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이태리기행

토스카나를 가다(1)

박찬운 교수 2022. 8. 21. 17:48

나는 룬드시절(2012-2013) 가급적 많은 여행을 하고 싶었다. 스웨덴에 간 것이 놀러 간 것이 아니기에 본업인 연구야 성과를 내야 하지만(참고로 나는 1년간 두 개의 논문을 쓰기로 계획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귀국 전에 두 개 논문을 완성해 학회지에 실었다) 틈틈히 유럽 이곳저곳을 다닐 계획을 세웠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한 번은 3박 4일 혹은 5박 6일 정도의 여행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유럽에 있다는 것은 돈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여행지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력만 있다면 단 돈 몇 만원이면 내가 평생 로망으로 생각해온 여행지를 갈 수 있는 항공편이 있었다.

나는 심심할 때 라이언 에어와 이지 제트 항공편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코펜하겐에서 런던에 가는데 왕복권 항공료가 4만원도 채 안 되기도 했다(재미 있는 것은 런던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는데 그보다 더 큰 돈이 들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것은 내가 근무했던 라울 발렌베리 연구소 옆에 조그만 여행사가 하나 있었다는 것. 매일 아침 여행사 창문에는 싼 항공권 가격이 붙어 있었다. 출근하면서 그것을 보면 내 얼굴이 밝아졌다. 가고 싶은 곳을 저 가격에 갈 수 있다니! 횡재한 느낌이었다.

이하의 이야기는 2013년 6월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쓴 '스웨덴 일기' 중 일부다. 특별히 편집을 하지 않고 당시 일기를 그대로 이곳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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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일부터 9일까지 이태리 토스카나를 여행했다. 피사를 시작으로 해서 친퀘테레, 루카, 피렌체, 시에나, 산지미냐노를 거쳐 다시 어제(토) 피사로 돌아 왔다.

피사
피사는 아무리 보아도 피사 성당과 사탑 이외에는 크게 볼게 없다. 다만 성당 근처 그리고 아르노 강가에 자리 잡은 피사대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1343년 만들어진 피사대학은 이태리의 유서 깊은 대학이다. 15세기 말에는 군주론의 주인공 체사레보르자와 메디치가의 황태자 로렌쵸도 바로 이곳 대학을 다닌 동창생이었다. 그 오랜 역사의 현장에 있는 피사대학은 현대의 학생을 받아 현대식 교육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가 무색하다. 고금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런게 아닐까.

<피사 대성당과 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

<피사의 구 도심의 이렇다 하는 건물은 대부분 피사 대학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피사대학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친퀘테레
첸퀘테레는 해안가에 절벽에 다섯 개의 마을(리오마지오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사, 몬테로소)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다.

라스페챠를 통해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데 그 빼어난 풍광으로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이 찾아 온다. 특히 마을을 잇는 트레일은 환상적인 트레킹을 제공한다.

지난 2011년 폭우로 네 구간 중 처음 두 구간이 막혀 있다. 마을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몬테로소에 가서 거기로부터 출발 베르나사, 코르닐리아까지 7킬로를 걸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숲속을 걸었다.

중세 이후 이곳 농부들이 가꾸어 계단식 포도농장을 보면서 농부들의 땀을 생각했다.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람과 풍부한 햇빛이 만들어 내는 친퀘테레의 와인을 마시지 못한 것이 떠나오면서 약간 아쉬움으로 남았다.

<몬테로소>

<친퀘테레를 잇는 길은 대체로 이렇다. 기찻길이 있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이런 잔도에 가까운 길이다.>

<절벽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포도밭을 만들었다.>

<곳곳을 이렇게 돌을 쌓아 길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아치형 다리가 보이는데 역시 로마인의 후예다.>

<해안가 절벽 아래에 있는 베르나사, 사라센 탑이 보인다>

<절벽 정상에 있는 코르릴리아>

루카
루카! 이곳에 올 때는 루카가 이런 곳인 줄을 몰랐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루카가 역사에 나타난 것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의 권력을 차지할 때 정적인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모여 삼두 정치체제를 만든 그 유명한 루카회담(기원전 56년)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다.

루카는 평지에 있는 도시다. 중세 시절엔 피사와도 겨룬 이름 있는 중세 도시다. 이곳에서 놀란 것은 16세기 만들어진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니 루카는 아직도 중세 그대로다.

4.2킬로 성벽이 루카 시내를 그대로 에워싸고 있고 사람들은 아직도 성내에서 중세 시절, 르네상스 시절 살았던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에 이런 도시가 있다니…

사람들은 중세의 도시에서 현대생활을 한다. 집에는 인터넷이 있고 현대식 가전제품이 완비되어 있다. 내가 묵은 집도 5백년이 되었다고는 하나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가옥의 안전한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현관문을 육중하여 허락없는 침입은 어떤 경우도 불허한다. 내부의 잠금장치도 훌륭하다. 도둑이 많아 이리도 안전한 집을 지었는가.

시내 곳곳의 성당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시대가 고딕양식 시기였을지라도 이곳 사람들은 로마네스크의 전통을 지킨 모양이다. 성벽은 단순한 성벽이 아니다. 시민들의 공원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훌륭한 구조물이다. 울창한 숲을 제공하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걷고 뛴다.

성벽을 허물지 않은 것은 루카인들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일 이 루카성벽이 허물어졌다면 루카는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지 못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허물어진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루카는 19세기 초 다른 유럽 도시가 대부분 성벽을 철거할 때 성벽을 보존하기로 한 도시다. 그 덕에 완벽하게 중세 도시를 지금도 볼 수 있다. 현대적 도시는 성곽 밖에 위치하고 5백년 아니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 건물은 이 성벽 안에 그대로 보존되었다.>

<루카의 성벽 길이다. 성벽은 단순히 담장이 아니다. 성벽 위로 올라가면 폭 30-40미터의 이렇게 넓은 길이 나타난다. 성벽 길은 4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데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성 전체를 관망하는 것은 루카 여행의 필수 코스!>

<루카성은 이런 문을 통해 들어간다. 밖은 현대, 안은 중세>

<루카 성당>

<루카에서 제일 높은 루카 탑에서 루카 성내를 조망할 수 있다.>

<루카 성내, 이런 수로가 루카 성 이곳저곳을 지난다.>

<루카 성 한 가운데의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