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3)-나스카 라인의 미스테리-

박찬운 교수 2024. 1. 16. 05:10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3)

-나스카 라인의 미스테리-

 

경비행기에서 나스카 라인 콘돌을 직접 찍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매우 귀한 사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할 시간이 왔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리마를 떠나 남쪽으로 달렸다. 행선지는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파라카스 다른 하나는 나스카. 잘 알려진 나스카 라인(Nasca Lines)을 보기 위한 여정이다.  덤으로 페루 연안의 생태환경도 보게 된다.

페루에 사는 인디오는 기원전부터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살면서 문명을 형성했다. 태평양 연안(코스타), 안데스의 고원 지대(시에라), 아마존 지역(셀바)가 그것인데, 파라카스와 나스카는 코스타 지역을 대표하는 문명으로 그 대표적 유적이 나스카 라인이다.
 

리마를 벗어나 팬아메리칸 하이웨이에 들어서 남쪽으로 달리면 이런 풍경이 계속된다. 저 사구 끝에 태평양이 보인다.

 
리마를 떠나자 곧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여기가 바로 세계 최장 고속도로로 알려진 팬아메리칸 하이웨이.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고속도로로 장장 3만 킬로미터에 달한다. 두 대륙의 서부 해안을 타고 남쪽은 파타고니아의 끝까지, 북쪽으로는 알래스카까지 이어진다. 파라카스는 리마에서 250여 킬로미터, 나스카는 45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우리는 두 곳에서 각각 1박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 가지가 선명하게 기억되는데, 리마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 가는 길이 모두 사막이었다는 사실. 지도를 펴 놓고 살펴보니 페루의 서부 해안 지대는 모두 사막이고, 이것은 남쪽 칠레와의 국경 지대의 아타카마 사막으로 이어지다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까지 지속된다. 길이 3200킬로미터, 폭 100킬로미터의 광대한 사막으로 그 규모가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다.

어떻게 해안지대에 이런 거대한 사막이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기상학자들은 이것을 남극 쪽에서 올라오는 찬 해류, 곧 훔볼트 해류와 안데스 산맥이 만들어 낸 기후현상으로 설명한다. 냉기 가득한 해류는 위도상 열대에 가까운 이 지역에 비구름 형성을 막고, 안데스 산맥은 동사면의 구름을 막아 이 일대를 세계 최대의 건조지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달리다 보면 왜 선인장이 물 없이도 사막에서 버티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의 비밀은 해안가에서 형성하는 안개와 밤낮의 기온차이다. 안개는 밤낮의 기온 차로 새벽녘엔 이슬로 맺히는데, 선인장은 그것을 보관해 몸 속 수분을 확보한다. 그러니 이런 사막지대를 헤매다가 물이 떨어져 죽어갈 때 선인장을 보면 생명을 건진다. 선인장을 둘로 쪼개면 거기에 물이 있으니 말이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오아시스 연못 주변으로 마을이 들어서 있다.
중국 둔황의 명사산 아래의 월아천, 와카치나 오아시스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영 다르다.
저런 차를 타고 와카치나 오아시스 주변의 사막을 누볐다.

 
파라카스로 가는 길에  와카치나 오아시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엔 잠시 이 오아시스 근처에서 버기카라는 차량을 타고 고운 모래의 사막을 질주하며 잠시 동심의 세계에 빠져보기도 했다.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내가 오래 전 다녀온 둔황의 명사산 월아천과 비슷했다. 사막 한 가운데 큰 연못이 있고 그 주변엔 수초와 야자수가 무성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에 저런 곳이 있다니!

다만 월아천에 비하면 규모는 크지만 사막의 절대미를 느낄 수 있는 고적한 맛은 없다. 게다가 물은 월아천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탁했다. 주변에 사람이 살고 가게가 줄지어 있으니 거기서 나오는 오폐수가 다 거기로 들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라카스 반도 끝 자그마한 언덕에 이런 문양이 보인다. 촛대문양(칸델라브로)으로 나스카 라인의 일종이다.

 
파라카스에선 아침에 배를 탔다. 파라카스 해상공원을 둘러 보기 위함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파라카스 반도 끝에 위치한 곳에서 거대한 지상화 하나를 보았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산에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촛대(칸델라브로)다. 폭 70미터, 길이 183미터의 지상화가 왜 여기에 그려져 있을까? 연대를 측정하니 기원전 2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저것이 바로 나스카 라인의 일부로 다음 날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 나스카 라인의 전주곡이다.

파라카스 해상공원의 백미는 바예스타섬으로 그곳은 페루 서부해안의 해양 생태계의 보고이다. 여기서 훔볼트 펭퀸과 바닷새 그리고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주목할 게 구아노(guano)인바, 이것은 바닷새의 분비물이 퇴적된 것으로 질소와 인이 풍부히 함유되어 있어 지난 세기 최상의 비료로 사용되었다.
 

파라카스 해상공원, 바예스타섬의 모습. 이곳은 바다새와 바다사자의 천국이다.훔볼트 펭귄도 볼 수 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훔볼트와 구와노에 대해 좀 더 말해야겠다. 남아메리카의 지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이가 독일의 지리학자 알렉산다 폰 훔볼트(1769-1859)이다. 그는 남미대륙을 탐험하면서 자연지리와 생태 등을 관찰한 후 근대 지리학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대작 <코스모스>를 썼다.

