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이태리기행

꿈의 도시 피렌체를 가다

박찬운 교수 2015. 10. 1. 09:04

르네상스의 수도 피렌체를 가다

 

르네상스의 수도 피렌체

피렌체! 사람들은 그곳을 르네상스의 수도라 부른다.

나는 오래 전부터 피렌체에 가는 꿈을 꾸어 왔다내 머리 속에 피렌체는 가장 완벽한 도시인간의 이상이 현실화된 도시 등으로 각인되어 왔다왜일까아마도 이런 피렌체관을 갖게 된 것은 박홍규 교수의 르네상스 관련 서적이나 미국의 도시학자 루이스 멈퍼드의 도시관의 영향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갖는 도시의 이상은 자율적 자치가 가능한 작은 규모의 공동체그러면서도 있을 것이 다 있는 자족적 도시다그런 면에서 피렌체는 모든 것이 충족된 도시였다교회와 정청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경제력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 1 31일 오후 나는 산타루치아 역을 통해 베네치아를 빠져 나와 피렌체로 향했다. 베네치아, 언젠가 다시 한 번 베네치아 골목길을 걸어볼 것이라 다짐했다. 아마 그 때는 가보지 못한 유리공예의 메카 무라노도 갈 것이고, 곤돌라를 타면서 화려한 베네치아를 노래하게 될 것이다.

 

쾌속 열차인 유로스타는 두 시간 반 만에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이슬비마저 추적추적 내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지도와 주소만으로 호텔을 찾아보려 했지만 방향감각을 잃은 나는 역 주위에서만 뱅뱅거렸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주며 물어 보았지만 택시를 타라고 한다. 돈 몇 푼 아끼려고 괜한 수고를 한 셈이다. 덕분인지,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호텔은 아르노 강가, 그 유명한 베키오 다리가 지척이다

 

<피티궁의 보볼리 공원에 바라 본 피렌체>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역사박물관이다. 물론 도심의 역사지구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 역사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약간 고색창연하다 싶은 건물은 예외 없이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아기자기한 공방을 수없이 만나는데 그것들도 알고 보면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것들이니 우리나라에서 몇 십 년 전통 운운하는 것을 그곳에 가서 말하면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며칠 내로 이 모든 유산들을 어떻게 다 볼 수 있으리. 단지 책에 소개된 대표적 유산만 잠시 보고 올 따름이다. 시간과 여유, 돈이 있다면 다시 가볼 희망을 안고.

 

<피렌체의 상징산타마리아 델라 피오레, 상: 성당의 돔, 하: 성당 전면>

 

꽃의 성모 성당, 두오모

이탈리아의 역사도시 어디를 가도 도심 한 가운데는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성당의 이름은 두오모라 한다. 원래 두오모는 로마 건축의 상징인 돔에서 유래한 것이니 돔 형식 성당을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건축 형식과 관련 없이 두오모는 도시의 대성당을 일반적으로 일컫는다. 피렌체의 대성당, 두오모는 그 유명한 산타마리아 델라 피오레(꽃의 성모 성당)이다

 

피렌체 두오모는 13세기 말 피렌체의 도시계획에 크게 기여한 아르놀포 캄비오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150여 년이 지난 15세기 중반에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성당의 상징인 돔이 완성됨으로써 완공되었다. 두오모의 외관은 다른 성당과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 성당의 외벽은 단색의 대리석을 사용하는데, 이곳엔 푸른색, 분홍색 등의 대리석이 섞여져 사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성당의 매력은 그 돔에 있다. 도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돔(돔 자체의 높이는 23미터, 땅에서부터 쿠폴라까지의 높이는 90미터임)은 피렌체 어디에서 보아도 쉽게 눈에 띄니 피렌체의 상징이랄만하다.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르노 강 건너 언덕에 자리 잡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피렌체를 굽어보면, 두오모는 피렌체 정 중앙에서 그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주인공 쥰세이와 아오이가 아오이의 30세 생일날 만나기로 한 곳이 바로 이곳 두오모의 돔 꼭대기에 있는 쿠폴라다. 15세기 이 돔이 올려질 때 그 기술은 당시 유럽에서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당시 브루넬레스키는 이 돔을 올릴 때 로마의 판테온을 참고한 모양이지만 판테온은 돔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구멍을 막아 그 위에 쿠폴라를 올려놓았다. 고대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할까. 후일 이 돔 양식은 브라만테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의 돔을 완성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옆에 있는 부르넬레스키 상, 자기가 건축한 돔을 올려다 보고 있다.>

