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2)-피사로가 만든 리마-

박찬운 교수 2024. 1. 15. 08:39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2)

-피사로가 만든 리마-

 
 
남미여행 첫 여정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시작되었다. 24시간 비행 끝에 밤늦게 도착해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깼으니 몸은 기진맥진. 만사가 귀찮으나 아까운 시간을 호텔에서 마냥 보낼 순 없다. 작은 배낭에 물 한 병과 바람막이 옷만 넣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하루 자유일정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우버 택시를 불러 구도심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모름지기 남미 여행에서 주요 도시를 가면 무조건 아르마스 광장(아르마스라는 말은 무기라는 뜻이다. 식민지 시대 군대의 무기(무기고)는 통치자가 있는 시내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아르마스 광장은 통치자가 있는 광장을 뜻한다. 곧 도시의 중심이라는 뜻이다.)이라는 역사 지구에 가야 한다. 이곳에 가면 수 세기 전 스페인 식민 통치자들이 어떻게 원주민들을 통치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건축물들이 있다. 리마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 전형을 가장 리얼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리마다.
 

리마 역사지구의 아르마스 광장, 저 앞의 성당이 리마 대성당. 피사로가 건축을 명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저곳에 피사로의 무덤이 있다.

 
리마의 오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부분은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역사지구가 있는 구도심, 또 한 부분은 현대 리마를 보여주는 해안가 미라플로레스. 서울로 보면 강북과 강남의 구별이라고나 할까.

미라플로레스는 비교적 현대 건축물이 많고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 치안도 좋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묵는 호텔도 이곳에 많다. 우리 일행도 이곳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구도심 역사지구까지는 차가 안 막히면 20여 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근거리지만 리마의 교통 체증도 장난이 아니다. 지척에 목적지가 있었지만 택시는 한 시간이나 헤맨 다음 역사지구 근처에서 나를 내려 주었다. 메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800만 명이 사는 남미 거대 도시가 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리마는 태평양 해변가에 있다. 해안가는 이렇게 절벽으로 되어 있고, 해안가 도로가 남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 상단의 현대식 건물은 리마의 강남에 속하는 미라플로레스의 중심지이다.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니 대성당(카테드랄)과 그 앞 오른 쪽에 위치한 대통령궁이 눈에 들어온다. 매우 상징적인 모습이다. 유럽의 역사 도시를 보면 하나의 건축 공식이 있다. 중심에 성당이 있고 그 앞에 시청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길드 빌딩 혹은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스페인 통치자들은 이 공식을 남미에 가져 왔음에도 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우 위압적인 모습이다. 유럽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엄숙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식민지 시절 공간 배치를 통해 원주민을 다룬 통치 기법이리라.
 

여기가 대성당 옆에 있는 대통령궁이다. 필자가 이곳을 돌아보니 곳곳에 무장 경찰이 깔려 있다. 그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관에게 다가가 길을 물었다. 경찰관 중 선임자가 내 인상이 좋았던지(?) 사진을 찍어 준다며 카메라를 달란다. 홀로 여행하면서도 이렇게 개인사진을 득템했다!

 
위엄 있는 대성당의 역사는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초대 총독 프란시스코 피사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535년 리마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면서 총독 관저 옆에 성당을 만들게 했다. 그 자리는 과거 잉카인들이 모신 태양신(Inti)의 사원이 있던 곳이다. 그의 의도는 분명한 것이었다. 잉카인의 신전 위에 기독교 성당을 세움으로써 잉카의 혼을 없애려 했던 것이다. 이 성당은 피사로가 죽은 다음 그의 무덤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이 성당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근대 페루 건국의 시조로 여겨진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대성당에 들어가 피사로의 무덤을 찾으려 했지만 이날따라 무슨 일인지 성당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애석했다!
 

리마 역사지구 거리를 걷다보면 이런 건물을 다수 만난다. 식민지 시대의 스페인 풍의 건물도 상당수 남아 있어 이곳이 역사지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리마를 소개하면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부왕령(viceroyalty)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리마는 페루 부왕령의 수도였다. 스페인은 식민지 시절 남미대륙을 왕이 임명하여 파견하는 현지 왕(vice King)을 통해 통치했다. 첫 번째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는 뉴 스페인 부왕령(1535년)이고 또 하나가 1542년 설치된 페루 부왕령이다.

페루 부왕령은 스페인 남미 통치의 핵심적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수도인 리마의 지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그것만으로 짐작이 된다. 페루 부왕령은 18세기 이후 뉴 그라나다(보고타)와 라 플라타(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생김으로써 그 지위가 흔들린다. 스페인 남미 통치의 중심이 리마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옮겨간 것이다.
 

