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5)-성스러운 계곡을 따라 마추픽추로-

박찬운 교수 2024. 1. 19. 04:38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5)

-성스러운 계곡을 따라 마추픽추로-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얀타이탐보

 

여행 7일 째 일행은 마추픽추로 향했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전용버스로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 오얀타이탐보에서 기차로 마추픽추 바로 아래 동네인 아구아스칼리엔테스에 도착해 다음 날 아침 마추픽추에 오르기로 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되면 오얀타이탐보에서 과거 잉카인이 다니던 길, 잉카트레일(카미오 잉카)을 3박 4일 걸으며 마추픽추에 오르는 방법도 있으나 우리처럼 가는 것이 대부분 여행자들이 택하는 기본코스다.
 

삭사이와망의 정상에 과거 태양신을 모신 신전 자리가 있다. 이곳은 꽤 넓다. 여기저기에서 알파카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우리는 성스러운 계곡에 들어가기에 앞서 쿠스코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삭사이와망부터 올랐다. 이곳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잉카제국 시절 태양신(Inti)를 모신 신전이었으나 스페인 정복 이후엔 요새로 사용되었다. 쿠스코 시가 전체를 관망하기에 이곳보다 좋은 위치가 없으며 특히 중요한 것은 아직도 잉카제국 시절 만들어진 많은 석축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쿠스코 시내에서 본 12각돌과 유사한 석축을 여기서 추가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여행자들도 별로 없고 알파카가 한가롭게 풀까지 뜯고 있어,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삭사이와망에 남아 있는 잉카제국의 석축

 
정상에 올라가 쿠스코 시내를 내려다볼 때 옆에 한 젊은 여성이 있어 인사를 했다. 뉴욕에서 온 이 여성은 남미를 혼자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 아침 쿠스코의 전경을 혼자 누리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번잡한 뉴욕 생활을 잊고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말에 나도 그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이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의 시간이라고 했는데 잠시 정말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바쁘고 사진을 찍어 남기려는 손과 발은 더 바쁘다. 어딜 가도 분주하고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내가 조금은 안스러웠다. 여행이 끝나고서도 이렇게 정리를 한다고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이것도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ㅠㅠ.
 

믈의 신전 탐보마차이

 
대지의 신을 섬기는 신전 켄코와 물의 신을 섬기는 신전 탐보마차이를 둘러보고 버스는 우르밤바 시내가 보이는 고갯길을 넘어 성스러운 계곡의 첫 번째 유적 피삭에 도착했다.

성스러운 계곡은 쿠스코 북쪽의 우르밤바강을 따라 동쪽의 피삭에서 서쪽의 오얀타이탐보를 거쳐 마추픽추에 이른 약 100여 킬로미터 계곡을 말한다. 쿠스코 왕국이 잉카제국으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제국으로 편입된 곳으로 쿠스코의 뒷마당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현재 피삭은 산 아래에 있지만 유적은 이렇게 산을 올라가며 있다. 스페인 식민 통치자들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피삭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아래로 이주시켜 새로운 마을을 만든 것이다.

 
현재 피삭은 계단식 농경지와 그 꼭대기에 과거 주거시설과 신전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유적이 남아 있는 정도지만 원래의 모습은 마추픽추와 거의 유사했을 것으로 본다. 이곳은 잉카제국의 영웅 파차쿠티가 만든 개인 영지로서 왕과 귀족의 별장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마추픽추와 마찬가지로 왕의 시종들이 사는 주거단지와 신들을 위한 신전이 있었고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계단식 농경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산상도시라고 해도 되는데 이런 도시가 스페인 정복 이후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내 쫓겨 폐허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피삭은 식민 통치 시절 새롭게 건설된 도시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시간이 정오 무렵이었는데 안데스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고 있었다. 나는 몇 명 일행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유적 정상에 올라 식민 통치자들이 세운 신도시 피삭을 내려다 보았다. 500년 전 이곳에서 일어났던 문명파괴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자못 숙연해졌다.
 

살리네라스 데 마라스(마라살). 작은 다랭이 논과 비슷한 염전 4 천 여 개가 바둑판처럼 수를 놓고 있다 .

 
다음 행선지는 우르밤바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살리네라스 데 마라스(Salineral de Maras)를 방문했다. 잉카제국 시절부터 소금을 생산하는 산중 염전이다. 계곡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염전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작은 다랭이 논과 비슷한 염전 4천 여 개가 바둑판처럼 수를 놓고 있다. 산 정상 부근 지하에서 용출하는 소금물이 흘러 내려 염전 속으로 들어가고 그것이 증발하면 소금이 되는 것이다. 630여 가구가 일종의 협동조합식으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연간 3천 톤 정도의 소금을 생산한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곳에서 소금을 사오지 못한 것이다. 염전 입구에 몇 개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곳에서 나온 소금을 팔고 있었다. 아주 질도 좋다고 하는데 조금 사와서 매일 아침 삶은 달걀을 하나씩 먹을 때 찍어먹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는 가급적 신속하게 결정해 사야한다!
 