 

성당 주변에는 두 개의 명소가 있다. 조토의 종루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부른 산조반니 세례당의 문이다. 종탑은 성당의 돔보다는 6미터가 낮다고 하는데, 41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에 이른다. 천국의 문은 구약에 나오는 10개의 에피소드를 부조한 것으로 기베르티가 조각했다.

 

 

<피렌체 두오모, 옆의 조토의 종루>

 

<산조반니 세례당 문, 일명 천국의 문>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 우피치

피렌체 관광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시뇨리아 광장일 것이다. 그곳에 가면 광장과. 그것과 면해 있는 베키오 궁과 우피치 미술관을 볼 수 있다. 이 광장은 르네상스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만한 곳이다. 1301년 단테가 추방된 곳도 이곳이고, 15세기 후반 메디치가에 반기를 든 피렌체의 또 다른 부호 루카 피티가 메디치 일가를 살해하려 했던 소위 파찌의 음모가 있었던 곳도 이곳이다

 

로렌초 메디치가 죽자 한 때 피렌체를 좌지우지했던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인간의 향락을 부추긴다는 명목으로 이탈리아판 분서갱유를 감행하고, 이어 그 자신이 처형당한 곳도 이곳이다. 그뿐인가.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인 다비드상이 세워진 곳은 바로 이 광장의 모퉁이에 있는  베키오 궁 앞이 아니었던가.

 

<베키오 궁전 앞의 시뇨리아 광장, 공장 가운데는 사보나롤라가 처형당한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이 광장을 둘러본 다음 당연히 가야할 곳은 단연 우피치 미술관이다. 베키오 궁 옆에 위치한 것인데, 르네상스기 회화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다. 우피치는 원래 영어의 오피스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다. 16세기 후반 피렌체를 다스린 이는 메디치가의 코지모1세인데, 그는 피렌체 내의 여러 정청을 한 군데로 모으고 그 사무공간을 위해 우피치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우피치 미술관은 과거 토스카나 대공국의 시청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코지모 1세는 그 재위기간 중 베키오 다리 건너 지구에 있는 파찌 가문에서 공사하다 중단한 피티 궁을 매입해, 메디치 가의 궁전으로 만들면서, 우피치 옆에 있는 베키오 궁전에서 피티 궁까지 회랑을 만들게 했다. 출퇴근 시에 암살 위험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인데, 그것은 당시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조르조 바사리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 잔영은 지금도 역력하다. 우피치 미술관 3층에 올라가 아르노 강가의 복도에서 밖을 내다보면 그 회랑이 베키오 궁에서 우피치로 그리고 베키오 다리를 지나 피티 궁으로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이 베키오 궁, 그 옆으로 우피치다. 아치형태의 건물은 우피치에서 광장 쪽으로 이어지는 건물인데, 로지아 데이 란치라 불리는 곳이다>

 

 

<우피치 앞의 다비드상,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은 이곳에 수 세기 동안 서 있다가 19세기 후반 아카데미아로 옮겨졌다. 저것은 복제품이다.>

 

우피치에 들어서다 보면 건물에 에워싸인 ㄷ자 모양의 공간에 여러 개의 석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를 빛낸 예술가들의 석상이다. 그 석상 중 맨 앞에 있는 두 개가 바로 코지모 메디치와 로렌초 메디치다. 모두 15세기 말 피렌체의 참주로서 이곳을 르네상스의 수도로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예술 패트론이다. 문화 예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가 뒤를 받쳐주어야 한다는 상징적인 조각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르네상스가 왜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피렌체는 당시 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 중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정치적으로는 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과 다툴 수 있었고, 메디치 가의 경제력이 그것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중세 시절의 예술이 교권에 철저히 종속되었다면 피렌체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인물이 코지모와 로렌초 메디치였던 것이다.