샌프란스시코 수도원. 내가 방문했을 때는 공사 중이라 수도원 전경을 찍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역사지구에 와서 꼭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수도원. 현재 리마 역사지구는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88)되어 있는데, 그 등재를 가능케 했던 역사적 유적이 바로 이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피사로가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건립을 허가한 것으로 남미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 수도원이며 아레키파의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과 함께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수도원으로 통한다.

특히 이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지하 무덤, 소위 카타콤 때문이다. 이 카타콤은 1810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약 7만 명의 유골이 이곳에 매장되어 있다. 나는 운 좋게 수도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 가이드 팀에 합류해 카타콤을 비롯해 수도원 전체를 안내받았다. 지하로 들어갈 때의 섬찟함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악취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수도원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이 금지되어 있어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는 사실. 가이드가 사라지고 잠시 수도원 성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 그곳을 몇 장 찍은 게 전부다.
 

샌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성당 내부 모습, 화려한 제단을 보면 이 수도원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지하 카타콤에 있는 유골 모습(위키피디아)

 
역사지구를 두어 시간 돌아다니다 잠시 쉴 겸 산 동네가 보이는 한적한 벤치에 앉았다. 옆에는 조그만 실개천이 흐른다. 알고보니 그것이 리마라는 이름을 준 리막강이다. 그것에서 한쪽을 보니 가파른 산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 안내서를 보니 산 크리스토발 언덕이다. 멀리 산 꼭대기에 십자가가 보이고, 언덕 아래로 성냥갑 주택이 여행자의 눈에 신기하다. 리마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곳이다.

아침에 내가 개인적으로 시내에 나간다고 하자 인솔자도 이곳엔 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안내서에도 이곳은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해야지 혼자 가면 안 된다고 써있다. 그 정도로 주의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멀리서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산 크리스토발 성인이 여행자의 수호 성인인데, 그 성인의 가호를 받는 곳에 여행자인 내가 자유롭게 가 보지 못하는 현실, 이것이 오늘의 남미이다. 극단적인 빈부의 차, 저것이 남미를 좌우 대립의 격전지로 만들었고, 양심 있는 사람들이 오늘도 체 게바라를 추앙하는 이유일 것이다.
 

리마의 빈민촌 산크리스토발 언덕, 언덕 정상에 십자가가 보인다. 이런 모습은 비단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빈민촌은 남미가 갖고 있는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이다.
역사지구 뒤를 흐르는 리막강. 바로 이 강 이름에서 리마라는 이름이 나왔다.

 
역사지구에서 몇 시간의 개인 여행을 마치고 시장기가 돌아 식당에 들어갔다. 리마의 식당에서 처음으로 먹는 현지식이다. 나는 여행 안내서에서 소개한 페루의 대표 음식 세비체와 대표 음료 치차 모라다를 주문했다.

세비체는 약간 숙성된 생선회에 양파, 오이, 상추 등이 곁들여진 것으로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조용환 변호사는 이 음식에 대해 상당히 호평을 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았다고 해, 나도 기대를 하고 먹었지만 예상과 달랐다. 비릿한 맛에 양은 혼자 먹기 어려울 정도, 절반 이상을 남긴 채 포크를 놓고 말았다. 다만 치차 모라다는 달달한 맛이 입에 맞아 마침 갈증이 있을 때라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페루를 대표하는 요리 세비체와 대표 음료 치차 모라다

 

태평양이 보이는 미라플로레스 해변의 사랑의 공원
사랑의 공원에서 보이는 리마 해안가. 파도가 밀려오고 그것을 타고자 서퍼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날의 마지막 행선지는 미라플로레스 해안의 사랑의 공원. 1993년에 오픈한 이 공원이 유명해진 것은 찐하게 키스하는 남녀의 조각상 때문이다. 조각상 주변에는 타일로 장식을 해 놓았는데 어디서 본듯한 것이다. 바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 바로셀로나의 구엘 파크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랑에 대한 시가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조각상 주변을 수놓고 있다.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 리마 언덕에서 두 남녀의 관능적인 포즈가 보는 이의 본능을 건드린다. 남미인들의 정열은 사랑을 해도 저렇게 하는 모양이다.

해변가를 보니 파도가 심상치 않은데, 서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바로 이곳이 세계 서퍼들의 성지다. 혹자는 인류 역사상 파도타기는 리마 북부 해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파도는 길이가 2-3 킬로미터에 달하니 한번 파도가 닥치면 서퍼들은 그 파도 벽을 타고 몇 백 미터 이상을 간다. 과연 여긴 별 천지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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