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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브로츠와프를 가다

박찬운 교수 2022. 8. 21. 08:39

나는 룬드시절(2012-2013) '스웨덴 일기'라는 것을 썼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밤 자판을 두드렸다. 내가 경험한 것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급적 자세히 정리했다. 이 글도 '스웨덴 일기' 중에 나오는 것이다. 2013년 5월 폴란드 브로츠와프를 다녀와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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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7일, 5일간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를 다녀 왔다. 말뫼 공항에서 출발하는 라이언 항공사의 티켓 값이 왕복 270 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었다.

5일간 브로츠와프에 머물면서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고 목욕(대중탕)도 두 번이나 했다. 건축사적으로 유명한 백주년 기념관은 세 번이나 다녀왔다.

브로츠와프는 폴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과거 실레지엔의 수도로 지금도 폴란드 실레지엔 주의 주도이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 강국이 그 지배를 원했던 곳이다. 폴랜드 왕국에서 시작하여 보헤미안 왕국으로 중세 이후에는 합스부르그 왕가가 이곳을 지배했고 18세기 이후에는 프러시아가 그리고 이를 이어 받아 독일이 그 뒤를 이어 이곳을 지배했다.

이곳은 이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폴란드 지배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곳은 독일 영토로서 폴란드와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종전 무렵 소련군이 이곳을 포위하였고 나치는 끝까지 이를 사수한다고 해서 수 만 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임을 당했다.

종전 후 연합국은 이곳을 독일 영토에서 떼어 내 폴란드의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 그 후 이곳의 독일인들은 대거 독일로 돌아갔고 폴란드인들이 대거 이주해 왔고 폐허화된 옛 도시를 복구해 갔다.

지금 이곳 중앙광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그 대부분의 건물은 대전 이후 복구된 것이다. 몇 개의 건물 예컨대 구시청사 건물 등이 그런대로 폐허 위에서도 살아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브로츠와프의 구도심은 폴란드인들의 노력으로 과거의 영화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 외곽으로 나가면 역시 반 세기 이상 사회주의 그늘 아래 이곳이 지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사는 건물은 모두가 흉물스런 아파트로 과거 사회주의 진영에서 보던 무조건적인 평등의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지금 브로츠와프는 새로운 재기를 위해 노력 중이다. 도시 곳곳에서 폴란드인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식당 어디를 들어가도 맛은 유럽의 평균적인 맛보다는 훨씬 낫다. 가격도 저렴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있다. 비록 유럽 내에서는 경제적으로 그리 부유하지 못해도 사람들의 삶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폴란드는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요, 쇼팽의 고향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서유럽과는 달리 90% 이상의 국민이 가톨릭 신자이다. 브로츠와프 어디를 가도 고색창연한 성당들이 보인다. 한 집 건너 한 개 씩 있을 정도로 성당이 많다. 과거 이곳이 폴란드의 주요 종교도시였음을 말해 준다. 특히 시내 오드라 강 내에 있는 오스트로 툼스키섬에는 이곳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카테드랄을 비롯한 몇 개의 성당이 몰려 있다. 과거 이곳은 절대 종교지역으로 일종의 소도와 같은 역할을 한 곳이다.

20세기 들어 독일인들은 브로츠와프에 위대한 건물 하나를 만들어 냈다. 라이프치히 승전 백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백주년 기념관, 그들 말로 할라 스툴레챠(Hala Stulecia)다. 1913년 이곳의 건축가 막스 베르크는 21세기 첨단 공학기술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판테온을 만든다. 강화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들어진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한 것이다.

몇 년 전 이곳에 아쿠아파크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남녀노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 두 번을 갔다. 사우나와 목욕탕을 이용해 보았다. 시설은 훌륭했다. 남녀가 나신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사우나와 수영을 즐기는 것에서 이곳의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나도 잠시나마 이들과 섞여 온갖 시름을 잊고 일광욕과 사우나 삼매경에 빠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휴식이었다.

 

<마켓 광장이라 불리는 중앙광장>

<중앙광장의 구시청, 왼쪽 건물이 신청사>

<구시청, 이 시청의 양식을 보면 어떤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렵다. 수 백년간 여러 양식이 뒤죽박죽 섞여져 있다.>

<광장 끄트머리에 있는 소금광장, 지금은 꽃 광장이다.>

<오스트로 툼스키 전경>

<사회주의 시절(60년대) 이곳의 대주교가 독일에 편지 하나를 쓴다. 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하고, 당신들은 우리를 용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당시 정권은 배신행위라고 규정하고 대주교를 탄압한다. 이것을 기념한 조형물이다.>

<툼스키 다리에 달려 있는 사랑을 맹서하는 자물쇠>

<카테드랄>

<멀리서 보이는 오스트로 툼스키 전경>

<할라 스툴레챠, 막스 베르크가 1913년 완공한 21세기 최첨단 판테온이다.>

<분수대 폰타나에서 보는 할라 스툴레챠>

<백주년 기념관이 만들어질 때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건물 주위에 레일을 설치하고 건물 중앙에 기중기 타워를 만들어 조립 공법으로 삽시간에 건물을 완공했다. 2년만이다.>

<분수 공원에서 만난 학생, 브로츠와프 대학에서 법학을, 브로츠와프 환경 및 과학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는 이곳에서 로마법 책을 읽고 있었다.>

<일본정원, 백주년 기념관 옆에 있다. 이 공원이 만들어진 배경은 1913년 박람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주년 기념관이 완공되는 해에 이곳에서 그것을 기념하는 박람회가 열렸는데 그 때 일본정원이 만들어졌다. 박람회가 끝난 다음에도 일부 나무나 인공 개울이 그대로 보존되었다가 최근 들어 그것을 기초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브로츠와프에는 이런 난장이 인형이 시내 곳곳에 숨어 있다. 한 예술가가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런 조형물이 시내에 160여개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여행 중 `10여개를 찾았다.>

 

<브로츠와프는 다른 어떤 유럽보다 음식이 맛이 있고 저렴하다. 나는 중앙광장에 있는 음식점 몇 곳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음식이 가장 입에 맞았다. 돼지 갈비로 만든 음식이 이렇게 고급스럽고 맛이 있다니!>

<브로츠와프 곳곳에는 이런 풀밭이 많았다. 봄에 가장 많이 피는 들꽃은 민들레였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아쿠아파크다. 나는 이곳에 두 번씩이나 갔다. 아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사회주의 잔영을 볼 수 있는 볼품없는 아파트>

<중앙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재래 시장이 있다.>

<중앙광장의 악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