 

<우피치에서 본 베키오 다리우피치에서 회랑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항상 이런 곳을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떻게 한 작품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보면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생각하고 작품이 말하는 스토리를 읽을 수 없을까? 내게 여유가 없음이 무척이나 애석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조언한다.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선배의 조언대로 이 미술관이 소장하는 소위 걸작(마스터피스)을 중심으로 볼 수밖에.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미술관 내를 거닐다보면 자연스레 우피치 최고의 걸작,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비너스의 탄생>이 있는 방에 도착할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 내 인물조각상 있는 복도>

 

우피치 3층의 한 방 중 두 벽면을 차지하는 이 두 작품은 걸작다운 대접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것을 예상하고 홀 중앙에는 의자까지 갖다 놓은 배려도 좋다. 나도 몇 시간의 발품을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편안히 앉았다. 내 미술적 소양으로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결코 명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무래도 비너스의 목이 어울리지 않는다. 콘트라포스트의 자세로 서 있는 비너스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마치 얼굴만 따로 그려 부친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은 미술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단번에 명작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부터 보아야 하는 데,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입안에 가득 문 봄의 기운을 꽃의 여신 클로리스에게 전해 주면서, 그녀를 껴안으려 한다. 그러자 그 여신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몸을 피하려 하나 제피로스의 손이 닿는 순간 입안에 꽃을 문다. 이어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신한다. 봄의 전령인 제피로스가 또 다른 봄의 전령인 클로리스를 겁탈해 꽃의 계절인 봄을 잉태한다는 줄거리다그림을 자세히 보다 보면 이런 스토리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림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 작품의 기법은 이 시대 누구의 작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 작품상에 나타난 6명의 여신 중 5명은 모두 속살이 훤히 비추이는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있다. 나신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덧칠을 한 것 같은 데 사실감 나는 기법이다. 여신 플로라가 꽃을 뿌린 것이 바닥에 가득한데 자세히 보니 진짜 꽃을 그린 것이다. 미술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꽃은 피렌체 근교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을 그린 것이라 한다

나는 이 방에서, 나의 여행 스승 최영도 변호사님께서 쓰신 책,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의 우피치 편을 넘기면서, 작품을 관람했다.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로움이었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6>

 

 <보티첼리, 봄 또는 프리마베라, 1482>

 

우피치의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는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다. 왼손으로 자신의 비밀스런 곳을 살짝 가린 매우 에로틱한 그림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3부작 세 도시 이야기 중 베네치아 편에 이 그림이 등장하는데, 거기에선 소설 속의 여주인공 올림피아가 티치아노에게 자신의 누드화를 그리게 하고 이를 자신의 방에 걸어 둔다. 올림피아는 베네치아의 고급창부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그려 신방 등에 걸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 그림은 인간의 정욕이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중세를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이런 파격적인 그림을 자신의 침실에 걸어둘 수 있었을까. 지금도 걸어두기가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닐 텐데. 여하튼 이 작품을 보노라면 관능미 물씬 풍기는 여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배가 좀 거슬린다. 보통 사람이 누우면 웬만하게 나온 배도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그림의 여인은 비스듬히 누워있는데도 아랫배가 상당히 나와 있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일 이 여인이 누워있지 않고 서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분명 아랫배가 불뚝 나온, 지금으로서는 복부비만이 상당히 심각한 여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티치아노가 그런 여자를 좋아했을까. 아마 그럴 것 같지는 않을 텐데... 작품 앞에서 살며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우피치에는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다수의 마스터피스가 있다. 카라바조의 메두사나 렘브란트의 자화상(소년시절 및 노년시절) 등이 바로 그것이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우피치를 나오면서 시뇨리아 광장에 면한 로지오 데이 란치라는 회랑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품을 보았다. 그 중에서 책에 소개되어 있는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잠볼로냐의 <약탈되는 사비니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피렌체 전체가 사실상 박물관이라 여기저기에서 입장료를 받지만, 이곳만은 무료로 관광객들에게 예술품을 보여준다. 이곳저곳에서 돈 받는 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어서 발길은 베키오 궁을 향한다. 어느새 다리는 피곤함 그 이상이다. 보는 것이 너무 많을 때는 느낌도 줄어든다. 뇌의 감상능력이 어느 시점을 지나가면 무감각해진다. 그럼에도 바사리 사단이 베키오궁 대회의장의 벽면에 그렸다고 하는 메디치가의 전투 장면을 보니 장엄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500년 가까이 지난 이런 거대한 작품이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의 눈앞에 나타나 감동을 준다는 사실이 내겐 기적이다

