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차마고도를 가다

차마고도를 가다(3) 차마고도의 쉼터, 사시마을

박찬운 교수 2026. 6. 26. 22:21

차마고도를 가다(3)
차마고도의 쉼터, 사시마을

 

사시 마을 입구

 

따리를 떠난 버스는 북쪽을 향해 쉼 없이 달렸다. 쿤밍에서 따리를 오는 길에서도 느낀 바지만 중국의 발전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다. 중국의 이 벽촌, 90 프로 이상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이곳이 천지개벽 중이다. 오래 전 마방은 산을 돌아가야 했지만, 오늘의 중국인들은 산을 끝없이 관통하고 계곡을 점프하듯 넘어간다. 험준한 위난의 산악지형을 하나씩 극복해 가는 현대 중국의 토목기술을 바라보며, 이것이 마방의 후예들의 작품인지 아니면 새로운 인간종의 작품인지 도무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남조풍정도, 섬을 한바퀴 돌며 이해 호수와 창산을 바라본다.

가는 길에 잠시 얼하이 호수의 남조풍정도에 들렀다. 창산과 얼하이는 남조국과 대리국을 키워낸 위난 문명의 발상지다. 호숫가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조그만 섬을 한 바퀴 돌며 이해와 창산을 한 눈에 바라보았다. 아마 그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테니 잠시나마 나는 천 수백 년 전 남조국의 귀족이 되어 섬을 한바퀴 돌아본다.

사시 마을의 중심 사등가

남조풍정도를 떠난 버스는 점심 무렵 사시(沙溪)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의외였다. 화려한 고성이 아니었다. 낮은 흙담과 검은 기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돌길, 담장을 타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부겐빌레아. 시간이 이곳만 비껴간 듯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사시는 차마고도의 대표적인 중계역이었다. 윈난의 차를 말 등에 싣고 티베트로 향하던 마방들은 이곳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긴 여정을 준비했다. 티베트에서 내려온 말과 모피, 약재는 다시 이곳에서 거래되었고, 상인들은 객잔에 묵으며 다음 길을 의논했을 것이다.

사시 마을을 골목길

마을 중심인 사등가(寺登街)에 서니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지금은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광장을 거닐지만, 한때 이곳은 차마고도에서 가장 분주한 시장이었다. 옥진교를 건너온 마방들이 말을 이끌고 광장으로 들어서면 객잔 주인들은 손님을 맞으려 분주했고, 상인들은 차 상자를 풀어놓으며 값을 흥정했을 것이다. 나시족, 백족, 티베트인, 한족이 서로 다른 언어를 주고받고, 말 방울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흥정하는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을 것이다.

옥진교와 그곳에서 사등가로 들어가는 골목길

광장을 빠져나와 옥진교를 건넜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말발굽이 이 돌다리를 두드렸을 것이다. 긴 산길을 넘어온 마방은 이 다리를 건너 사시에 들어왔고, 다시 이 다리를 건너 리장을 향해 또 티베트를 향해 길을 떠났다. 다리는 단순히 강을 건너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문명과 문명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사시의 어느 귀퉁이에 사시 차마고도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내용인즉,  이 길이 남조국과 대리국 시기에 형성되어 중화민국 시기까지 사용되었고, 신중국 성립 이후에도 상당 기간 주요 교통로였다는 것이다. 길이는 약 4.2km, 평균 폭은 겨우 1m. 사람과 말 한 필이 겨우 비켜 설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그 길을 오늘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실 사시는 오랫동안 세상에서 잊혀진 변방의 작은 마을이었다. 차마고도가 사라지자 사람들도 떠났고, 마을도 함께 쇠락했다. 지금처럼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한 것은 불과 십여 년 남짓이다. 중국 정부와 윈난성 정부는 차마고도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발견했고, 옥진교와 사등가, 옛길과 객잔을 보존하고 복원하면서 사시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오늘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걷고 있었다. 천 년 전에는 차를 실은 말들이 이곳으로 들어왔고, 오늘은 역사를 찾아 사람들이 들어온다. 길을 오가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사람을 불러 모으는 길의 힘은 변하지 않았다.

사시는 거대한 도시가 아니다. 화려한 궁전도 없다. 그러나 차마고도의 숨결만큼은 이곳이 어쩜 가장 진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차마고도를 만났다. 차마고도 여행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2026. 6. 26. 밤 리장의 어느 호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