.


자, 우리 동네에 칼국수 집이 하나 있다 하자. 나는 그 칼국수 집 주인이 칼국수 한 가닥에 자신의 삶을 던지길 바란다.


‘돈 벌면 당장 때려치우겠다,’ ‘나는 결코 이런 일을 자식에게 넘기지 않겠다’, 그 딴말 하지 말고, ‘내가 만드는 칼국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칼국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칼국수 만드는 것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수다’라는 자존심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칼국수는 혼이 담긴 칼국수가 된다. 대통령이라도, 어느 재벌 회장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는 칼국수의 제왕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사는 사람, 나는 그를 칼국수철학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겠다.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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