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나는 왜 티벳으로 떠났는가(티벳여행기1)

박찬운 교수 2019. 7. 7. 21:09

"조캉사원에서 오체투지로 수백 킬로미터를 기어 온 순례자를 보았다. 그들은 왜 그 험난한 길을 떠났을까?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티벳에 왔는가? 그들의 삶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들만이 순례자인가? 나에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어떤 절절함이 있다면  나 또한 순례자가 아닐까?" (2019. 7. 1)

 

티벳여행의 첫날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링카에서
티벳여행의 종점, 청장열차에서

 
티벳은 내겐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였다.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곳... 돌아가신 최영도 변호사님의 글이나 말씀에서 포탈라 궁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언급될 때마다 나의 티벳에 대한 동경은 점점 깊어져 갔다. 오랜 망설임 속에서 2019년 여름 나는 드디어 티벳으로 떠났다.
이번 여행은 아버지의 죽음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1년 이상 병원을 오가면서 투병하셨지만 결국 당신께선 지난 5월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별히 생전에 큰 효성을 드린 것도 없었던 자식이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그런 모양이다. 이제 전화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제일 큰 외로움이다. 전화를 해도 한 번 제대로 다정한 말도 못한 불효자이면서도 ... 이번 여행은 아버지가 내게 허락하신 위로여행이었다.  
거기에다 지난 5년 간 병상에 누워 기약 없는 삶을 사는 큰 형의 어려움, 이런 저런 집안의 대소사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의 슬픈 소식... 이런 모든 것들이 적잖게 공적 생활을 하는 나에게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한 번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한 번 짧은 시간이지만 내게 진한 위로를 스스로 주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그런 위로의 여행이었다.
위로여행은 쉼의 여행일까? 그것도 좋겠지만 내게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쉼 없이 글을 썼다. 이제 보듯 티벳 여행은 고난행군이었음에도 밤이면 호텔의 침침한 전등 아래에서 뭔가를 계속 써 내려갔다. 그게 팔자인지... 생각해 보니 나로선 그게 위로이자 선물일지 모르는다.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서 (고통이지만) 나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보고 들은 것을 남기는 작업... 이것은 내게 안정을 주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였다. 
까탈스런 성격 때문인지, 평소 패키지 여행은 체질상 잘 못한다. 내가 스스로 일정을 짜지 못하면 여행을 통한 욕구 충족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티벳 여행은 여행사 프로그램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티벳 여행은 중국 당국의 엄격한 제한조치 속에 이루어진다. 비자신청부터 까다롭고 현지에선 중국 여행사의 가이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행선지를 이동할 때마다 당국에 신고하고 허가 받길 반복해야 한다. 외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현지어나 중국어를 하지 못하면 눈 뜬 장님 신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실크로드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국내 H 여행사 티벳 여행 프로그램의 마지막 한 자리를 예약했다.
티벳여행은 극성스런 한국 여행객에게도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1년에 고작 기 백 명 정도가 여행사를 통해 티벳을 갈 뿐이다. 그것은 중국당국의 과도한 여행 제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 자체가 어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발고도 4천 미터 이상에서 일 주일 이상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차만 타도 피곤은 쏟아지고 두통과 식욕부진이 뒤 따른다. 잠을 잘 때도 숨이 차 자주 깨곤 한다. 그렇지만 티벳을 다녀온 나의 총평은 이렇다.
”티벳여행은 어렵다. 그렇지만 일생에서 한 번은 가볼만한 곳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라사공항에 도착하다

 
2019년 6월 30일 시안을 떠난 비행기는 3시간을 넘게 비행한 후 라사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문제는 고산증을 극복하는 것이다. 라사는 평균 해발고도 3700 미터. 이번 여행지 중엔 해발 5000 미터를 넘는 몇 구간이 있다. 과연 이 고비를 잘 넘기고 티벳을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최근 들어 여행객들(남성) 사이에서 가장 좋은 고산증 예방약은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제로 알려져 있다. 나도 그 정보를 일찍이 알고, 한국을 떠나기 전 학교 근처 병원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비아그라 처방을 받았다.(비아그라 정품은 꽤 비싸다. 다행히 최근엔 비아그라 복제품이 나왔다. 나는 복제품 8정을 구입했다.) 라사행 비행기에서 비아그라 반정을 잘라 먹었다. 이 약 하나로 고산증은 날아가리라는 희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라사에 도착해 짐을 풀어보니 가지고 간 김이 이렇게 부풀어 있었다. 해발고도 3700미터에서 이러니 4천 혹은 5천이라면 어떻겠는가.

 
공항에 도착해 두 시간은 몸이 조금 무겁지만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첫 코스인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 노블링카를 방문하고 호텔로 들어서자 상태가 심각해졌다. 두통이 심해지고 오한이 일기 시작했다. 밖의 온도는 30도에 육박해 근래 보기 드문 더위라고 하는데, 옷을 껴입고 이불을 몇 겹으로 덮어도, 온 몸에 엄습하는 한기를 쫓을 수가 없다.
몇 시간 쉬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낸 다음,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지만, 음식을 보는 순간 역겨움에 구토증이 올라온다. 보아하니 나 같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 여행사 직원과 현지 가이드가 내 얼굴을 보더니, 아무래도 의사 진단을 받아야겠다고 하면서, 호텔 내에 상주하는 의사에게 데리고 간다.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혈압을 재니 이 상태론 여행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응급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고산증을 완화하는 주사를 맞으란다. 아이고... 이런 일이...

티벳에서의 첫 날 밤 나의 방에 도착한 산소통, 밤새 여기에서 나오는 산소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냈다.

밤 12시가 가까워 호텔방으로 의사가 산소탱크를 들고 왕진을 왔다. 내 손등에 주사기가 꽂히고, 콧속으로 산소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하다. 주사를 놓은 지 불과 20-30분도 안 되어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나의 첫날 요란했던 티벳 고산증 이야기다. 비라그라, 그것은 역시 밤 일 용도이지 티벳 여행용은 아니었다! 
(1편 끝/2019. 7. 8)