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세상 이곳저곳

또 하나의 세상의 중심, 마라케시

박찬운 교수 2022. 11. 3. 05:53

마라케시를 가게 된 연유
나는 법률가로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서 살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세계를 유랑한다. 시간이 나면, 기회가 있으면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빈다. 그곳에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나 자신을 확인한다.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금새 그들도 나의 형제요 자매다. 그 속에서 '보편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한다.

그런 내가 지난 3년간 어딜 나가보질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공무든 휴가든 대한민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저 책상 앞에서 일만 하는 수밖에.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분명 3년 내내 사건 속에 파묻혀 산 코로나 인권위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년 간 인권위 역사에서 나처럼 일해 온 인권위원은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런 나를 일벌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여행가의 유전자를 가진 나로선 지난 3년의 개인사는 즐겁지 않은 인생기록이다.

3년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가 왔다. 모로코 마라케시 출장. 2022년 하반기가 되어 인류가 팬데믹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명동에 드디어 외국인들이 활보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과감하게 내외국인의 입출국 제한을 풀었고, 이것은 공무원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국외 출장이 활발하게 재개된 것이다.
 

2022년 10월 27일과 28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세계인권기구연합 집행이사회

 
이런 상황에서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세계인권기구연합(GANHRI) 집행이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GANHRI에서 선도적 지위를 점하고 있고, 특히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인권기구 네트워크인 APF 의장기구이기 때문에 GANHRI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집행이사회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 회의는 원래 인권위원장이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고 국제인권 분야의 전문가인 내가 참석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GANHRI 집행이사회에서 발언하는 필자

 

나로선 공무출장이지만 회의 장소가 내 여행 버켓리스트 중 하나인 마라케시인지라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내심 불만도 많았다. 월요일 떠나 일요일 도착하는 일주일 출장인데, 일정을 보니 월요일 자정 무렵 인천공항을 떠나 이스탄불을 경유해 마라케시로 들어가는데 무려 24시간이 걸리고, 올 때는 파리를 경유해 서울로 오는데 그것도 24시간 가깝게 걸리는 여정이다.

회의는 준비일정을 포함 3일, 호텔에서 꼼짝 않고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주최 측의 만찬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더군다나 회의가 끝난 다음 날 오전 짐을 싸 귀국길에 나서는 공무출장이니 누가 이런 살인적 일정의 출장을 반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북아프리카의 진주 모로코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는 분출하고 있었다.

2022년 10월 말 마라케시에서 열린 GANHRI 집행이사회의 내용은 여기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공식적인 출장보고서가 내가 그 회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해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저 이 말만 하자. 한국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대표해 부끄럽지 않게 발언했고, 존재감을 보여주었다고. 나는 공무출장의 모범을 같이 간 실무팀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에게 귀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글에서 공무출장 중 잠시의 틈을 이용해 본 마라케시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지만 크지 않은 도시 마라케시에서 4-5일을 머물었으니 보고 들은 것이 많다. 비록 본격적인 여행기는 아니지만 그것만이라도 정리해 둔다고 해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회의 기간 중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인권기구 대표로서 세계인권기구연합 의장인 카타르 인권위원장과 면담을 했다.
공식 회의가 끝나고 모로코 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여했다. 벽면 그림 아래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이 의장인 카타르 인권위원장, 부의장인 모로코 인권위원장. 재미 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이슬람 국가의 여성인데, 한 사람은 스카프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호기심이 났다. 그 이야기는 아래 본문에서 확인하자.


세상의 중심 마라케시
공무출장으로 마라케시를 가는 것이었지만 그곳을 알고 싶었다. 내 여행 역사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몇 년 전 런던에서 반년을 살 때 모로코를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런던에서 모로코를 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라이언 에어 등 저가 항공기를 타면 단돈 10만원에 모로코의 주요도시를 갈 수 있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다가 끝내 모로코 땅을 밟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가보고 싶은 곳은 스페인 남단의 그라나다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페리로 건너 탕헤르로 들어가 기차를 타고 모로코의 대표도시 카사블랑카, 페스, 마라케시를 가보는 것. 단 돈 몇 십만원으로 충분히 가능한 여행이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다니....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서단에 위치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3배, 인구는 4천만 명. 지도를 보면 한 눈에 유럽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과거 이슬람이 북아프리카를 지배할 때 이곳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레콩키스타 이전 오랜 기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와 한 왕조가 다스렸다.