 

<베키오궁 내부의 대회의장, 양 벽면에 메디치가의 전투를 그린 바사리의 작품이 있다. 오른쪽 벽면은 현재 보수중이다.>

 

<베키오궁 내부 벽면에 바사리가 그린 메디치가의 전투 장면>

우피치에 버금가는 르네상스 미술관 팔라티나

피렌체를 떠나는 날, 피티 궁을 향했다. 오전을 여유 있게 보내기 위해 많은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저 피티 궁에 가서 팔라티나 미술관이나 보자 하는 맘으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팔라티나 미술관은 피티 궁에 있는 미술관으로 피렌체에서 우피치에 이은 최고의 미술관이다. 피티 궁은 원래 메디치가와 경쟁관계였던 피렌체의 은행가 루카 피티가 15세기 중엽 브루넬레스키에게 의뢰하여 보볼리 언덕에 짓고자 했던 궁전이었다.

 

그런데 피티가 소위 파찌의 음모라는 것을 통해 죽게 되자 이 궁전은 장기간 완공을 못보고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80여 년이 지난 16세기 중반, 앞에서 본대로,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인 코지모 메데치1세가 이것을 매입해 완공했다. 그 이후로 피티 궁은 메디치 가의 궁전이 되었다. 현재 피티 궁에는 여러 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 회화와 조각 컬렉션은 2층의 방 33개로 이루어진 팔라티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명작의 홍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작품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다른 미술관에. 여기 걸려 있는 작품이 한 점만 있어도, 그것을 방탄유리에 넣어 호들갑을 떨며 전시를 하겠지만, 여기에선 그런 작품들을 한 벽면에 수 십 점씩 걸어 놓았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음미하며 관람하려면 몇 날 며칠을 걸릴 지 모른다. 궁전 중앙 홀에 서서 방문이 열려 있는 건물의 좌우를 바라보면, 족히 200여 미터가 넘는 복도를 끼고, 전시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나는 몇 작품을 찍어 보기로 하고 대충대충 전시실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 다녔다. 마침 눈이 오는 추운 날 아침인지라 관람객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여름철이면 인산인해일텐데, 비수기에 온 덕분으로, 관람객이라는 장애물을 경험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르노 강 건너에 있는 피티 궁, 베키오 궁에서 우피치로, 그리고 베키오 다리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피티궁의 뒤는 보볼리 가든이라는 곳이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 정원과 함께 유럽 정원의 표준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여기에는 로마 메디치궁에서 가져 온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있다.>

팔라티나에는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 대가의 작품 수십 점이 있다. 하지만 내 눈에 우선 들어온 것은 그런 대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산티 디 티토가 그린 마키아벨리 초상화! 나는 이곳에서 르네상스가 낳은 희대의 정치학자를 보면서 그의 군주론을 회상했다. 짧은 머리에 갸름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 독사처럼 간교하고 매처럼 사나울듯한 모습이다. 피티궁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 초상화 만큼은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경비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사텨를 눌렀다. 

