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 5

부산 돼지국밥 이야기

부산 돼지국밥 이야기부산에서의 2박 3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앉았다. 홀로 여행은 결국 사색의 여행이다. 어디를 가는 것도 무엇을 먹는지도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들을 조용히 되짚어 본다.이상하게도 돼지국밥이 자꾸 떠오른다. 부산에 내려와 아침 샌드위치를 제외하면 다섯 끼를 먹었는데, 그중 네 끼가 돼지국밥이었다. 홀로여행을 하다 보면 근사한 식당에 들어가기가 머쓱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네 끼나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 없이 내가 그 음식을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그렇다. 나는 부산의 돼지국밥을 좋아한다. 서민 음식 가운데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부산에서는 몇 걸음만..

홀로 밤을 지내며 -쉼이란-

홀로 밤을 지내며-쉼이란-지난밤 낯선 곳에 와서 홀로 지냈다.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졸리면 자고 자다가 깨면 컴퓨터를 열어 글을 썼다.사는 것이 아무리 복잡해도결국 별거 없다.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결국 언젠가는 혼자다.홀로 지내는 것 홀로 사는 것그것이 진짜 삶이다.나와 마주 하지 않는 삶은허상이다, 가짜다.가끔 홀로 여행을 통해진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한다.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얽히고설킨 인연의 고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면 나 혼자만 남는다.우주 속 하나의 존재그것이 또렷하게 보일 때비로소 우리는 삶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나는 그것을 쉼이라 부른다.(2026. 2. 4.)[해설]나는 이 산문시를 쓰면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를 떠올리며 썼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그..

쉼인가, 도피인가

쉼인가, 도피인가ㅡ부산행ㅡ머리가 너무 복잡해무작정 기차를 탔다.도착한 곳, 부산.역전의 돼지국밥집,뜨거운 김 사이로허기를 먼저 내려놓고남포동을 천천히 걸었다.그리고한 카페에 들어섰다.밖은 번화한데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서울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근사한 커피.카페 이름, 네루다.나는 몇 해 전그가 살던칠레 산티아고의 집을일부러 찾았다.오늘은 이곳에서'커피 네루다'를 마시며그를 떠올린다.서울에서 멀어질수록마음도 함께 멀어진다.언젠가부터나는 부산이 좋다.서울과는 다른 공기,다른 속도.마치 일본의 어느 지방 도시처럼조용히 나를 받아주는 느낌.무엇보다나를 아는 사람이아무도 없는 곳.잠시이방인이 되는 이 기분이이상하게도 나는 좋다.이럴 때비로소정신이 풀어진다.아, 이것이 쉼이다.도피라 해도 좋다.삶의 격전지에..

삶의 무게

삶의 무게올해는 결혼 40주년이다. 숫자로 쓰면 그럴듯하지만, 그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마음이 먼저 숙연해진다. 긴 세월을 아내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늘 비슷한 하루, 예측 가능한 생활.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부부여행을 적게 한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꽤 많이 다녔다. 그러나 그 여행들이 아내에게 과연 즐거웠을까, 요즘 들어 자주 자문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진지했고,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여행지에서도 풍경보다 역사와 맥락을 먼저 보았고, 감탄보다 설명이 앞섰다. 아내는 내 곁에 있었지만, 충분히 함께하지는 못했다.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좀 더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 되고 ..

추위에 대한 기억

추위에 대한 기억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제법 춥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육십대 중반에 이른 나의 기억 속에서, 이 정도의 추위는 아직 ‘겨울다운 겨울’이라 부르기엔 한참 부족하다. 나이를 먹어가며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나는 통계가 아니라 몸으로 먼저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기억 속에 각인된 몇 장면의 추위를 더듬어 본다.나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73년에 서울로 이사했다. 이사 오기 전, 내가 알던 겨울은 이런 것이었다.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러 마당으로 나가면 우물 펌프는 늘 꽁꽁 얼어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 와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했다. 그러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물이 솟아났다. 그 물조차 사실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