그가 남아메리카를 탐구하면서 조사한 페루 연안을 흐르는 해류는 결국 그의 이름을 따 훔볼트 해류로 불리게 되었다. 훔볼트 해류로 인해 파라카스 해상공원 내에 한대성 동물인 펭귄과 바다사자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구와노를 유럽에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현지인들이 그것을 사용해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그 효용성을 알아챘다고 한다. 구와노는 후일 비료의 원료로 각광 받아 페루의 최대 수출품이 되었다. 바예스타섬을 돌다보면 아직도 구와노를 캐는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바예스타섬에는 아직도 구와노를 채굴하는 시설(사진 오른쪽 바위 섬에 채굴 시설이 보임)이 있다.

 
이제 나스카 라인을 본격적으로 볼 차례이다. 파라카스에서 본 칸델라브로는 나스카 문명의 한 부분으로 맛보기에 불과했다. 우리가 지리책이나 세계사 시간에 본 지상화는 파라카스에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나스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냥 차로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지상 300미터 위에서 봐야 하나의 지상화를 볼 수 있다.

그런 고로 이곳에 간 여행자는 다소 돈이 들더라도 경비행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공중에 올라가서야 거대한 사막을 캔버스로 사용한 그림들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나 같은 여행자는 조종사 옆에서 나스카 라인이 나타날 때마다 위치를 지적해 주는 승무원의 말이 들릴 때마다 그곳으로 눈을 돌려 공중 촬영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경비행기에 탄 승객들에게 나스카 라인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곡예비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은 왼쪽 창가 손님을 위해, 다음 한번은 오른쪽 창가 손님을 위해 비행기의 동체를 기울인다. 멀미에 약한 사람은 금새 얼굴이 창백해 지고 사진 촬영은 고사하고 한시라도 빨리 착륙하길 바란다.

나는 천생 여행가인지 멀미가 없어 귀한 사진 몇 장을 건졌다. 승무원이 말하는 순간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약간 편집하니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자료 사진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기에 올린 사진들이 그것들이다!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경비행기에서 찍은 거미 문양의 나스카 라인

 
나스카 라인을 보면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들은 저 지상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만들었을까? 공중에서 보지 않으면 무슨 문양인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새 모양과 원숭이, 사람 모양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풀렸다.

학자들은 나스카 라인이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이곳 지상의 돌이나 흙은 산화철 성분을 갖고 있어 검게 보인다. 이런 흙과 돌을 거둬 내면 황토색의 흙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이용해 선을 그려 각종의 지상화를 그려낸 것이다. 막대기와 실만 가지고도 손안의 도안을 수백 배 확대하는 방식으로 문양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나스카인들은 왜 저런 문양을 사막 한 가운데 만들었을까? 저 용도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 의문은 계속되었지만 어떤 자료도 시원하게 답을 주진 못했다.
 

위의 사진들이 내가 경비행기에서 직접 찍은 나스카 라인이다. 나무, 벌새, 거미, 콘돌, 우주인 등의 지상화가 너른 벌판 혹은 산등성이에 새겨져 있다.

 
나스카 라인을 확인하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마리아 라이헤 기념관. 마리아 라이헤(1903-1998)는 독일인으로서 가정교사로 페루에 왔다가 60여 년간 나스카 라인을 연구하고 보존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오늘 날 나스카 라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보존되게 된 데에는 그녀의 노고가 컸다.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나스카 라인 대부분은 수몰되거나 고속도로 건설로 망가지고 말았을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사막 한 가운데의 집을 기념관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나는 거길 찾아가기 위해 이모조모 궁리를 해보았으나 일정상 도저히 그리 할 수 없었다. 자유여행이 아닌 그룹 여행의 한계였다.
 

나스카 라인의 연구와 보존에 일생을 바친 독일인 마리아 라이헤

 
대신 막간 시간을 이용해 나스카 시내에 있는 안토니니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은 이태리 탐사단이 1982년부터 최근까지 이 지역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출토해낸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나스카 라인을 만든 나스카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귀한 박물관이다. 시내 맨 끝에 초라한 건물로 하루에 관람객이 몇 명이 안 되는지 정문 마저 닫혀 있었다. 우리 일행이 정문 근처에 다가가자 직원이 달려와 문을 열어 주어 들어가 보니 외견과 달리 꽤 많은 출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기원 전후의 그들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토기류가 상당히 많았다. 아시아나 유럽 대륙과 전혀 교류가 없었던 안데스의 나스카인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은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연구하는 데에도 유용한 자료가 될거라 생각했다.
 

시내에 있는 안토니니 박물관은 외관은 초라하나 전시물은 충실하다. 나스카에 2천여년 전 분명한 문명이 있을 알려주는 유물들이다.

나스카에서 리마로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했다. 고속도로가 우리처럼 다차선이 아니라 버스가 속도를 내질 못했다. 나스카까지 이틀에 걸쳐 갔기 때문에 그렇게 멀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리마로 돌아오는 날엔 서울-부산 거리에 불과한 거리가 두 배는 더 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편도 1차선에 불과한 팬아메리칸 하이웨이의 한계였다.

다만 우리의 이런 불편함이 나스카 라인을 살렸다는 데에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만일 이 고속도로가 우리처럼 편도 3차선의 고속도로였다면 나스카 라인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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