오얀타이탐보 잉카제국 유적. 유적 정상에 있는 수백 톤의 직육면체 화강암은 어떻게 이곳에 옮겨왔을까? 잉카인들이 흘린 땀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이날 사실상 마지막 행선지는 오얀타이탐보. 시간이 더 있다면 몇 군데 더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잉카제국 시절 일종의 농업시업장이었던 모라이를 못 본 게 아쉬웠다. 성스러운 계곡이나 앞으로 보게 될 마추픽추의 계단식 경작지에서 재배되던 옥수수나 감자 그리고 퀴노아 등이 모라이에서 우선 실험재배되었다는 것이니, 잉카인들의 높은 영농기술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모라이다. 그룹 여행의 한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스러운 계곡 투어는사실상 오얀타이탐보에서 끝나고 여행객들은 이곳 역에서 열차를 이용해 마추픽추로 들어간다. 그러나 열차를 타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 있다. 잉카제국 시절 파차쿠티가 세운 또 다른 산상도시가 이곳에 있다. 그러고 보면 파차쿠티는 우르밤바강을 따라가며 제위기간 여러 개의 산상도시를 만들었고 급기야 비장의 도시 마추픽추까지 건설했던 모양이다.

오얀타이탐보는 피사로에 의해 사실상 잉카제국이 멸망되자 잉카의 후예들이 저항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반란군의 지도자였던 망코 잉카 유팡키가 이곳을 거점으로 싸웠고 한 때 피사로 군대를 물리쳤지만 결국 밀려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간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도 피삭과 마찬가지로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계단식 농경지를 만들었고 정상에는 신전을 두고 있다.

놀라운 것은 정상에 남아 있는 거대한 화강암 신전이다. 일견해도 하나에 수백톤이 될 것 같은 직육면체의 화강암 6개를 세워 놓았는데, 이런 무거운 돌을 이곳에서 수 킬로미터가 넘는 채석장에서 어떻게 끌고 왔을까. 그 방법이야 추정할 수  잉카인들이 흘린 땀을 생각하니 유적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오얀타이탐보 유적지에서 앞을 보면 산 중턱에 길쭉한 암석이 보인다. 그것이 비라코차의 모습이라는 것인데... 사진을 확대해 보니 사람 모습인 것도 같다.

 
오얀타이탐보 유적 정상에 올라 계곡 쪽을 바라다 보면 마을을 사이로 두 개의 산이 보인다. 그 왼쪽 산을 유심히 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 형상인듯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것에 관한 전설이 들을만 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잉카문명의 창조신인 비라코차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피사로가 잉카제국 멸망시킬 때 잉카인들은 그를 신으로 보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신이 바로 비라코차다. 이런 이야기를 만든 게 잉카인인지 아니면 스페인 후예들이 자신들의 정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자작 신화인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그냥 전설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씁쓸하다.

마침 석양이 그 바위산을 비취기에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내 눈엔 특별한 게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엔 그저 돌출된 암석일뿐 비라코차의 현신은 보이지 않는다. 신이 있다고 마음 속에 믿음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것인지, 이방인으로선 알 수가 없다.
 

오얀타이탐보에서 열차를 타고 2시간을 가면 이구아스칼리엔테스에 도착한다. 이구아스칼리엔테스라는 말은 온천이라는 말이니 이곳 어딘가에는 온천이 콸콸 나올지 모른다. 마추픽추는 바로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 안에서 콜롬비아에서 온 후안과 친구가 되었다.

 
마침내 오얀타이탐보에서 열자를 탔다.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이구아스칼리엔테스를 가기 위함이다. 열차는 다음 날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여행자로 만석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알 수 없는 말로 실내는 왁자지껄하다.

마침 옆 자리에 젊은 청년이 타길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온 20대의 청년이다. 내가 콜롬비아 태생의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페르난도 보테로를 안다고 하니 그의 눈길이 달라졌다. 더욱 내가 대학 선생이라니 흥미가 있는지 연신 질문을 한다. 자기는 지금 보고타에서 일을 하지만 미국 유학을 가는게 꿈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해달란다. 그 친구와 두 시간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으로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격려했다. 열차가 종착지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증표로 내리기 직전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였다. 이제 나도 보고타에 젊은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의 이름 후안 디에고 알바, 그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5 끝)
 
 
부탁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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