모로코엔 몇 개 주요 도시가 있다. 가장 알려진 도시는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상업 중심지(commercial capital), 라바트는 왕이 거주하는 정치 중심지(political capital), 마라케시는 모로코 여행의 성지로 관광 중심지(tourisic capital, 물론 마라케시 이외에도 관광 중심지는 페스가 있음), 모로코를 여행한다면 이 정도의 도시는 들러야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마라케시에 대한 글에 불과한 이 글이 결코 모로코 여행기가 될 수 없다. 다만 짧은 마라케시 소개라 할지라도 이곳이 얼마나 흥미로운 곳인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착륙 전 찍은 마라케시의 모습. 도시 전체가 붉다. 한마디로 붉은 도시다. 높은 건물도 없다. 알고 보니 마라케시의 모든 건물은 고도제한이 있다고 한다. 올드 타운 내의 모스크 쿠트비아의 미나렛 높이 77미터 이내에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여행의 진수다. 그것은 모로코 역사를 알면 금방 이해가 간다. 모로코는 북아프리가의 맨 서쪽에 위치한다. 바로 위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기만 하면 스페인으로 연결되고 동쪽으론 알제리, 남으로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바로 사하라 사막으로 연결된다.

여기는 고대부터 사막의 유목민 베르베르족의 근거지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해안가에는 고대부터 페니키아인이나 로마인이 들어와 도시를 일으켰지만 내륙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그에 비하면 문명의 손길이 훨씬 뒤에나 닿았을 것이다. 마라케시가 문명사에서 우뚝 솟는 것은 역시 이슬람이 북아프리카를 석권하고 지브롤타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한 이후다.

베르베르족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물건들. 마졸레 정원 내에 있는 베르베르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라케시를 수도로 정한 알모라비드 왕조의 영역. 사진상의 분홍색 부분이 그 영역이다.


마라케시는 11세기부터 100년 간 알모라비드 왕조의 수도가 되어 현재의 도시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 왕조는 당시 모로코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영토로 하는 왕조다. 알모라비드 왕조의 유산은 지금도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모로코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광장 제마 알프나, 바히아 궁전, 쿠토비아 모스크, 벤 유세프 이슬람 학교 등이 바로 이 왕조 시절 만들어져 오늘에 이른다.

마라케시는 그 뒤 메리니드 왕조가 성립되어 수도를 페스로 옮기는 바람에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16세기 이후 사디안 왕조의 수도가 됨으로써 번성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른다.
 

알모라비드 왕조 시절 쌓은 성곽. 지금도 이 성곽은 잘 보존되어 구도시 대부분이 이런 성곽에 의해 둘러져 있다.


모로코는 현대에 들어와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다. 제국주의 시절 두 나라는 모로코를 분할 경영하는 데 마라케시는 프랑스인들의 주무대가 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는 그리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인들은 마라케시의 성곽을 그대로 보존한 채 성 밖을 개발함으로써 오늘의 고대도시 마라케시를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프랑스 예술가 마졸레가 만든 마졸레 정원
마졸레 정원에서 필자

 
프랑스의 예술가나 부호들이 마라케시에 별장과 정원을 만들었고 그것이 그 뒤 일반에 공개됨으로써 마라케시의 명물이 된다. 대표적인 곳이 마라케시 북쪽 성곽 밖에 위치한 마졸레 정원.

이곳은 프랑스 예술가 마졸레가 조성한 곳으로 수백종의 식물을 심어 놓은 지상 낙원과 같은 곳이다. 프랑스의 디자이너 입센 로랑은 이 정원을 1980년대 매입했고 그의 사후에는 재단에 기증해 현재 마라케시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이곳을 들어가 황량한 붉은 도시 한 가운데 만들어진 파라다이스를 경험한다.
 

마라케시의 상징인 쿠토비아 모스크
쿠토비아 모스크 앞이 제마 알프나 광장이다. 밤에는 수많은 인파가 이곳 광장으로 몰려든다.
쿠토비아 모스크 앞에서 필자


세상의 중심 제마 알프나, 여행의 시작이자 종점
나의 마라케시 체류는 4일 간. 그중에서 대부분은 투숙호텔에서 있은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것이라 마라케시를 둘러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회의 시작 전과 회의 종료 후 짬을 내 몇 번 제마 알프나에 나가 주변을 돌아보았고 본회의 전날 주최 측의 배려로 마라케시 전역을 버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마라케시 관광의 출발점이나 종점은 모두 제마 알프나 광장이기에 마라케시를 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 광장에 가야만 한다. 거기서 발 가는 대로 걷다보면 마라케시가 보인다.

