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차마고도를 가다

차마고도를 가다(4) 차마고도의 수도 리장에 서다

박찬운 교수 2026. 6. 28. 05:23

차마고도를 가다(4)

차마고도의 수도 리장에 서다



리장고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여행지까지 와서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죽인다 해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다.

무엇이 나를 쓰게 만드는가.

독자의 요청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이러겠는가. 명성에 대한 욕망인가. 이 글 몇 편으로 내 이름값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하나다.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그것을 무엇으로든 확인해야 삶이 의미를 얻는다.

글쓰기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글을 쓰며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는 다시 살아난다.

하늘이 내게 준 재주는 하나, 글쓰기다. 나는 그것으로 매일 내 존재를 확인한다. 그것이 없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 3시, 중국 차마고도의 도시 리장에서 글을 쓰는 이유다.


드디어 리장(麗江)에 들어섰다. 차마고도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 지 나흘, 마침내 이 길의 심장부에 도착한 것이다.

실크로드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며 동서 문명을 연결한 국제교역망이었다면, 차마고도는 히말라야 동쪽 산악세계를 하나로 엮은 지역문명권의 교역망이었다. 윈난의 차는 이 길을 따라 티베트로 올라갔고, 티베트의 말과 소금, 약재는 다시 이 길을 따라 내려왔다. 차와 말만 오간 것이 아니었다. 종교와 문자, 생활양식과 문화가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교역망의 중심에 리장이 있었다.

리장고성 북문 초입

북문을 지나 대연고진(大研古鎭)으로 들어섰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중국은 리장을 대대적으로 복원했다. 그러나 이곳을 걷다 보니 단순히 옛 건물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를 현재의 삶 속으로 되살려 놓은 도시였다.

리장고성은 물의 도시다

조금 걷자 리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물이었다.

좁은 수로가 골목마다 흐르고, 그 물을 따라 객잔과 찻집, 상점들이 이어진다. 작은 돌다리에는 꽃이 넘쳐나고, 꽃 아래로는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른다. 가이드는 이 물이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흑룡담을 거쳐 고성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리장고성의 이곳저곳

리장은 사람이 만든 도시가 아니라 물이 만든 도시였다.

천 년 전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도 이 물을 보았을 것이고, 먼 길에 지친 말들도 이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을 것이다. 오늘은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옥빛에 빛나는 남월곡, 구름 뒤로 옥룡설산이 보여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하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전에는 옥룡설산 기슭의 운삼평과 남월곡을 찾았다. 남월곡은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계곡이다. 옥빛 계류가 숲 사이를 흘러가고 운무가 그 위를 천천히 덮는다.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해발 5,596미터의 옥룡설산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개에 싸인 운삼평

남월곡을 가기 전 옥룡설산을 보기 위해 간 운삼평도 이슬비와 운무가 산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성스러운 산은 누구에게나 쉽게 얼굴을 허락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설산 대신 운무를 만났고,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와 소망을 담아 쌓아 올린 작은 돌무더기를 만났다. 인간은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다시 확인했다.

운삼평과 남월곡에서 본 동파문자

운삼평에서 만난 동파문자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동파문자는 나시족 제사장인 동파들이 사용하던 문자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살아 있는 상형문자로 알려져 있다. 새는 새의 모습으로,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태양은 태양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그림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쇼가 펼쳐졌다. 뒷 배경으로 보여야 할 옥룡설산은 볼 수 없었지만 공연은 시종일관 압도적이었다.

오후의 하이라이트는 장이머우가 연출한 실경공연 '인상 리장'이다. 장이머우 그는 중국이 내놓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총연출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 자연을 무대로 삼는 새로운 공연예술을 개척했다. 계림의 '인상 류산제', 항저우의 '인상 서호', 그리고 리장의 '인상 리장'이 그 대표작이다. 특히 리장의 공연장은 해발 3,100미터가 넘는 세계 최고 해발의 대형 실경공연장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사진. 맑은 날에는 '인상 리장' 공연 뒤로 옥룡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자료사진. 날이 맑은 날이면 리장 시내에서 옥룡설산이 이렇게 보인댜.
리장에서 보지 못한 용룡설산 한 봉우리를 드디어 호도협에 와서 보았다. 객잔 바로 건너편 돌팔매를 하면 닿을 거리에 한 봉우리가 우뚝 서있다.

운무 때문에 옥룡설산은 끝내 배경이 되어 주지 못했다. 하지만 붉은 대지와 안개는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냈다. 수백 명의 배우가 차마고도의 삶을 재현하는 모습을 역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직도 중국 예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집단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고 노동과 공동체를 장엄하게 표현하는 형식은 분명 사회주의 집체예술의 전통이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현대 공연예술로 바꾸었고, 다시 문화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자연을 극장으로 만들고,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고, 이야기를 다시 경제로 연결한 것이다.

며칠 동안 따리와 사시, 그리고 리장을 걸으며 나는 중국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중국은 역사를 보존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역사를 현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문화와 관광, 산업으로 연결한다. 차마고도는 공연이 되고, 고성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며, 동파문자는 문화상품이 된다. 처음에는 너무 상업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며칠 동안 그 현장을 직접 걸으면서 생각이 바뀌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상업주의가 아니라 역사에 경제적 생명을 불어넣는 중국인다운 접근방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중국 특유의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 과거를 자산으로 만들고, 그 자산을 다시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바꾸려는 힘이다. 세계의 부를 전부 끌어들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도시 곳곳에서 느껴졌다. 사시의 작은 골목에서도, 따리의 고성에서도, 그리고 리장의 물길에서도 같은 에너지가 흘렀다.

지난 20여 년 넘게 나는 실크로드와 티벳을 비롯 세계 각처의 문명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오늘 리장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배웠다. 문명은 오래되었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다시 노래할 때 비로소 살아 남는다는 사실이다.

차마고도의 말발굽 소리는 오래전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리장의 물은 천 년 전과 다르지 않게 흐르고, 사람들은 그 물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중국은 그 오래된 길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2026. 6. 28. 새벽 리장의 호텔에서 쓰고 오후 호도협 객잔에 도착해 고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