 

이어, 최영도 변호사님께서 극찬한 라파엘로의 <작은 의자 위의 성모> <베일을 쓴 여인>를 찾아 보고 그것을 천천히 음미해 보았다. 최변호사님은 그림 속 여인의 실제 모델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셨는데 그 여인들이 라파엘로의 애인 포르나리나라는 것이다. 라파엘로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비슷한 여인의 얼굴과 같다는 것인데, 그 여인은 로마의 빈민가 빵가게 딸이다. 라파엘로는 어떤 신분의 여인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좋아했다. 낭만적인 라파엘로! 여인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요절한 그! 나는 그림 앞에서 라파엘로를 추모했다.

 

<산티 디 티토가 그린 마키아벨리 초상화>

 

 

<경비원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하여 어렵게 마키아벨리 초상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라파엘로작은 의자 위의 성모>

 

발길 닿는 곳은 모두 박물관

3일간 피렌체에 있으면서 피렌체의 여러 곳을 가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데, 이곳을 어찌 그 짧은 시간에 다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포기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피렌체는 적어도 한두 번 더 오리라. 그 때를 위해 남겨주자고

 

첫 방문에서 꼭 가보았으면 하는 곳은 대충 섭렵했다. 성당은 두오모를 비롯해서 메디치가의 가족 성당 구실을 했던 산타로렌초, 피렌체의 대표적 명사인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의 무덤이 있는 산타크로체 등을 둘러보았다. 이들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 아니라 모두가 그 보다 전기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딕 양식의 성당보다는 규모나 높이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 된다하지만 그 고색창연함, 장엄함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카데미아에 전시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진품어렵게 찍은 사진이다>

 

미술관으로는 우피치와 팔라티나 이외에도 아카데미아에도 가 보았다. 이곳을 간 유일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을 보기 위함이었다. 다비드상은 1504년 원래 베키오 궁전 앞에 세워졌던 것을 1873년 이곳 아카데미아로 옮겨졌다. 그러니 지금 베키오 궁전 앞에 설치된 다비드상은 복제품인 것이다. 사실 아카데미아는 이 작품 외에는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1층 전시실 안쪽에 마련된 다비드상 주변을 떠나지 않고 서있다. 어떤 이는 아예 바닥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작품을 응시하는 이도 있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이곳은 촬영절대금지구역! 손이 떨렸다. 여기까지 와서 이 원본 사진 하나를 남기지 않을 순 없다. 경비원과 사각을 이룰 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순간, 경비원은 나를 향해 달려 왔다. 미안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경비원도 그 이상은 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다비드상 원본 사진 한 장을 건졌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다 본 피렌체 시내의 전경이다>

 

피렌체를 떠나는 날, 나는 피티궁을 떠나 피렌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을 향해 걸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이 역사도시를 내 품에, 내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30여 분 후 미켈란젤로 광장에 도착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피렌체 전체가 시야에 들어올 때, 내 입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 바로 이게 피렌체야. 멀리 베키오 다리가 선명하다. 마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이 오늘이라도 재현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다리를 건너 시선을 조금 이동하니 베키오 궁전이 보이고 그 뒤 쪽으로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가 자태를 들어낸다. 나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피렌체에 왔다. 지난 수백 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진정한 수도 피렌체에 와서, 도시의 아름다움과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수많은 예술품을 감상하며, 감동했다. 과연 이 도시야 말로,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전진한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임이 틀림없으리라.(끝)

 

후기: 이 여행이 있고나서 1년 수 개월 후 나는 또 한 번 피렌체를 들렀다. 당시 나는 스웨덴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싼 비행기표를 발견하고(왕복 6만원!) 딸랑 배낭 하나 매고 피사에 도착, 일주일간 토스카나 지방을 휘젓고 다녔다.(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다! 개봉박두!) 시에나로 가면서 피렌체에 잠시 들러 위 여행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보볼리 정원을 보았다. 본문 맨 위 사진을 비롯 몇 몇 사진은 그 때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