제마 알프나는 밤이 깊을 수록 사람들이 많다. 매일 이렇게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야심한 시간이지만 광장 이곳저곳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묘기를 보기 위해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어울어져 인산인해를 이룬다.
제마 알프나의 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 이곳에서 매일 열린다.
제마 알프나에는 저런 테라스를 가진 멋진 식당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곳 전통음식을 먹으면서 불야성의 광장을 보는 게 이곳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


왜 이곳을 모로코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지는 그곳에서 단 몇 시간만 서 있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만큼 크고 사람들로 붐빈다. 인구 백만의 도시인 마라케시 사람들은 매일 밤 이 광장에 다 나오는 듯 하다.

이 광장에 나와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춤을 춘다. 광장 여기저기에선 코브라 뱀이 관광객의 목을 감고, 원숭이들이 곡예를 한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이곳저곳에서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끝없이 펼쳐지는 야시장에선 각종 음식과 과일이 팔린다. 이곳의 명물인 과일주스 가게는 광장의 여기저기에서 손님을 맞는다.
 

광장을 걷다 보면 이런 일을 당한다. 갑자기 내 목에 뱀 한마리가 감긴다.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모르지만 매우 흥겹게 말을 건다. 그리고 손을 벌린다. 사진을 찍었으니 그 값을 내야 한다.
제마 알프나의 명물 과일주스 가게. 이곳에 왔다면 과일 주스 하나를 사서 마셔 주는 것이 예의다.


광장에서 전통시장인 수크가 연결되는 데, 한 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크게 놀랄 것은 아니다. 걷다보면 어느새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하니 시간이 걸릴 뿐 광장으로 다시 나와 제 갈길을 갈 수 있다.

광장 주변엔 광장을 바라보며 차와 음식을 나눌 수 있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3번이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서울에 비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꽤 고급진 모로코 음식인 타진, 탄지야 등을 먹을 수 있다.
 

모로코에 가서 꼭 사와야 할 것은 가죽 제품, 페스와 마라케시에서 양가죽 등을 가공하여 가죽제품을 만드는데 매우 품질이 좋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격도 놀랍도록 싸다는 사실!
마라케시 전통시장인 수크
수크의 골목, 걷다보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곧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길은 광장으로 통한다.
제마 알프나 광장 주변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모로코 음식


자유로운 모로코
이슬람 국가라면 보통 엄격한 전통사회라고 알기 쉽다. 특히 여자들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사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모로코 출장을 통해 이것도 이슬람 국가에 따라서는 상당한 편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슬람 국가라고 해서 모두 이란이나 사우디처럼 엄격한 국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회의에 참여한 이슬람 국가 친구들은 대부분 분방한 매너를 보여주었다. 아마 그중에서 제일 자유스러운 곳이 모로코가 아니었나 싶다.

 

회의 기간 중 참석자들이 주최 측에 제공하는 만찬에 참여하였다. 만찬 중 무희가 나와 밸리 댄스를 격정적으로 추었다. 무슬림 국가라 사회 분위기가 엄격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편견에 불과하였다.

 

공식 회의 첫째 날 모로코 인권위원회 주최 만찬이 마라케시 근교 식당에서 개최되었다. 만찬 시작이 밤 9시! 나는 보통 10시면 취침을 하는 사람인데, 이 시간에 만찬이 열리다니! 나오는 음식은 하나 같이 60평생 단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북아프리카의 진귀한 음식들이다. 맛도 일품이다. 만찬은 자정을 향해 달려간다.
 

이 음식은 이번 회의 만찬에서 나온 요리이다. 양고기 요리인데 매우 품격 있는 요리였다.


내가 모로코 인권위원장에게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요즘 다이어트를 해서 몸 무게를 몇 킬로 뺏는데 모로코에 와서 완전 허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만찬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답이 왔다. "제가 며칠 전 어떤 파티에 갔어요. 밤 9시부터 춤을 추면서 즐겁게 놀았지요. 만찬이 시작된 것은 새벽 2시, 끝난 것은 아침 7시였어요."

이 말을 들으니 내 인생이 초라해 보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인생, 언제 한번 허리띠를 풀고 먹고 마시며 춤을 추며 놀아보았던가?

또 하나 재미 있는 대화는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스카프 이야기. 만찬 테이블에 GANHRI의장인 카타르 인권위원장과 부의장인 모로코 인권위원장이 같이 앉았는데, 카타르 위원장은 스카프를 하고, 모로코 위원장은 하지 않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모로코 위원장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모로코에서 스카프를 쓰는 것은 여성들의 선택입니다. 요즘 젊은이 중에는 안하는 사람 많아요. 우리 집 아이도 안합니다. 다만 나이 든 사람 중에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지요."

그렇게 보니 마라케시 광장에서 본 수많은 모로코인 중에서 스카프를 한 여성이 많지 않았다. (2022.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