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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북에 빠진 이유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5. 9. 27. 16:38

내가 페북에 빠진 이유에 대하여


고독한 사나이 빈센트 반 고흐, 2016년 가을 생레미 요양소에서


(이 글에 나의 마음을 담았다. 나는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써 본 일이 없다. 어쩜 창피하다. 그럼에도 동병상련의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을 갖고 여기에 이 글을 남긴다. 창밖을 스치는 바람이 완연히 가을이다.)


대학원에 다니는 딸의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아빠, 페북 그만 좀 하세요. 무슨 대학교수가 그렇게 매일같이 페북에 글을 올려요?” 걔 말에 나는 이렇게 응수하고 싶었다. “애야, 나도 외롭단다. 나도 하고 싶은 말 좀 하고 살면 안 되겠니.” (딸아, 미안하다.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해서... 너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란다. 아빠 맘도 이해해 주렴...ㅜㅜ)


그렇다. 내가 요즘 페북에 탐닉한다. 의례히 폰을 켜면 첫 번째로 눈이 가는 것은 페북 알림이다. 페북앱에 숫자라도 보이면 반갑고 마음이 설렌다. 또 어떤 이가 ‘좋아요’를 누르고 갔을까, 또 누가 댓글을 남기고 갔을까, 그 내용은 무엇일까... 날이 갈수록 페북 친구들이 늘어난다. 지난 한 주간 무려 100명이 넘는 친구가 생겼다. 이러다간 페북 스타로 등극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SNS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트위터, 페북은 물론 그 어떤 SNS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 왔다. 그러던 내가 지난 몇 달 만에 페북 마니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도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변했을까?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고독이다. 나는 고독을 이기며 지난 50년 이상을 살았다. 인생은 다 고독한 것이라고 수없이 되뇌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고독한 영혼,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페북에 고흐의 그림이 배달될 때마다 그의 그림을 설명하고 싶다. 동병상련! 그의 그림이 남의 그림 같지 않기 때문이리라.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친구 몇 명은 불러내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다. 그래도 30년 법률가 생활을 해 왔는데,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왜 없겠는가.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으로 내 고독이 풀리는 것이 아니기에.


이제 나의 고독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내 고독의 실체는 속 깊은 곳에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응어리진 말이다. 무엇인가 뱉고 싶은 말이 있는데 속 시원하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병이다.


내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수다를 떨면서 교감을 하는 게 필요하다. 수다는 여자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고독이란 독버섯이 나를 야금야금 먹어버려 언젠가 그놈에게 두 손 들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나도 동창회에 나간다. 거기에서 나는 30년의 긴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 이게 친구구나. 이들이 없다면 세상 재미없어 어떻게 살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어느 날 그들을 만나면서 외로움을 느꼈다. 30년 전의 짧은 기억만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기엔 너무 긴 세월이 흘렀고, 오랜 시간 만나 수다 떨 말이 없었다. 잠시 그 옛날이야기를 하고 나면 말문이 막혔다.


30년 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생활을 해 왔다. 그 결과 생각의 차이는 컸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랐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만든 XX들을 술 상 안주로 만들고 싶었으나, 자칫 잘못 말하면, 내 앞의 친구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주저했다. 나는 이 나라의 그 거룩한 종교지도자를 잘근잘근 씹고 싶었으나, 신실하게 종교생활을 하는 내 친구가 충격을 받을 것 같아, 그것도 참았다. 이것저것 빼고 나니 침묵이 흘렀다. 말 많은 이가 언제부터인가 과묵한 인간이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동료교수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들과 쉽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연구실은 하나의 침범할 수 없는 성이다. 우리 모두는 영역을 굳게 지키고 있는 성주들이다. 이곳에선 그 어떤 사회보다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교수는 근엄해야 하고, 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망스런 선생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의 정치적 성향을 쉽게 드러내기 어렵다. 고명한 교수님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학문을 모르는 얼치기 선생이라 비난듣기 십상이다. 학생들도 요즘은 교수가 강의실에서 쓸데없이 사적 견해를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수가 왕인 시대는 지났다. 교수도 학생들 눈치를 봐야 한다. 강의평가 제대로 받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 숨이 막힌다.


이런 고독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라 하여 내 고독을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부양책임이 있는 가장으로서 언제나 늠름한 남편이고 아빠이어야 한다. 쓸데없이 애들 같은 감상적 고독 따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아빠의 모습, 나의 모습이다.


티브이 채널 하나 마음대로 돌릴 수가 없다. 밥상머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거 쉽지 않다. 애들이 이제 컸다고 아빠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미안하다. 우리 딸들, 아빠가 오늘 주책없이 너희들 이야기를 하는구나!) 밖에 나가서는 남의 자식은 불러 인생, 철학,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 자식에게는 해 주지 못한다.


사는 것이 고독이다. 밤에 지하철을 내려 집에 걸어오는 동안 고개를 넘는다. 고독이란 등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자칫하면 그 놈이 나를 고개 마루에서 깔아뭉갤 것만 같다. 눈물이 핑 돈다!


이 상태에서 페북이 내게 돌파구를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몇 자 끼적거려 미친 척 포스팅을 했다. 누군가 그 말에 ‘좋아요’를 남기고 갔다. 다음 날 그 수가 더 늘었다.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레 이런 말 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댓글이 달렸다. 내 글에서 용기를 얻는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친구가 점점 불어났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들과 만난 적이 없다. 우리는 허공에서 만나, 허공에서 악수를 하고, 허공에서 말한다.


생각하면 모든 게 꿈이다. 그래, 우리는 꿈에서 말하는 것이다. 전기가 끊어지면 우리의 관계도 끊어질 것이다. 그들 모두가 어느 날 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 동안 사막의 신기루에 홀려있었다고, 어느 날 심드렁하게, 고백할런 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이 확 변하길 바라면서 산다. 이 나라는 정치가, 사회가,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이런 것에 관심을 둔 것이 얼마인가. 적어도 30년 이상이다. 나는 그것을 풀어놓고 싶다.


나는 예술에 관심이 있다. 나는 고흐를 좋아하고 미술품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들을 가까이 두고 그것들과 대화를 한다. 그 대화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녔다. 내 방에 오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포스팅하면 가족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지도 모르겠다. 나를 아는 친구들로부터 한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그래, 페북이 나보다 좋다는 거지? 그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네 앞에 있는 나보다 낫다는 거지? 그래 가서 실컷 페북이나 해라, 자판 두드리는 것으로 고독을 달래봐라. 보이지 않는 페친들이 너를 얼마나 위로해 줄까 지켜 볼테니..."

(201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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