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6)-마침내 마추픽추에 오르다-

박찬운 교수 2024. 1. 20. 09:06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6)

-마침내 마추픽추에 오르다-

 

2023년 12월 20일 오전 드디어 마추픽추에 올랐다. 오랜 기간 꿈 속에서 보아왔던 잉카의 공중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마추픽추에 오르는 날 일찍 조식을 하고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셔틀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정거장 옆은 깎아지른 듯 직벽에 가까운 산들이 도열해 있고 그 앞으로 폭은 넓지 않지만 세차게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이 산을 휘감고 있다. 어제 이곳으로 오면서 본 우르밤바강이다. 이 강이 수백만 년 동안 마추픽추 주변을 침식해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다.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큰 정글 아마존의 서쪽 끝자락이니 한 발만 들어가면 끝을 알 수 없는 밀림이다.
 

마추픽추 주변의 정글. 공중도시인 마추픽추는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다. 그곳으로 통하는 잉카트레일을 끊으면 누구도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추픽추는 수 세기 동안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30여분간 셔틀버스를 타고 밀림 속에서 고도를 높이니 곧 마추픽추 안내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안내소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동안 사진에서 보아온 마추픽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밀림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을 뿐이다. 여기에선 개인 행동이 금지된다. 안내소가 배치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페루 정부가 마추픽추를 보호하는 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30년 전 나의 지인 한 분은 마추픽추에 들어가 저녁 시간 나오지 않고 밤을 샜다고도 하는데 그런 일은 지금 일어날 수 없다. 이곳은 페루인들만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세계 모든 이가 보호해야 하는 문화유산이니 보호를 위한 행동제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추픽추 안내소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이런 망루가 보인다. 저것 넘어 무엇이 보일까? 긴장된 순간이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안내소 입구를 통과해 한 계단 두 계단 산을 올랐다. 가끔 잉카인들이 만든 석축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지만 아직 기억 속에 있는 마추픽추는 아니다. 곧 정상부근에 다다르니 망루 같은 석조건물이 보인다. 거기에 올라 뻥 뚫린 앞을 바라본 순간, 아, 마추픽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곳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 년간 사진 속에서 보아온 바로 그 모습 그대로의 마추픽추!
 

드디어 내 눈 앞에 마추픽추가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것이다. 저 앞 산이 와이나픽추이고 왼쪽 산 아래 협곡이 보이고 그 아래로 우루밤바강이 흐른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페루를 찾아오는 여행자들 대부분이 마추픽추를 찾는다. 연간 200만 명이 찾아온다니 페루 제1의 관광명소다. 잉카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마추픽추를 댄다.

16세기 잉카제국은 스페인에 의해 멸망되고 제국의 주요한 건축물은 죄다 뜯겨나가 식민 통치자들이 새롭게 건축하는 건물의 자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곳 마추픽추 유적만큼은 그 화를 면했다. 밀림 한 가운데 있는데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끊으면 누구도 오를 수 없었기에,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마추픽추의 선명한 자태를 한 눈에 보는 것도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 날씨는 변화무쌍해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거나 안개가 껴 앞을 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시야가 터 마추픽추 전경을 볼 수 있었으나 곧 안개가 껴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단 몇 분 마추픽추를 본 것에 만족하고 내려가야 하나 걱정을 했지만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다시 자태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조상 덕이라고 좋아들 했다.

 
20세기 전까지 이곳에 오른 서구인들이 몇 사람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11년 예일대학 교수 하이럼 빙엄의 탐험에 의해 마추픽추는 비로소 세계에 알려졌다. 수백 년 동안 방치되다 보니 유적 대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잉카유적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원형을 유지한 채 말이다.
 

마추픽추의 이모저모. 많은 곳이 복원된 것이지만 잉카인들이 돌을 다듬어 쌓아 놓은 다수의 석조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의 초대 잉카인 파차쿠티가 조성한 것으로 그의 개인 영지였다. 오랜 기간 사용되지는 못하고 파차쿠티와 그 다음 잉카 때까지만 사용되다가 스페인 침략 이후 방치되었다.

아직도 마추픽추가 어떤 용도로 이런 밀림 속에 만들어졌는지 확연히 알 수가 없다. 잉카인들이 남긴 문자가 없기 때문에 그저 유적의 모양을 보고 추정을 할 뿐이다. 여러가지 정황상 마추픽추는 파차쿠티의 별장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쿠스코는 해발 3400미터의 고원인 반면 이곳은 해발 2400미터에 불과하니 한결 숨쉬기도 좋고 겨울철엔 온도도 높으니 휴양지로 적격이다.
 

잉카인들이 사용했던 해시계 인티와타나
중앙광장
마추픽추는 750명을 먹여살리는 계단식 겅작지가 있었다. 잉카인들은 도시 주변 아래로 경사면에 사진에서 보이는 저런 경작지가 수백 개를 만들었다.

 
파차쿠티는 우루밤바 강을 따라 여러 개의 별궁을 만들어 가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사용했다. 피삭이 그렇고 오얀타이탐보 또한 그렇다. 그 모두 기본적 구조는 유사하다. 정상에 주거지역이 있고 그 아래로 계단식 영농단지가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살면서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추픽추에는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잉카제국이 만든 마추픽추는 오래된 산 마추픽추와 젊은 산 와이나픽추를 연결하는 산록에 세워진 공중도시다. 이런 마추픽추이기에 유적은 크게 아래의 영농지역과 위의 주거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주거지역도 정상의 신의 영역과 그 아래의 인간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이곳에서도 잉카인들이 돌을 다루는 솜씨는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철기인이 아니면서도 단기간 내에 산 거대한 석조건축물 도시를 산 정상에 만들었다. 이곳을 거닐면서 돌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면 지금도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망루가 있는 정상에서 마추픽추 전경을 바라다보면 500년 전 이곳에 살던 수백 명 사람들의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나는 마추픽추에 관한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기억에만 의존해 확인하다 보니 빠진 게 많다. 인터넷이 연결되었더라면 바로 현장에서 여러 자료를 찾아 직접 확인했을텐데 이 산중에서 핸폰이 터질리가 없다. 조금 더 준비를 해 갔더라면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사진을 찍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의외로 전경 사진 외에 소개할만한 사진이 없다. 역시 여행은, 더욱 답사여행은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여기에 와서 확실히 느낀 것이지만 이곳 유적은 잉카인들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후대에 남긴 선물이라는 점이다. 잉카인들은 스페인 침략 이후 반군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오얀타이탐보가 그 거점이었다.

만일 그들이 스페인군에 밀려 이곳에 와서 항전했다면 얼마 동안은 버텼을지 모르지만 끝내 항복하거나 전멸을 당했을 것이 확실하다. 이곳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개 낀 마추픽추. 선명한 마추픽추도 좋지만 저렇게 안개가 낀 모습도 장엄하다. 나는 현장에서 마추픽추의 영원함을 기원했다. 오래오래 견뎌 내 앞으로도 수천 년 인류사에 잉카제국을 증언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되었다면 스페인 지배자들은 이곳을 철저히 폐허로 만들어 잉카인들의 혼을 말살했을 것이다. 잉카인들은 이것을 막았다. 잉카인들은 이곳을 정글 속에 철저하게 숨김으로써, 이곳으로 가는 모든 길을 끊음으로써, 어떤 적도 이곳을 찾지 못하도록 하고 떠났다.

그 덕에 500년이 지난 다음 우리가 이곳에서 역사상 존재한 잉카제국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에 의해 보존된 곳이라고 보는 게 맞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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