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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에게

박찬운 교수 2015. 9. 26. 22:13

[나의 이디스에게]


사랑의 열병으로 밤을 지새운 분들에게 이글을 드립니다.
....

내가 버트런드 러셀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사랑의 열정이 자신을 지배한 첫 번째 열정이었다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만일 러셀의 생애가 그 뛰어난 지성만을 보여주었더라면 나는 그를 존경하기는 했겠지만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러셀은 젊은 시절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는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자랐다. 당시 영국 사회의 도덕률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인간의 본능은 중시되지 않았고 이성의 통제 대상으로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위의식에 가득 찬 도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본능에 기초한 남녀의 사랑을 강조했다. 자유연애를 지지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 막는 어떤 가식도 허용하지 않았다.


도덕주의자들은 그가 몇 번이나 이혼을 하고 주변에 여러 연인을 거느린 것을 두고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몰아쳤지만 그는 인간의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단순한 도덕 기준에 의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했다. 러셀은 연인과의 사랑이야말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라고 찬미했고, 연인과 나눈 그 짧은 사랑마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의 희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생각했다.” (러셀 자서전 서문)


그러나 이것은 기억하자. 러셀이 무분별한 자유연애주의자가 아니란 사실을. 그는 분명히 말한다. 연인 사이에 아이가 있는 경우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은 무한한 것이라고. 그러니 책임 있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말한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적 관계는 두 사람의 모든 인격이 융합하여 새로운 공동의 인격을 형성하는 관계라는 것을.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친밀감과 굳센 일체감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우리가 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러셀은 나이 아흔이 넘어 이것을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한다. 일흔이 넘어 마지막 연인으로 만난 이디스(Edith)에게 러셀은 자서전의 첫 장에서 감동적인 시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디스에게

오랜 세월
평온을 찾아 헤맸소.
인생의 환희도, 고통도 만났다오.
인간의 광기를 목도했고
고독함이 무엇인지도 알았소.
내 심장을 갉아 먹던 그 외로움의 고통도 느꼈다오.
그러나 나는 결코 평온을 발견하지는 못했소.

이제, 나, 늙고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당신을 알아
인생의 환희와 평온을 찾았다오.
그리고 쉼을 얻었소.
그토록 외로운 세월 끝에
인생이, 사랑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다오.
나, 이제 잠든다 해도
여한은 없을 것이오.

(이 시는 내가 직접 번역했다. 한국어로 출판된 자서전에도 이 시가 나오지만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나는 나이 90이 된 러셀의 심정으로 다시 번역했다.)


죽기 전에 우리도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이런 시를 바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정녕 감사하라. 이런 연인이 없다면 어딘가에 있을 그 연인 찾기를 쉬지 말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열정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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